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좀비가 독자들을 물었습니까?
물지는 않았습니다. 한데 겁내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Esc〉에 강력하게 뜻을 전하기도 했지요. ‘좀비 만화’를 소탕하라고 말입니다.
창간호부터 연재됐던 <좀비의 시간>이 막을 내립니다. 좀비에 물렸던 준수는 아버지와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았고, 살아남은 자들은 평온한 일상으로 되돌아왔습니다.(12면 작가 인터뷰와 14면 만화 참조) 이제 이 만화의 ‘안티 팬’들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평온한 일상으로 되돌아갈지 모르겠군요.
‘안티’가 있다는 건 수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만큼 논쟁적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줍니다. “머리가 깨지고 손이 잘리고, 너무 잔인하고 혐오스럽다.” “초등학생 딸이 볼까 봐 만화가 나올 때마다 〈Esc〉를 숨긴다.” 그 비난의 반대편에는 준수의 운명에 가슴 아파하고 눈물 흘려준 열혈 팬들의 환호가 존재합니다. 어느 인터넷 댓글은 좀비를 극빈층·이주노동자 등의 사회적 약자로까지 해석했더군요.
저는 <좀비의 시간>이 명랑 호러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웃기면서도 슬펐지요. 아, 대사 한 마디가 떠오릅니다. “좀비 따윈 하나도 안 무서워, 무서운 건 버림받는 거야.” 안티 팬들에게 죄송하지만, 초등학생 딸에게 숨겨야 할 성인용 만화였다는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저는 초등학생 딸에게 오히려 권유했거든요. 엽기적 아빠인가 봅니다) 단지 이야기 흐름을 중간에서 놓친 독자들이 많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주간연재의 호흡이 신문에서는 생소한 편이었죠.
다음 호부터는 색깔이 조금 다른 단편만화를 선보입니다. <평양프로젝트>의 오영진 작가,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의 기선 작가가 번갈아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겁나게’ 기대해주세요.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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