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동물은 ‘친구’이자 ‘식품’입니다.
동물애호인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현실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밥상엔 수시로 동물의 시신이 오릅니다. 기름진 시신이 없으면 이런 타박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온통 녹색 채소밭이라니, 이거 너무하잖아?” 동물에 대한 진한 그리움입니다. 동시에 ‘반찬투정’입니다. 말하고 보니 좀 엽기적입니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는 ‘동물의 왕국’입니다. 인간의 귀여움을 받으며 호의호식하거나,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적극적인 해침은 당하지 않는 동물 친구들이 카메라 앵글에 잡혔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8면에 실린 동물들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에 나오는 돼지말입니다. 도축장에서 체계적으로 살해되어 부위별로 토막토막 잘라진 뒤 인간의 입맛을 돋구는 존재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엉덩이살에 탐닉한다는군요. 반면 한국인들은 삼겹살을 좋아한답니다. 아무튼 돼지들은 참 불쌍합니다. 커버스토리의 다른 동물 사진을 흐뭇한 마음으로 감상할수록 더 그렇습니다.
아, 소들도 불쌍합니다. 한국 소뿐 아니라 미국 소도 불쌍합니다. 전지구적 동물 사랑 정신을 발휘해서 미국 소에게 아량을 베풀어야 할까요? 인간을 위해 죽어간 놈들의 명복을 빌며 다 받아주고 먹어줘야 할까요? 이는 현재 국내 정치 쟁점으로까지 번지는 중입니다. 미국 소들의 토막 시신 개방을 반대하는 이들을 놓고 ‘반미’니 ‘좌파’니 하는 말들이 오갑니다. 무제한 개방을 약속한 이명박 정부에 대해선 ‘탄핵’이라는 경고가 터집니다. 이러다간 대한민국이 ‘독물의 왕국’이 될 지도 모른다는 걱정 탓입니다. 광우병의 위험으로, 동물이 식품을 넘어 독물 취급을 당하는 현실. 동물에 대한 명예훼손은 끝이 없군요.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 팀장 k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