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영화팬들의 부모 세대들에게나 친숙한 추억의 영화를 21세기에 재개봉하는 고전영화 전용관 사장은 30대 젊은 여성 경영자 김은주씨였다. 김씨는 “추억을 살리는 자부심으로 하는 일”이라며 “(경영실적은) 본전만 해도 된다”고 잘라 말했다.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허리우드 클래식’ 김은주 대표
한물간 영화로 장사가 되냐고요?
광고 안해도 지방관객까지 찾아와 다들 처음에는 떠나는 자의 상큼한 이색 한풀이려니 했다. 지난해 꼭 이맘때, 서울 서대문 네거리 드림시네마(옛 화양극장)에 느닷없이 1987년작 고전영화 <더티 댄싱>이 20년 만에 재개봉했을 때만 해도 그랬다. 극장 건물이 재개발로 헐리게 된다는 통보를 받은 극장 대표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마지막 상영작으로 골랐다는 소식은 영화계에서 작은 화제였다. 올 4월, 또다른 뉴스가 전해졌다. 3년전 문을 닫았던 서울 종로 허리우드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었다. 다시 등장한 허리우드는 다른 극장과는 아주 많이 다른 극장이었다. 요즘 텔레비전 주말의 명화 시간에도 잘 틀어주지 않는 고전영화들만 재개봉하는 고전영화 전용관 ‘허리우드 클래식’이 등장한 것이다. 개관 첫 영화로 49년 전에 만든 <벤허>를 재개봉했고 <미션>(1986년작)과 <영웅본색>(1986년작)을 상영했다. 이 새 극장의 대표는? 바로 <더티 댄싱>을 재개봉했던 바로 그 드림시네마 대표다. 그 새 드림시네마에도 변화가 생겼다. 재개발이 연기되어 수명이 연장됐다. 3년 말미를 얻은 드림시네마도 우리 고전영화 전용관으로 재탄생했다. 80년대 화제작 <씨받이>, 70년대 청춘영화의 상징 <고교얄개>(1976년작), 그리고 윤정희 주연의 81년작 <자유부인>까지 개봉이 이어졌다. 영화팬들에겐 희소식이다. 올드팬들에겐 모처럼 추억의 영화를 보며 향수를 되살릴 곳이, 젊은 영화팬들이 이름만 들었던 옛 명작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 한꺼번에 2곳이나 생겼으니 말이다. 그러면 21세기 서울 한복판에서 느닷없이 고전영화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이 두 극장의 경영자는 도대체 누굴까? 70년대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서울 낙원동 낙원상가 허리우드극장으로 주인공을 찾아갔다. 극장 허리우드 클래식은 입구부터 <첩혈쌍웅> <영웅본색> 등 ‘그때 그 영화들’ 포스터가 가득했다. 영화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괴짜 사장은 뜻밖에도 고전영화를 보고 자랐을 세대와는 거리가 먼 74년생 서른네살 여성 김은주 대표였다. 고전영화를 흠모하는 영화전공자? 아니다. 숨은 재력가의 부인이거나 딸? 그것도 아니란다. 평범한 아버지를 구워삶아 아버지 퇴직금으로 극장운영에 나선 젊은 새댁이었다. -죄송하지만 궁금해서 먼저 여쭤봅니다. 고전영화가 장사는 됩니까? “임대료와 직원 월급을 주고 본전만 하면 되는데 얼추 해나가는 것 같습니다. 맨 처음 개봉했던 <더티 댄싱>이 1만7000명 들었습니다. 다른 영화들도 한 3주씩은 틀었는데 1만명 수준씩은 됩니다. 여기 허리우드 클래식은 개관한 지 얼마 안 돼 수지를 맞추기가 어려운데 다음달 <영웅본색2>를 올리면 더 좋아질 것 같습니다.”
-적자려니 예상했는데 놀랍습니다. “요즘에는 새 영화 하나에 수억원씩 광고비를 씁니다. 허리우드극장에서 최근 가장 성공한 <다크나이트>를 걸면 몇 명이나 올 것 같으세요? 아무리 광고해도 회당 100명도 오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광고를 안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고전영화 한다는 입소문이 나서 지방에서도 찾아오십니다. <더티 댄싱> 때는 부산에서 기차 타고 온 분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옛날 영화 팬들만 상대로 극장을 운영하는 건 모험 같아 보입니다. “주 관객층은 40대가 아니라 오히려 30대들입니다. 60대도 많고, 아주머니들끼리도 많이 옵니다. 이름만 들어봤던 영화를 보러 오는 젊은 팬들도 제법 있습니다.” 정작 김 대표 자신은 고전영화 마니아가 아니었다고 한다. 한국전력을 다녔던 김씨는 어느날 영화가 좋아 영화기획사로 직장을 옮겼다. 기획사에서 영화의 매력에 더욱 빠져든 김씨는 실로 과감하게 일을 저질렀다. 서울의 대표적인 옛 극장 스카라를 인수한 것이다. -극장 인수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셨습니까? “저희집은 재력가는커녕 아주 빠듯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셔서 목돈이 있었습니다. 극장 땅과 건물을 사려면 돈이 막대하게 들지만 극장 운영권만 인수하려면 몇 억원이면 됩니다. 스크린과 음향설비가 1억원 정도씩 합니다.” 김 대표의 파란만장 극장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인수 1년 만에 극장 문을 강제로 닫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문화재청이 스카라극장 건물을 문화재로 지정하자 개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건물 주인이 문화재 등록 전날 밤 기습적으로 건물을 헐어버린 것이다. “황당했죠. 그래서 드림시네마를 인수했는데 이번에도 철거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또다시 마련한 곳이 허리우드였습니다.” 극장 운영 4년 만에 3개째 극장이다. 이쯤 되면 변화무쌍 팔자다. 그런데 일반 극장도 문 닫는 판에 도대체 왜 고전영화란 말인가. “영화기획사 시절 스카라극장에서 고전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한 게 계기였습니다. 그 인연으로 스카라를 인수했는데, 철거되는 것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제게는 부채의식으로 남았습니다. 시간이 있었다면 80년 동안 문을 열었던 스카라의 팔순잔치를 해줬을 겁니다. 거기서 했던 고전영화를 열심히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관객들에게 잊혀졌던 영화의 추억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자는 오기 같은 게 생겼죠.” 아무리 그래도 하루 몇 백 명 보는 영화를 수천만원씩 주고 수입해서는 망하지 않기가 어려운 노릇이다. 허리우드 클래식이 생존에 성공한다면 한국 영화팬들에게 소중한 틈새 극장이 존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한 편당 1만명이라면 요즘 세상에 고전영화를 보는 사람이 적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잘될 수 있을까? 이야기를 듣는 기자도 걱정스러울 정도다. -옛날 영화를 보겠다고 맘을 먹으면 인터넷 등으로 볼 수 있잖습니까? “요즘 대세는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인데 이게 꼭 정답은 아닙니다. 멀티플렉스로 재단장한 단성사는 얼마 전 부도까지 났습니다. 멀티플렉스라고 해도 1개관 좌석수가 몇십 석짜리도 있습니다. 우리 드림시네마는 700명이 들어갑니다. 영화는 모름지기 스크린이 큼직하고 음향이 좋아야 몰입할 수 있습니다. 최대이익과 관객 회전만 생각하는 멀티플렉스는 이런 영화의 참맛을 고민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추억을 되살리는 것이 좋아서 하는 것이지 돈 벌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제가 한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 -아버지가 뭐라고 안 하십니까? “3년만 버텨보겠다고 했습니다.” 글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김은주식 극장 경영법 장년층 취향 알아보려…탑골공원 순례가 일과
김은주 대표는 고전영화 전용극장에 이어 새로운 일을 저지르려 하고 있다. 허리우드 클래식을 앞으로 ‘노인을 위한 극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다음달 11월18~19일 허리우드 클래식에서 ‘노인 영화제’를 열기로 했다. 입장료는 단돈 2천원. 군인과 대학생들도 깎아줄 작정이다. 한국 영화로는 <님은 먼 곳에>와 <왕의 남자>, 외국 영화는 <벤허> <닥터 지바고> <미션>을 상영할 계획이다. 아직도 재원이 부족해 기업 협찬이나 지원을 받는 길을 알아보고 있다.
김 대표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종로 탑골공원을 매일 보면서 느끼게 된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이곳에 와보니 종로에 모이는 수많은 노인들이 갈 곳이 없으세요. 오죽하면 콜라텍을 가고 박카스 아줌마들이 나오겠어요? 그런 노인들에게 문화적인 행복을 주고 싶어요. 노인들은 과거 이곳 종로에서 문화를 즐겼습니다. 그들에게 종로를 다시 돌려주고 싶은 것이죠.”
김 대표는 요즘 멀티플렉스 극장은 젊은 층이 아니면 가기가 꺼려지기 때문에 더욱 노인전용 극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저희 부모님도 요즘 멀티플렉스 극장은 가기 무섭다고 하십니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게 복잡하고 표 끊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극장은 젊을 때 갔던 극장과 똑같아 마음이 편하다고 하세요.”
새 목표를 위해 김 대표는 요즘 ‘이중 생활’ 중이다. 스타벅스 커피와 뮤지컬을 좋아하는 그가 전통찻집과 국악공연장에 다니면서 장년층의 취향을 알아보고 있다. 매일 탑골공원에 나가 노인들의 표정과 말을 살피는 것도 일과라고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목의 영화가 나오는 세상이지만 ‘노인을 위한 극장’은 생길 모양이다.
권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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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려니 예상했는데 놀랍습니다. “요즘에는 새 영화 하나에 수억원씩 광고비를 씁니다. 허리우드극장에서 최근 가장 성공한 <다크나이트>를 걸면 몇 명이나 올 것 같으세요? 아무리 광고해도 회당 100명도 오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광고를 안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고전영화 한다는 입소문이 나서 지방에서도 찾아오십니다. <더티 댄싱> 때는 부산에서 기차 타고 온 분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옛날 영화 팬들만 상대로 극장을 운영하는 건 모험 같아 보입니다. “주 관객층은 40대가 아니라 오히려 30대들입니다. 60대도 많고, 아주머니들끼리도 많이 옵니다. 이름만 들어봤던 영화를 보러 오는 젊은 팬들도 제법 있습니다.” 정작 김 대표 자신은 고전영화 마니아가 아니었다고 한다. 한국전력을 다녔던 김씨는 어느날 영화가 좋아 영화기획사로 직장을 옮겼다. 기획사에서 영화의 매력에 더욱 빠져든 김씨는 실로 과감하게 일을 저질렀다. 서울의 대표적인 옛 극장 스카라를 인수한 것이다. -극장 인수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셨습니까? “저희집은 재력가는커녕 아주 빠듯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셔서 목돈이 있었습니다. 극장 땅과 건물을 사려면 돈이 막대하게 들지만 극장 운영권만 인수하려면 몇 억원이면 됩니다. 스크린과 음향설비가 1억원 정도씩 합니다.” 김 대표의 파란만장 극장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인수 1년 만에 극장 문을 강제로 닫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문화재청이 스카라극장 건물을 문화재로 지정하자 개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건물 주인이 문화재 등록 전날 밤 기습적으로 건물을 헐어버린 것이다. “황당했죠. 그래서 드림시네마를 인수했는데 이번에도 철거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또다시 마련한 곳이 허리우드였습니다.” 극장 운영 4년 만에 3개째 극장이다. 이쯤 되면 변화무쌍 팔자다. 그런데 일반 극장도 문 닫는 판에 도대체 왜 고전영화란 말인가. “영화기획사 시절 스카라극장에서 고전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한 게 계기였습니다. 그 인연으로 스카라를 인수했는데, 철거되는 것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제게는 부채의식으로 남았습니다. 시간이 있었다면 80년 동안 문을 열었던 스카라의 팔순잔치를 해줬을 겁니다. 거기서 했던 고전영화를 열심히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관객들에게 잊혀졌던 영화의 추억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자는 오기 같은 게 생겼죠.” 아무리 그래도 하루 몇 백 명 보는 영화를 수천만원씩 주고 수입해서는 망하지 않기가 어려운 노릇이다. 허리우드 클래식이 생존에 성공한다면 한국 영화팬들에게 소중한 틈새 극장이 존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한 편당 1만명이라면 요즘 세상에 고전영화를 보는 사람이 적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잘될 수 있을까? 이야기를 듣는 기자도 걱정스러울 정도다. -옛날 영화를 보겠다고 맘을 먹으면 인터넷 등으로 볼 수 있잖습니까? “요즘 대세는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인데 이게 꼭 정답은 아닙니다. 멀티플렉스로 재단장한 단성사는 얼마 전 부도까지 났습니다. 멀티플렉스라고 해도 1개관 좌석수가 몇십 석짜리도 있습니다. 우리 드림시네마는 700명이 들어갑니다. 영화는 모름지기 스크린이 큼직하고 음향이 좋아야 몰입할 수 있습니다. 최대이익과 관객 회전만 생각하는 멀티플렉스는 이런 영화의 참맛을 고민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추억을 되살리는 것이 좋아서 하는 것이지 돈 벌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제가 한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 -아버지가 뭐라고 안 하십니까? “3년만 버텨보겠다고 했습니다.” 글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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