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봄에는 호르몬 대사가 흐트러진다더니, 온도가 올라가면 많이 분비된다는 세로토닌의 습격인가. ‘지겨워’ ‘괴로워’ ‘우울해’를 기초 생활준칙으로 삼았던 나의 일상에 ‘즐거워’ ‘좋아’ 따위의 가당치 않은 단어들이 마구 끼어들고 있다. 좋아할 일도, 즐거울 일도 전무한데 말이다.
감정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도 끌어낸다.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게 꽃선물이라고 생각하던 내가 꽃을 산다. 프리지어 다발을 일주일 단위로 꽃병에 갈아 끼우질 않나, 저게 파냐, 풀이냐 싶었던 난을 싸게 판다기에 줄서서 사오질 않나, 허브에 수선화 구근까지 샀다. 밀린 설거지 그릇들과 마룻바닥을 굴러다니던 빨랫감이 유일한 인테리어였던 집 안에 화분과 꽃병이 마구마구 채워지기 시작하니 그 부조화스런 풍경도 오묘하게 미학적이다. 엊그저께 수선화 세송이가 피어나는 걸 보면서 사실 나는 한국의 마사 스튜어트가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왜 이런 걸까. <거침없이 하이킥>의 나문희 여사가 봄만 되면 “미쳐 날뛰”(순재의 표현)던데 나도 나문희 여사가 돼 가는 걸까. 늙어 간다는 증거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도 올해는 나문희 여사처럼 꽃놀이를 가리라. 하지만 <봄날은 간다>를 부르지는 말아야지. 난 젊으니까.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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