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래떡 덕에, 덜 얼얼하네
[매거진 Esc] 배달의 기수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웰빙OOO’라는 야식집의 배달시간이다. 정확히 18시간 동안 이 야식집 불은 켜져 있다. 산업혁명 시기 영국 맨체스터의 탄광 노동자들이 하루에 14시간씩 노동했다고, 역사책에서 읽었다. 물론 배달원들이 18시간 꼬박 일하진 않겠지만 주방은 쉬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웰빙OOO’라는 반어적인 명명 앞에서 잠시 서글퍼진다. 18시간 노동하는 ‘웰빙’하지 않는 야식집에서, 여자친구를 버려두고 밤 12시까지 일하는 ‘웰빙’하지 않는 기자가 해물떡볶이를 시킨다. 지친 노동의 결과가 바로 웰빙, 이라는 게 ‘웰빙OOO’라는 이름의 참뜻일 거라고 해석할 뿐.(국민 여러분, 성공하세요!)
3인분 1만8000원. 계란찜과 파전, 맑은 홍합탕이 곁들여졌다. 서비스 음료는 소주와 펩시콜라에서 택할 수 있다. 10ℓ짜리 쓰레기봉투까지 함께 주는 센스. 주요리를 빼고 모두 괜찮았다. 재료는 푸짐했다. 굵은 가래떡과 홍합, 오징어, 가리비에 꽃게도 들어 있다. 그러나 조미료를 지나치게 써서 혀가 얼얼하다. 불특정 다수의 혀를 만족시켜야 하는 고충은 알겠지만, 좀 심했다. 굵은 가래떡의 심심한 맛이 그나마 조미료에 지친 혀를 달래준다.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이 가래떡을 찾는 이유일 게다.
‘요즘 서울 사람 중에 누가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뽑겠어?’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마포구 공덕동 ‘공덕방앗간’의 박경순(55)씨는 설명했다. 외려 시골보다도 많단다. 박씨는 공덕동에서만 20년째 방앗간을 운영 중이고 형제들은 여전히 시골에서 방앗간을 한다니 믿을 만하다. “가을 햅쌀이 나오면 그때까지 먹던 묵은쌀을 들고 와서 가래떡을 뽑는 사람들이 많다”고 박씨는 말했다. 쌀 8㎏을 가래떡으로 뽑는 비용이 1만5000원. 그렇게 태어난 가래떡은 7살 아들의 입으로, 10살 조카의 입으로도 들어간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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