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짜 수저(왼쪽)는 엄청난 노력이 투입돼야 하는 예술작품에 가깝다. 남대문시장 그릇도매상가에는 방짜를 비롯한 다양한 수저들(오늘쪽)이 있다.
[매거진 Esc]
수세미로만 닦는 방짜에서 고객 전용 젓가락까지 우리가 몰랐던 수저의 세계
다음은 똑같은 물건 값의 극과 극이다. 200원 대 10만원. 이 물건의 정체는 뭘까?
정답은 일회용 수저와 고급 은수저의 가격 차. 누구나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점에서 밥은 똑같지만, 밥을 떠 넣는 행위에는 다양한 편차가 있다. 수저도 천차만별이다. 이는 반드시 가격 측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음식은 혀로만 맛보는 게 아니고 눈과 코로, 오감을 총동원해 맛본다. 그래서 수저를 포함한 식기는 요리의 화룡점정이다. 요리부터 인테리어, 식기까지 일관된 ‘미감’을 추구하는 고급 한식당이나 특급호텔 한식당에서 수저 하나도 함부로 쓰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외식으로서 한식이 자꾸 홀대받는 요즘 상황에서 이런 노력은 더욱 눈에 띈다.
방짜 유기, 11명의 일사불란한 제조공정
방짜 유기는 고품격 수저의 대명사다. 방짜란 78%의 구리와 22%의 주석을 정확한 비율로 합금한 좋은 질의 ‘놋쇠’를 말한다. 방짜 유기란 이 놋쇠로 두들겨 만든 놋제품을 총칭한다. 한자어로 ‘양대납청성기’(良大納淸成器)라 하며 일반적으로는 ‘방짜’(方字)라고 한다. 납청은 평북 정주에 있는 지명으로 놋그릇의 본산지다. ‘양대’는 ‘방짜’라는 뜻의 이북말. 처음에는 엽전을 쳐서 유기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다 차차 주발·대접·수저 등의 식기를 방짜 기법으로 만들게 됐다. 양반가에서만 쓰던 고급품이었으나 20세기 초 기존 계급사회가 해체되면서 서민들도 널리 이용했다. 그러나 남북 분단과 연탄의 대중적 사용으로 예전만큼 많이 쓰이지 않는다. 열에 약한 방짜는 연탄불에 쉽게 변색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중요무형문화재 77호로 지정된 이봉주 방짜유기장 등 몇몇 장인들 손에 명맥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방짜가 일반 주물 제품보다 비싼 이유는 공력이 만만찮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방짜 유기는 한두 사람이 만들 수 없다. 제조공정이 복잡해 11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이렇게 움직이는 한 팀을 ‘점’(店)이라고 이른다. 방짜 유기는 크게 ‘용해-단조-가질-마무리’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수백 차례 넘게 망치질을 해야 한다. 이런 공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보통 방짜 수저 한 벌에만 4만원을 호가한다. 그러나 황금보다 광택은 덜하면서 구리보다 훨씬 세련된 방짜의 은은하고 깊은 색감은 한식의 맛을 ‘표현’하는 데 그만이다. 반가음식을 표방하는 서울 삼청동의 ‘큰기와집’에서 오로지 방짜 식기만 사용하는 이유다. 이곳에서는 수저·반찬그릇·찜기류 등 대부분의 식기류가 죄다 방짜다. 그것도 문경 유기촌 공방에서 주문한 제품만 쓴다.
품격을 유지하는 데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방짜유기는 관리가 여간 어렵지 않다. 방짜 식기는 공기 중에 두기만 해도 색이 변한다. 이 때문에 정기적으로 닦아야 한다. 과거에는 기왓장과 마른 지푸라기를 가지고 닦았다고 한다. 큰기와집의 경우 직원 5∼6명이 한 달에 한두 차례 뒤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한 손에 푸른 수세미를 들고 수백 개의 방짜 그릇을 땀을 뻘뻘 흘리며 닦는다. 물론 물과 세제 없이 마른 수세미로만 닦는다. 방짜는 열에 쉽게 변색하기에 찜기류 관리에는 더욱 많은 공력이 들어간다. 열에 약한 성질 때문에 설거지할 때도 뜨거운 물은 금물이며 반드시 미지근한 물에 해야 한다.
고급 한식당과 호텔 식당의 VVIP 전략으로도
영어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표현이 있다. 이 숙어가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음’을 의미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은수저는 최고급 식기에 해당한다. 방짜보다 더 비싸서 은수저 한 벌에 10만원이 넘는다. 은수저는 워낙 비싸서 한식당에서는 이를 일상에서 사용하기보다 특별 손님만을 위해 따로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부유한 손님들을 대상으로 한 ‘브이브이아이피’ 전략인 셈이다.
은수저도 방짜만큼 관리가 까다롭고 게다가 사용할 때 불편한 점도 있다. 르네상스 호텔 한식당 ‘사비루’가 최근 기존 은수저와 은식기를 고급 스테인리스로 바꾼 이유다.
은수저의 경우 도금 제품이 많은데, 사용하다 보면 도금이 벗겨지거나 변색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돌솥비빔밥을 먹을 때 도금이 심하게 벗겨져서, 안전상의 이유로 숟가락을 영업에 사용하지 못하게 된 웃지 못할 속앓이도 있었다. 게다가 달걀이 들어간 음식과 닿으면 변색하기에 2∼3일에 한 번씩 약품으로 닦기도 해야 했다.
이 때문에 ‘사비루’는 원하는 손님만 쓰도록 은수저와 은식기를 제공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맞춤 서비스가 고급화 전략에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이런 ‘브이브이아이피 전략’은 한식당뿐만이 아니다. 르네상스 호텔의 양식당 ‘맨해튼 그릴’에서도 이달 개인용 나이프를 증정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중식당에서도 특정 손님의 이름표가 붙은 젓가락이 따로 있다. 당구에 빠진 사람들이 당구장에 자신의 전용 큐대를 마련하는 것과 똑같다고 할까?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방짜 유기는 고품격 수저의 대명사다. 방짜란 78%의 구리와 22%의 주석을 정확한 비율로 합금한 좋은 질의 ‘놋쇠’를 말한다. 방짜 유기란 이 놋쇠로 두들겨 만든 놋제품을 총칭한다. 한자어로 ‘양대납청성기’(良大納淸成器)라 하며 일반적으로는 ‘방짜’(方字)라고 한다. 납청은 평북 정주에 있는 지명으로 놋그릇의 본산지다. ‘양대’는 ‘방짜’라는 뜻의 이북말. 처음에는 엽전을 쳐서 유기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다 차차 주발·대접·수저 등의 식기를 방짜 기법으로 만들게 됐다. 양반가에서만 쓰던 고급품이었으나 20세기 초 기존 계급사회가 해체되면서 서민들도 널리 이용했다. 그러나 남북 분단과 연탄의 대중적 사용으로 예전만큼 많이 쓰이지 않는다. 열에 약한 방짜는 연탄불에 쉽게 변색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중요무형문화재 77호로 지정된 이봉주 방짜유기장 등 몇몇 장인들 손에 명맥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방짜가 일반 주물 제품보다 비싼 이유는 공력이 만만찮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방짜 유기는 한두 사람이 만들 수 없다. 제조공정이 복잡해 11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이렇게 움직이는 한 팀을 ‘점’(店)이라고 이른다. 방짜 유기는 크게 ‘용해-단조-가질-마무리’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수백 차례 넘게 망치질을 해야 한다. 이런 공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보통 방짜 수저 한 벌에만 4만원을 호가한다. 그러나 황금보다 광택은 덜하면서 구리보다 훨씬 세련된 방짜의 은은하고 깊은 색감은 한식의 맛을 ‘표현’하는 데 그만이다. 반가음식을 표방하는 서울 삼청동의 ‘큰기와집’에서 오로지 방짜 식기만 사용하는 이유다. 이곳에서는 수저·반찬그릇·찜기류 등 대부분의 식기류가 죄다 방짜다. 그것도 문경 유기촌 공방에서 주문한 제품만 쓴다.

서울 남대문 그릇도매상가에서 고객들이 수저를 고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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