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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문구점의 추억이여

등록 2007-07-26 17:32

27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은 서울 마장동 오로라문구 주인 조은숙씨
27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은 서울 마장동 오로라문구 주인 조은숙씨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27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은 서울 마장동 오로라문구 주인 조은숙씨
성동구 마장동의 오로라문구. 주인 조은숙씨는 61살이다. 27살 때 문구점을 넘겨받았다. 벌써 34년째다. 한 주인 아래서 간판 한 번 바뀌지 않고 버텨온 문방구다.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는 게 조씨의 말이다.

그럴 만했다. 예전엔 10평짜리 점포 주인장 자리 뒤로 살림방이 있었다. 김씨는 설거지를 하다가 나와서 일을 봤다. 휴일이나 명절에도 문 닫을 일이 없었다. 예전에는 장사가 아주 잘됐다고 한다. “아이엠에프(IMF) 전에는 하루 100만원어치도 팔았어요. 딸 둘 대학까지 보내고 남편 병수발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매상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신학기 대목도 없어졌다. 꼬마 손님의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저출산 현상으로 아이들의 절대적 수가 준 데다 대형 마트가 우후죽순 생긴 탓이다. 이제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대형 마트에 가서 10권짜리 노트 한 묶음을 산다. 게다가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난감에 빠져 들었다. 문방구를 어슬렁거리며 조잡한 장난감을 기웃거리는 아이들은 사라졌다.

“그래도 나와 있는 게 나으니까 장사를 접지 않아요.” 이렇게 해서 번 돈은 초등학교 교사인 큰딸 월급만도 못하다. 집세 떼고 보험료 내면 남는 건 용돈뿐이다.

주사위, 공기, 복사와 코팅, 팩스, 그리고 사진현상과 잉크충전까지. 오로라 문구는 문방구라기보다는 차라리 만물상이었다. 주사위가 담긴 통 옆에 제도5000이 먼지에 쌓여 있었다. 지금은 단종된 마이크로의 ‘명품’ 샤프. 예나 지금이나 5천원이다.

제도1000이나 모나미 153볼펜 등은 예나 지금이나 잘 팔리는 상품이다. 책받침은 단종되지 않았다. 학원이나 교회 등에서 판촉물로 나눠 주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아직도 필요한 이들은 찾는다. 과학의 달에 날개 돋친 듯 팔렸던 글라이더는 찾는 이가 뜸하고, 딱지, 영플레이모빌 등은 시대 속으로 사라졌다. 전기회로 등 교재는 학교가 직접 도매상에서 사 쓰기 때문에 잘 팔리지 않고, 크레파스와 물감 등 값나가는 물건은 대형 마트에게 판로를 빼앗겼다.

전국문구인연합회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2만5천여 곳에 이르던 문방구의 30%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상진 문구인연합회 총무부장은 “학교 앞 문방구가 거의 없어졌고, 이마저 중대형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한 시간 동안 여권 복사를 하러 온 동네 아주머니와 곤충망을 사러 온 아버지와 아들이 손님의 전부였다. 김씨는 그래도 “들여놓으면 언젠가 팔린다”며 함박웃음이다.


글 남종영 기자·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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