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휴대전화를 바꿀 때가 됐다. 숫자 버튼이 잘 눌러지지 않아 자세히 보니 키 패드가 깨졌다. 화장실에서 지루함을 달래려고 내려받은 야구게임을 열심히 한 탓일까.
사실 얼마 전부터 전화번호를 바꾸고 싶었다. 알람처럼 정확히 오후 다섯 시면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서울 전역 만이천원~’으로 시작하는 대리운전 광고 문자. 스팸 문자는 자정 무렵까지 이어진다. 적게는 하루 대여섯 건. 시도 때도 없이 ‘오빠~’로 시작하는 낯 뜨거운 문자들, ‘도리 짓고 땡~’ 따위의 사행성 게임, ‘어려울 때 함께하고 싶습니다’라는 대출 문의 등 종류도 다양하고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스팸 문자열에 등록도 해봤고 들어올 때마다 지워보기도 하고 심지어 전화를 걸어 화를 내거나 애원도 해보았지만 그들의 공격을 막아내기란 역부족이다.
전화번호를 바꾸려니 이것 또한 귀찮은 일이다. 10년 가까이 써온 정든 번호를 버리기도 아깝고,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는 것을 어떻게 다 알려야 할지 막막하다.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런 고민을 토로하는데 애교스러운 문자가 하나 들어온다. ‘술잔을 잡는 손에 핸들을 잡지 말라, 대리운전은 ××××-××××’.
임호림 기자 nam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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