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지난 가을 이 칼럼에 2007년 가을을 영화 <원스>로 기억할 거라고 썼다. 다시 계절 시리즈로 가자면 2007년에서 2008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은 비데로 기억할 거 같다. 모든 선진적인 건물이 그렇듯이 엘리베이터가 웬만한 성인의 계단 올라가는 속도보다 느린 이 로하스 건물에도 몇달 전 비데가 설치됐다. 그리고 나는 그만, 비데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내가 비데에 빠진 이유는 배변 마무리의 쾌적함 때문이 아니다. 앉을 때 느껴지는 그 따뜻함과 포근함이라니. 농담 안 보태고 처음 비데에 앉았을 때 아기 적에 엎혔던 엄마의 그 넓고 포근한 등이 떠올랐다. 그전에 다른 곳에서 비데를 써본 적이 있지만 추운 겨울 냉기가 흐르는 화장실이라 그 따뜻함은 절절하게 나의 체온을 파고 들었다. 옛날에 유행했던 한 청바지 광고를 인용하자면 나와 비데 사이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이 겨울에 출근을 하는 가장 큰 보람은 화장실에 가는 거다. 때로는 두 번, 그 이상으로 쪼개서 가기도 한다. 최근 늦어지는 내 마감의 비밀은 바로 이것, 물론 팀장에게는 비밀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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