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랭이논의 변신을 귀신처럼 잡아라
[매거진 esc] 곽윤섭의 사진명소 답사기
땅이 좁은 곳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은 세계 어디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손바닥만한 곳이라도 발 디딜 틈만 있다면 뭐든지 심고 볼 일이다. 벼농사를 지으면 논이요 마늘·깨·고구마를 심으면 밭이다. 멀리서 보면 흡사 계단처럼 보인다 하여 계단식 논·밭이라 하기도 하는데 경남 남해군 가천마을에선 ‘다랭이논’이라 한다. “밭 갈던 소가 한눈팔다 절벽으로 떨어진다”는 말처럼 가파른 절벽으로 이뤄진 이곳에서 산비탈을 깎아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만든 논은 작게는 10㎡(3평)부터 큰 것은 1000㎡(300평)에 이른다. 가천마을엔 모두 680개의 다랭이가 있고 108개의 계단으로 이뤄져 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농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농가월령가>를 읽어두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논 갈 때와 써레질하고 모내기할 때 그림이 각각 달라질 것이고, 가을이 되어 벼가 익어갈 때와 수확한 뒤의 논은 또 확연히 달라진다. 뭘 심는지에 따라 색도 달라질 것이고, 비가 오거나 해가 날 때도 사진이 달라진다. 아침저녁으로 빛이 달라질 때 벼의 색과 논의 음영이 따라 바뀌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딱히 어느 계절 어느 시간대가 가장 좋다고 할 수는 없어서 언제 가든지 한 장씩은 멋진 사진을 담을 수 있다.
다만 마을의 골목길과 산비탈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다랭이의 각도와 폭이 수시로 바뀌는 것은 유심히 관찰해야 균형잡힌 사진을 구할 수 있다. 다랭이 마을엔 민박집이 20여채 있다. 마을 주민이 채 200명이 안 되는 이곳은 이제 연간 20만명이 다녀가는 관광명소가 됐다. 영화와 광고 촬영 장소로 널리 알려졌고 텔레비전에도 자주 소개되었다. 마을 이장 김학봉(63)씨는 “인심 좋고 경치 좋은 우리 마을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고맙다”며 “구경하는 것은 좋지만 쓰레기는 제발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티베트 차마고도와 중국 윈난(운남)성에도 계단식 논이 있고 필리핀엔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거대한 규모의 계단식 논이 있지만 가천마을의 다랭이논은 따라 내려가면 바로 바다가 나온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글·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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