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기사님 과속하지 마세요.”
중년 여성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정적을 깬다. 수도권에서 자유로와 강변북로를 타고 서울로 직행하는 광역버스 안. 그러거나 말거나, 그 여성은 두 번이나 더 기사를 다그친다. “기사님 과속하지 마세요… 기사님 과속하지 마세요.” 규정 속도를 어기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경고방송은, 과속보다 더 짜증스럽다. 그대 고운 목소리가 아니라면, 차라리 박명수의 호통 개그 버전이 즐겁겠다. “야, 야, 야, 과속하지 말랬잖아….” 아니면 까다로운 변 선생이든지. “과속운전 아~니죠, 안전운전 맞~습니다.”
공중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다 문득 정면을 쳐다본다. “절대 금연하세요.” 갑자기 15년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어진다. 내 심성이 못된 건가. 그 밑엔 또 있다. “보시던 신문을 가져가시오.” 안 가져가면 팰 것 같다. 삭막하고 정 떨어진다. 소변기 앞에 붙은 안내문도 다를 바 없다. “한걸음 앞으로 다가오시오.” “꽁초를 버리지 마시오.” 옛날 군부대 초소 앞에 붙던 “라이트 꺼, 시동 꺼, 하차” 같은 살벌한 안내판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다. 우리 생활 주변의 사소한 안내문들은 왜 한결같이 무뚝뚝할까? 정감 있으면 안 될까? 조금만 신경 쓰면 안 될까?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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