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윤섭의 사진클리닉 /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을 넘어
[매거진 Esc] 곽윤섭의 사진클리닉
밤에 산에 올라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삼각대 없이 찍었는데 흔들렸는지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찍고 보니까 아래쪽만 비중이 있고 위쪽은 허전한 느낌이 나네요. 평가 부탁합니다.
이한창/경기 안성시 금산동
재미있게 찍혔습니다.
위가 허전하다는 것은 밤하늘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프레임을 잡을 때부터 예견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구성한 네모 안에 뭐가 들어오는지 보고 눌렀겠지요. 화면의 위쪽에 아무것도 담지 않고 눌렀다면 그냥 이렇게 나오는 것이 맞습니다.
의미를 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 사진에서 어두운 하늘이 빛과 대비되는 요소로 포함되었다면 작가가 그렇게 의미를 준 것일 수 있습니다. 만약 아래쪽의 빛무더기를 화면에 가득 채워 하늘의 빈 공간이 안 보이게 한다면 그것은 또다른 사진이 될 것입니다. 우연히 찍은 사진이 재미있는 결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삼각대 없이 찍으면 흔들리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진을 공부하는 단계라면 본인이 자신의 사진에 더 깊숙이 개입해서 의도를 구현하는 것이 완성도를 높이는 길입니다. 사진은 ‘카메라가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찍는 것입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