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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위로보다 나은 말

등록 2007-12-27 15:03

탁현민의 말 달리자
탁현민의 말 달리자
[매거진 Esc] 탁현민의 말 달리자
지난주 건강하시던 고모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향년 일흔다섯. 일찍 가신 것은 아니지만, 건강을 꼼꼼하게 챙기셨던 터라 가족들은 물론 가까운 분들도 많이 슬퍼하셨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삼남매인 자녀들이 전부 외국에 나가 있던지라 거의 십년 만에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임종을 목전에 둔 고모부에게는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한 다리 건너인 나로서는 이렇게들 모인 것이 반갑기도, 기쁘기도, 슬프기도 했지만, 왠지 무슨 잔치판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왁자한 분위기에 놀랍기도 한, 뭐 그렇게 복잡한 마음이었다.

고종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반가우면서도 착잡하고 어디 가서 한 잔 해야 할 것 같으면서도 다들 고모부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자식으로서 먹먹한 가슴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들 서 있는데, 자식들을 쳐다보던 고모가 한 말씀 하시는 게 아닌가! “이렇게 다들 모였을 때, 아부지 빨리 돌아가셨으면 참 좋겠다!” 순간 며칠째 잠도 못 자고 고모부 곁을 지킨 고모와 비행기 타고 날아온 자녀들과 그들의 외사촌인 내 형제들은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나와 버렸다. 그 장면은 안성기 주연의 영화 <축제>처럼,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남은 사람들이 삶과 서로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중환자실 복도에서 젖은 웃음을 지었다. 그럴듯한 유언도, 당부도 없이 가시는 남편과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가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슬픔에 잠기는 것뿐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섣부른 위로는 오히려 남은 사람들을 더욱 아프게 할 뿐이다.

고모의 한마디. “니 아부지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말은 죽은 사람과 산사람 모두를 기쁘게 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고모부에게는 이렇게 자식들 보는데서 편히 가시라는 의미였을 것이고 아버지 임종 지키고 아쉬운 것 없이, 맺힌 것 없이, 앞으로도 열심히들 살라는 눈물 나는 배려였을 것이다. 돌아가신 고모부의 명복을 빈다.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 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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