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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과 용서 사이

등록 2008-06-04 21:15

탁현민의 말달리자
탁현민의 말달리자
[매거진 Esc] 탁현민의 말달리자
어린 시절 도저히 숨기기 어려운 잘못을 하나 한 적이 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언젠가 읽었던 조지 워싱턴의 전기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아끼던 벚나무인가 전나무인가를 도끼로 찍어 버린 후 솔직하게 고백하자 아버지가 용서해 주었다는 전설(?)말이다. 그리하여 가능하면 최대한 숨겨 보려 노력하다가 더는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설 무렵, 나는 (강요된) 용기를 가지고 부모님께 내 잘못을 고백했다. 잘못한 것을 반성하고 또 앞으로 그런 잘못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물론 이때도 부모님이 굳이 알지 않아도 될 내용은 최대한 이야기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뉘우치는 기색을 약간은 연기로 보여드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조지 워싱턴의 사례가 있는데, 이쯤하면 용서를 해 주시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용서받지 못했다. 아니 용서는 받았으나 그 대가는 쓰리고 아팠다. 몇십 년이 흘렀는데도 그때의 아픔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날이 태어나서 가장 많이 두들겨 맞았던 날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우리 부모님들이 별로 자애롭지 못하셨던 건지, 끝끝내 숨기고 속여 보려 했던 것을 알아채신 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 집 자식이 아닌 거야’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그렇게 맞았다. 그때 나는 조지 워싱턴의 부모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와 관련한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20여 년 전의 나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 별 내용은 없었으나 왠지 숙연하게 고개를 숙이던 대통령의 고백과 반성을 보면서 아마 새 정부도 조지 워싱턴의 전기를 읽었을지 모르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고백하면 국민들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연일 계속되는 촛불집회와 가두시위를 보아하니 용서는 물 건너간 듯 보인다. 고백을 하기 전 미리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면 한번 경험이 있는 처지에서 유익한 충고를 했을 것이다. ‘고백’과 ‘용서’ 사이에는 ‘책임’이란 것이 있더라 말이다.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 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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