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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의 칼을 받아라

등록 2007-11-08 15:42

요리의 친구들 / 사진 윤은식
요리의 친구들 / 사진 윤은식
[매거진 Esc] 요리의 친구들
사랑은 가끔 일방적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할 때의 내리사랑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전통적인 부모자식 관계를 삐딱하게 본다. ‘100년짜리 모기지론’을 대출받은 느낌이랄까. 이 막막한 채무 앞에서 ‘효도는 죄의식이 된다’(〈Esc〉10월25일치 12면 참조)고 방송인 김어준은 썼다. 그래서 자식이 부모에게 갖춰야 할 건 효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와 연민이다. 독립된 개인과 개인 사이의 예의. 그러나 부모를 향한 나의 심리적 거리두기는 음식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1년에 한두 번 고향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김치찌개를 끓인다. 어머니는 돼지고기 없이 멸치로 국물을 우렸다. 칼칼한 국물을 떠 넣으면 가슴이 헛헛해지고 할말이 줄어들었다.

세종호텔 이광진(45) 주방장은 도마에서 일방적 사랑을 봤다. 그는 1970년대 초 경북 상주시(당시 상주읍)의 두메로 처음 장모에게 인사드리러 갔다. 장모는 마루 한 편에 세워진 도마를 눕혔다. 칼국수를 만들 때만 쓰는 도마였다. 두께가 10㎝이고 길이 1m, 좁은 너비 40㎝인 거대한 나무도마. 장모는 큰도마를 ‘쿵’하고 넘어뜨려 부엌으로 밀어 옮겼다. 장모는 콩가루를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도마 위에서 치대고 민 반죽을 접어 놋쇠 칼로 썰면 굵직한 칼국수 발이 숭숭 풀렸다. 장모는 면을 얼갈이배추와 함께 가마솥에 끓였다. 청량고추를 썰어 넣은 집 간장을 면에 끼어얹어 먹었다. 국물은 심심했고 콩가루가 들어간 면발은 탄력이 없어 젓가락질 때마다 끊어졌다.

낯선 맛이었다. 그래도 칼국수에는 중독성이 있었다. 호텔에 갓 취직한 ‘엘리트’요리사는 장모댁을 찾을 때마다 손칼국수를 먹었다. 조미료, 향신료, 기교도 없는 음식은 투박하고 담백했다. 이 주방장은 음식의 혀는 가슴이라는 걸 그때 배웠다고 한다. 음식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도마는 그것을 상징한다. 칼이 내리치면 몸으로 받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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