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반려식물의 결정적인 차이는 먹을 수 있고 없고에 있다.
[매거진 Esc]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집 안의 여러 방들이 정원을 가까이 두기 위한 유치 작전에 나선다. 침실이 말한다. “역시 제 옆이 최고죠. 찌뿌드드한 아침을 싱그러운 풀냄새로 이겨 보세요.” 욕실 겸 세탁실이 연합 유세에 나선다. “우리와 함께라면 값싸게 사치를 즐길 수 있습니다. 햇살 눈부신 오후에 라벤더를 끼워 빨래를 널고, 저녁 무렵 카모마일과 함께 욕조에 몸을 담그세요.” 서재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힘 있다. “온갖 책 속에 등장하는 화초의 이름들을 당신 정원에서 확인하고 싶지 않으세요? 철마다 피어나는 꽃들을 책갈피에 끼워 두는 즐거움은 어떻고요?” 나는 모두를 물리친다. 정원은 부엌과 가장 친해야 한다.
인간이 식물과 친한 이유? 먹을 수 있으니까. 그 점이 반려 동물과 반려 식물의 결정적인 차이다. 꽃이 아름답네, 풀빛이 싱그럽네, 하는 건 모두 배가 부르고 나서의 이야기다. 말투가 좀 거칠어졌다. 사실 무더위와 폭우 때문에 장 보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고픈 배를 움켜쥐고 있다. 어쩌겠나? 내 정원의 것들로 요기나 해보자.
냉장고 구석의 돌나물을 스티로폼 화분에 던져 버린 게 4개월 정도 되었나? 무지막지하게 자랐다. 노랑 주황 꽃을 피우며 군락을 이룬 한련 역시 놓칠 수 없다. 꽃도 풀도 쌉싸름하니 먹을 만하다. 어디선가 날아와 애기 능금나무 옆에 주택단지를 건설한 민들레 친구들. 자네들 잎이 그렇게 건강에 좋다며? 웃자란 로메인 상추까지 모으니 제법 그럴듯한 무규칙 이종 샐러드가 완성되었다.
기운을 좀 차리니 귀농한 친구에게서 감자를 샀다가 덤으로 받은 토마토가 보인다. 그 최고의 궁합이 우리 정원에서 가장 잘 자라나는 바질이다. 그 둘을 톡톡 잘라 버무리고, 냉장고에서 죽어 가는 버섯과 치즈까지 끼워 준다. 허브를 넣은 생수로 살짝 입가심.
사상적으로는 전혀 채식주의자가 아니지만, 정원과 가까이 있다 보니 야채 맛에 푹 빠져 버렸다. 이제 부엌에서 정원으로 무언가 내보낼 차례다. 파, 양파, 부추를 먹으면 한두 줌은 화단에 심어 둔다. 살아 있는 채로 사랑해 주다, 필요할 때 댕강 잘라 먹으면 되니까. 식도락가가 되려면 훌륭한 요리사를 가까이 두고, 요리사가 되려면 좋은 정원사와 사귀어야 한다. 아니면 그 모두가 되든지.
이명석/저술업자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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