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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총 쏘듯 허망해 MB비판 관뒀소”

등록 2008-11-06 18:17수정 2008-11-08 10:29

윤여준 전 장관의 책상에는 신문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스크랩을 하기 위해 모아 놓은 것이라고 했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중요한 인사 때마다 그의 이름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절대 기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명진 기자 <A href="mailto:littleprince@hani.co.kr">littleprince@hani.co.kr</A>
윤여준 전 장관의 책상에는 신문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스크랩을 하기 위해 모아 놓은 것이라고 했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중요한 인사 때마다 그의 이름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절대 기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여권 개편마다 ‘중책 물망’ 윤여준 전 장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인수위원장, 대통령실장, 국무총리 인사가 있을 때마다 하마평에 이름이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윤여준(69) 전 환경부 장관이다. 그런데 당사자는 매번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6월 대통령실장이 바뀔 때, 그는 한 신문사 정치부장과 술 내기를 했다. 정치부장은 ‘윤여준 실장’에 걸었고, 그는 ‘아니다’에 걸었다. 물론 그가 이겼다.

‘아니다’라는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일까? 첫째, ‘직관’이라고 했다. 둘째, “이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도 없고, 당선에 기여한 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있다. 2000년 한나라당 ‘공천 대학살’ 당시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할 뻔한 일이 있었다. 그 학살극을 윤 전 장관이 기획했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이상득 의원은 그를 ‘위험한 사람’으로 본다고 한다. 그를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형님(이상득 의원)을 한 번 찾아가라”고 권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실장) 안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CEO 대통령? 결국 신기루 쫓아온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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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대선을 몇 달 앞두고 그는 ‘윤여준의 정치 카페’라는 블로그를 개설했다. 12월 말까지 1주일에 한 편씩 빼먹지 않고 글을 썼다.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과 나 자신부터 수양하고 남을 다스린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 정신을 체득해야만 훌륭한 정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10.22. ‘지도자는 길러진다’)

“(이명박 당선자는) 오직 겸허함으로 몸을 낮추어 국민들을 섬기고 귀를 활짝 열어 국민의 소리를 들으며 눈을 크게 떠 인재를 널리 구한다면 그에게 밀려오는 시련의 파도들은 오히려 위대한 리더십의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12.14. ‘역설의 축복’)


마치 이 대통령이 갈 길을 훤히 내다보고 미리 강하게 경고를 한 것 같다. 이 정도면 거의 ‘좌판’을 깔아야 하는 수준이다.

세상이 암담할 때는 지혜로운 사람의 한마디가 그리운 법이다. 현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그에게 우리나라 정치의 현재과 미래를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버락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되던 5일 오전,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사무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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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선 박근혜 가장 유리…이회창은 또 나올것

- 요즘 무슨 일을 하시는지요?

“돈 버는 일로는, 후배들이 하는 컨설팅 회사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다른 일들은 봉사 성격입니다. 평화재단 연구모임, 북한인권시민연합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나를 만나는 숲’이라는 법인체도 하고 있죠. 서울 주변 산 밑에 산책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골프를 배워서 2년째인데, 매우 어려운 운동이더군요.”

- 인터넷 카페에 좋은 글을 많이 써 놓으셨던데, 정치 전문가의 식견이라 그런지 이 대통령이 새겨들어야 할 얘기가 많더군요.

“나는 정치 전문가가 아니라, 그냥 상식인입니다. 남들이 다 아는 얘기를 정리했을 뿐입니다.”

이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얘기로 들어갔다. 그는 지난 7월16일 한반도선진화재단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이 대통령의 리더십과 통찰력을 주제로 발제한 일이 있다. 글이 워낙 통렬해서 여러 언론에 크게 실렸다. 그는 이 대통령이 권위와 신뢰를 잃은 이유를 ‘통찰력 부족’에서 찾았다. “530만표라는 외견상 압도적 표차에 도취해서인지 사회구조의 변화와 국민의식의 진화를 경시했다”는 것이다. “선진화라는 추상적 목표만 제시했지 구체 내용이나 실천적 추진 전략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적이 없다”는 ‘비전의 부재’도 짚었다.

- 7월 세미나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강하게 비판했지요?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종합한 것인데, 핵심이 ‘통찰력’의 문제라고 저는 봤던 것이죠. 이 대통령 비판하는 것은 (아무 효과없는) 빈총을 쏘는 것 같아서 허망합니다. 맞는 사람은 빈총이라도 기분이 나쁠 테고요. 그래서 그 세미나 이후 이 대통령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요청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 인터넷 카페에 ‘눈을 크게 뜨고 인재를 널리 구하라. 겸손하라’고 썼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정반대 방향으로 갔네요?

“과거 경험이나 권력의 속성으로 볼 때 대통령들은 전임자들을 비판하면서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런데 정말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갔네요. 권력이란 것은 양날의 칼이라, 자신이 다칠 수 있다는 것을 권력자들이 명심해야 합니다.”

- 처음 1년이 중요하다는 말씀도 하셨죠?

“대통령은 취임 후 1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나머지 4년이 결정됩니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안 됐지만, 지난날을 돌아보면 남은 4년이 무척 힘들 것이라는 걱정이 드네요.”

- 앞으로 4년 동안 국민들은 넋놓고 살아야 합니까?

“국민이 왜 넋을 놓습니까? 넋을 놓지 않았으니 ‘촛불’을 든 것 아닙니까?”

- 4년 내내 촛불을 들어야 할까요?

“취임 1년이 아직 조금 남았지요. 연말연시 개편을 할 때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취임 후 8개월 동안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냉철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 그동안 정치 지도자의 자질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얘기를 하셨는데요?

“저는 시이오형 리더가 이상적이라는 말들을 할 때 절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기업 시이오와 정치 지도자는 추구하는 가치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시이오 출신 정치 지도자’를 갈망했습니다. 그게 시대의 흐름이었던 것이죠.”

이쯤에서 궁금해졌다. 결국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얘기 아닌가?

- 국민들이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것인가요?

“최근 금융위기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세기 후반에 금융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실물경제가 돈놀이 경제로 옮겨갔습니다. 우리도 어떻게 살았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도 책임이 있습니다. 걸핏하면 30대 펀드 매니저가 연간 얼마를 벌었고, 20대 사업가가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을 터뜨렸다고, 언론이 선정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대박’이라는 말이 어린이들에게 유행하고, 공영방송에서 ‘부자되세요’라고 메시지를 내보냈습니다. 이 대통령의 747 공약이 그 연장선에서 위력을 발휘했죠. 결국 우리는 신기루를 쫓아온 겁니다. 이번 금융위기를 우리 삶을 전반적으로 되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 이미 뽑아 놓은 이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회 지도층이 앞장서서 분위기를 바꾸면 대통령이나 정부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럴 것 같지 않다’고 했더니, 그는 웃기만 했다.

희망을 주지 못하는 각 정당의 문제를 짚어 보았다. 그는 길게 답변했지만 짧게 정리해 본다.

- 한나라당은 왜 그렇게 무능할까요?

“여야 마찬가진데, 인물과 정책이 없습니다. 여당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책임정치와 3권분립의 충돌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는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 민주당은요?

“딱하지요. 국민은 ‘야당다운 야당이 되라’고도 하고, ‘싸우지 말라’고도 합니다. 딜레마죠.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 진보정당은 어떻게 보십니까?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과 역할을 분담해야 합니다. 제도권 정당이면 합법적인 정당 활동에 치중해야 합니다.”

차기 대선에 대한 생각도 궁금했다.

- 박근혜 전 대표는 어떻게 보시나요?

“여론조사를 해보면 지역, 성별, 계층, 연령에 관계없이 15~18%의 고정 지지가 나옵니다. 무서운 자산이죠.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위치에 서 있다고 봐야겠지요.”

- 이회창 총재가 다음 대선에 또 나올까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연방제를 하자는 얘기, 권력분점형 개헌을 하자는 얘기는 출마의 명분을 얻기 위해서겠지요. ‘이명박 대통령도 당이 박근혜 체제로 굳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으로 영입해 박근혜 대항 카드로 쓸 것이다’라고 생각하겠지요. 잔머리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 본인이 그런 구상을 했겠지요?

(웃음) “그건 잘 모르겠네요.”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

- 정치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의 가치는 사람을 사람답게 해 주는 것입니다. 정치는 인간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포괄적입니다. 정치 지도자가 ‘나는 경제에 전념하겠다’는 얘기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 요즘 왜 이렇게 혼란스럽다고 생각하십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보의 가치를 확립하지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그 뒤 우파는 우파의 가치를 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좌파의 잘못을 공격하면서 집권했습니다. 그러니 747은 있어도 지향점은 없는 것입니다. 진지한 고민 없이 여기까지 온 것이죠.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저도 책임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질문으로 인터뷰를 끝냈다.

- 기자, 공무원, 정치인을 했는데 각각 어떤가요?

“저는 지금도 저널리즘을 향한 불타는 향수가 있습니다. 공무원을 할 때는 ‘주어지는 일을 감사하게 받아서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을 지켰습니다. 선친(윤석오)께서 ‘목표는 추구하되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침을 주셨는데, 나이가 드니 뜻을 알겠더군요. 정치는 저하고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2000년 한나라 ‘공천대학살’ 기획…이상득과 ‘삐끗’

여권 개편마다 ‘중책 물망’ 윤여준 전 장관
여권 개편마다 ‘중책 물망’ 윤여준 전 장관
윤여준 전 장관은 젊은 기자들과 만나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말이 잘 통하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그를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라고 평가한다.

그는 1939년 논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 1학년 때 늑막과 신장이 망가져 5년 동안 요양을 한 일이 있다. 병세가 너무 깊어 어린 나이에 ‘황천길이 멀다더니 대문 앞이 황천일세’라는 회심곡 가사의 의미를 절감했다고 한다. 5년 동안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온갖 철학책을 섭렵했다. 이때의 습관으로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됐다.

건강을 회복해 군대 생활을 마치고 66년부터 11년 동안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기자로 일했다. 77년에 해외공보관으로 직업을 바꿔 도쿄와 싱가포르에서 근무했다. 5·6공 때는 청와대와 안기부에서 의전·공보 비서관, 안기부장 특보 등의 일을 했다. 고위직의 길이 열린 것은 94년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판문점 회담에 참여했을 때였다. 폐쇄회로 텔레비전으로 협상 장면을 지켜본 김영삼 대통령의 눈에 띈 것이다. 청와대 공보수석으로 전격 발탁됐고, 문민정부 마지막에는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1998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요청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2000년 총선 기획단장을 맡아, 허주 김윤환을 비롯해 한나라당 중진들에 대한 ‘공천 대학살’을 기획했다. 당시 이상득 의원도 공천에서 탈락할 뻔했고, 이 일로 둘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 탈락자들은 민국당을 만들었지만, 한나라당이 원내 1당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에게 ‘장자방’ ‘제갈공명’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2001년, 대선을 1년3개월 정도 앞두고 이회창 총재의 곁을 떠났다. 2004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지만, 2000년 ‘학살 사건’에 대한 마음의 부담 때문에 정치를 그만두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마음 편히 살고 있다. 성한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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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탄핵 심판 때도‘대면 설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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