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락했다고 파면된 정상용 전 구산초등학교 교사가 23일 서울 은평구 구산초등학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며 등교하는 아이들과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root2@hani.co.kr
[뉴스 쏙]한겨레가 만난 사람 일제고사 거부로 ‘파면’된 정상용 교사
‘파·면’. 달랑 서류 한 장에 적힌 두 글자가 19년 교직 인생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평가지, 아이들에게 읽어줄 책 <몽실언니>를 넣어 다니던 가죽가방은 장롱 속에 모셔뒀다. 대신 등산 배낭에 깔개와 무릎담요, 장갑 그리고 헨리 소로의 책 <시민의 불복종>을 넣는다. 정장 대신 오리털 파카를 입고 그는 교실 대신 교문 밖 아스팔트 위로 출근한다. “안녕하세요” “안녕” 인사를 건네던 교문 앞에서 “징계철회” “복직투쟁”이란 구호를 외치고 있다. 10월 실시된 전국 단위 일제고사 때 아이들의 체험학습을 허락하고, 학부모들에게 일제고사의 부당성을 알리는 편지글을 썼다는 이유로 파면된 정상용 교사(서울 구산초·42)는 스스로를 ‘겁쟁이’라고 불렀다. 시험 감독을 거부하는 ‘적극적인 저항’ 대신 시험 응시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편지를 보내는 ‘소극적 저항’을 선택한 것은 ‘징계’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자고 일어나니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저항한 ‘투사’가 돼 있었다. 영하 9도의 매서운 추위가 덮친 22일 서울시교육청 앞 커피숍에서 정 교사를 만났다.
“징계 두려워 소극적 저항…사실 난 겁쟁이
복직 못하더라도 내 결정 후회하진 않을것 인터뷰 내내 학생·학부모 응원전화·문자
“혼내던 아이들 편들어주니 힘이 불쑥 나요” -파면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무엇입니까?
“부모님 모두 칠순을 바라보십니다. 충격으로 쓰러지시지 않을지 걱정이 돼 징계 사실을 숨겼습니다. 열흘 정도 아무것도 모르시던 부모님께서 뉴스에서 저를 보시고 제 방으로 뛰어오셔서 ‘저거 너 닮았는데, 너 아니냐?’고 물으셨습니다. 일제고사가 뭔지 모르시는 어머니는 제가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된 줄 아십니다. 할 수 없이 거짓말 좀 했습니다. 2년만 참으면 자동으로 복직될 테니 조금만 참으시라고요.” -부모님이 더 속상하실 것 같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다음날 어머니가 용하다는 점집에 가셨답니다. 평소 미신이라며 펄쩍 뛰시던 양반이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곳엘 가셨을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점쟁이가 ‘당신 아들은 관운이 좋아서 2년만 참으면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간다’고 했다네요. 어머니께서 얼마나 한시름 놓으시던지. 점쟁이가 그렇게 고맙기는 난생처음이었습니다. 하하하.”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시험 한 번 안 보게 했다고 자르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내셨습니다. 칠순을 바라보시는 경상도 양반이 얼마나 보수적이고 무뚝뚝하시겠어요? 신문도 꼭 보수신문만 고집하십니다. 그런 분이 결국 일제고사에 반대하신 셈이 됐죠. 하하하.” 그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말을 마칠 때도 항상 “하하하” 웃음으로 끝냈다. 교사로서 생명줄이 끊긴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고서도 웃는 표정으로 너무나 담담하게 말해 기자가 민망할 정도였다. 기자가 “담담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하자 그는 “어차피 복직될 거라 믿기 때문에 의연하고 싶다”며 또 웃었다. -당분간 생활도 걱정이겠어요? “아내도 교사인데, 이제 ‘외벌이’가 된 거죠. 얼마 전에 국회의원 나경원씨가 여교사 대우가 너무 좋다고 했잖아요? 교육 경력 13년 아내가 한달에 278만원 정도 법니다. 두 아이에 부모님까지 모시는 6인 가족이어서 넉넉한 돈은 아니죠. 파면당해 퇴직금도 절반으로 깎였는데 저축 좀 많이 해 놓을걸 하고 후회가 좀 되네요. 하하하.” -부인은 뭐라고 하던가요? “갑자기 아내가 저를 옷가게에 데리고 갔어요. 그 가게에서 제일 두껍고 따뜻해 보이는 오리털 파카를 하나 골라서 입혀주는 겁니다. ‘방송에 나오는 당신, 너무 추워 보이더라’면서요. 아내도 일제고사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인데, 파면까지 당할 줄은 몰랐다고 좀 놀란 눈치였어요. 이젠 복직투쟁에 나서는 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깁니다.” 그는 부인 자랑에 신이 난듯, 갑자기 “사실 아내는 눈이 예쁘다”는 뜬금없는 말을 해 기자를 웃게 만들었다. 지난 10월 일제고사 때 정상용 교사의 6학년 딸은 시험을 치렀다. 일부 보수 언론들은 ‘반 학생들은 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하고 자기 딸은 시험을 치르게 한 비도덕적인 교사’라고 정 교사를 공격했다. 정 교사는 딸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일러줬고, 그 뒤 딸이 시험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여러 차례 해명했지만 그의 이야기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언론보도를 본 딸은 “내가 시험 안 봤으면 아빠 학교에서 안 잘렸을지도 모르는데…”라는 말로 정 교사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딸 이야기가 나오자 정 교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딸이 상처를 받진 않았습니까?
“딸이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다닙니다. 징계가 결정된 다음날 자기 담임 선생님한테 ‘선생님, 파면이 뭐예요?’라고 묻더래요. 그 이야기를 전해듣는데 이번 사건을 겪으며 처음으로 눈물이 핑 돌았어요.”
-자녀들도 이 상황을 조금은 이해를 하나요?
“집회에 갔다가 11시쯤 집에 돌아왔는데, 10시면 자는 아이들이 뭘 하고 있어요. 첫째 딸이 4학년 동생하고 제가 집회 때 시민들에게 나눠주려고 만들어 놓은 유인물을 찍개로 찍고 있더라구요. ‘아빠, 나 잘했지? 잘했지?’ 하면서요.”
늘 웃는 얼굴인 그도 자식들 이야기가 나오자 담담해지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그는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출근투쟁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교장·교감 선생님의 반응이 너무 싸늘했습니다. 전날까지 같이 소주잔 기울이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불렀던 교장·교감 선생님이 교문을 막고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영하의 날씨에 밖에 서 있으면 낯선 사람들도 커피를 건네며 ‘힘내라’고 하는데, 한솥밥 먹던 동료가 그토록 냉정한 것이 가장 힘들고 슬프죠.”
인터뷰 도중에도 정 교사의 휴대전화가 계속 울렸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계속 전화하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잠깐 봐도 되느냐’고 양해를 구해 들여다보니 “선생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선생님, 내일 방학식인데, 우리 보러 꼭 오시는거죠?”라는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었다. 몇몇 학부모들은 “시험을 안 보기로 한 건 우리들인데 , 왜 선생님을 징계하냐”며 탄원서를 만들어 1700여명의 서명을 받아 건네줬다고 한다.
-요즘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은 뭔가요?
“아이들이 ‘선생님 가지 마세요, 졸업장은 선생님한테 받고 싶어요’라고 해주는 말입니다. 가장 말썽꾸러기인 ○○와 ○○이가 손팻말을 만들어 와 교문 앞에서 같이 시위를 했어요. 아이들이 간식도 사다주고, 교장·교감 선생님이 저를 밀어낼 때 울면서 매달리기도 하고요. 제가 혼도 많이 내고 나머지 공부도 많이 시켰는데, 서운하지도 않은지 아이들이 제 편을 들어줘요. 교사 생활 허투루 한 건 아닌 것 같아 없던 힘이 불쑥 납니다.”
-학교를 떠나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학급문집을 만들기로 했어요. 졸업 선물로 계획한 건데, 포기해야 하나 싶어요. ○○이는 중학교 가기 전에 공부 좀더 봐주려고 했고, ○○이한테는 야단만 치고 미안하다고 사과도 못 했는데…. 제가 몸이 아파서 체육을 2번 못했더니 아이들이 ‘체육 2시간 저금해 놨다’고 했어요. ‘푹~ 삭혀놨다가 졸업하기 직전에 맘껏 눈싸움이나 하자’고 했는데, 결국 그 약속도 못 지키네요.”
정 교사는 1989년 6월, 교사가 됐다. 첫 담임을 맡은 뒤 ‘장학사가 오니 청소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교실 비품을 보니 빗자루도, 쓰레받기도, 걸레도 없었다. “학부모들에게 손을 벌리라는 이야기”였다. 교장을 찾아가 빗자루 살 돈을 달라고 요청하고 학부모들에게는 “학급 물품 사 올 필요 없다”고 말했다. 며칠 뒤 한 아이가 “우리 엄마가 선생님은 참교육자라고 했다”고 그에게 말했다고 한다. “빗자루 사오란 말 안 하면 참교육자라니…. 대한민국 교육 현실이 그랬어요.”
마침 전교조가 결성돼 한창 떠들썩하던 와중이었다. 가입 사실이 들통나면 해직되던 시절이어서 그는 그해 연말 몰래 전교조에 가입했다.
-왜 ‘일제고사’를 거부했던 건가요?
“5년 전 공정택 교육감이 서울시 교육을 책임지면서부터 이미 ‘학교별 일제고사’는 부활됐어요. 우리 반은 학교별 일제고사도 안 봅니다. 대신 제가 문제를 만들어서 풀도록 합니다. 학부모들에겐 1년에 네 번 편지로 아이에 대한 정보를 꼼꼼하게 알립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제가 낸 시험을 보면서도 ‘선생님, 우리는 진짜 시험 언제 봐요?’ 합니다. 학교 전체, 혹은 전국 초등학교 전체가 보는 시험만 ‘진짜 시험’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반 아이들에 대해서는 담임이 제일 잘 압니다. 점수로 줄 세우고 등수 매기는 시험은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만 주고 부모들에겐 사교육만 조장할 뿐입니다.”
-그래도 전체 교육정책에 따라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적지 않은데?
“처음 임용돼 임용장 받으러 갔더니 장학사가 제게 ‘교사가 노동자라고 생각하냐, 전문가라고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교사는 전문성을 가진 노동자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교육당국은 늘 교사를 전문가라고 치켜세웁니다. 그런데 정책을 만들 때는 왜 교사들에게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합니까? ‘너희는 국가의 녹을 먹는 종이니 찍소리 말고 따라야 한다’는 건가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제 위치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고용자를 가장한 교육당국이 ‘너 나가’하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는 ‘노동자’일 뿐입니다.” 정 교사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복직이 안 되면 어떻게 할 건가요?
“소청심사위에서 결정이 번복될 거라곤 기대도 안 합니다. 결국 소송하게 될 테고, 최소 2~3년은 걸리겠죠. 길게, 멀리 내다보기로 했습니다. 복직에 실패해도 제 결정을 후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 인생에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여기까지였다고 편하게 생각하려고요. 복직이 안 되면…, 음… 제게도 꿈이 있습니다. 생태·환경운동에 투신할까 합니다. 우리 집사람은 ‘귀향해서 주말농장이나 하자’고 합니다. 하하하.”
이날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는 교사 파면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방호원(경비)하고 전경하고도 정들겠어요. 하하하.” 정 교사는 가방 안에서 깔고앉을 깔개를 꺼내 시위대 속으로 합류하며 예의 그 너털웃음으로 기자를 배웅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복직 못하더라도 내 결정 후회하진 않을것 인터뷰 내내 학생·학부모 응원전화·문자
“혼내던 아이들 편들어주니 힘이 불쑥 나요” -파면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무엇입니까?
“부모님 모두 칠순을 바라보십니다. 충격으로 쓰러지시지 않을지 걱정이 돼 징계 사실을 숨겼습니다. 열흘 정도 아무것도 모르시던 부모님께서 뉴스에서 저를 보시고 제 방으로 뛰어오셔서 ‘저거 너 닮았는데, 너 아니냐?’고 물으셨습니다. 일제고사가 뭔지 모르시는 어머니는 제가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된 줄 아십니다. 할 수 없이 거짓말 좀 했습니다. 2년만 참으면 자동으로 복직될 테니 조금만 참으시라고요.” -부모님이 더 속상하실 것 같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다음날 어머니가 용하다는 점집에 가셨답니다. 평소 미신이라며 펄쩍 뛰시던 양반이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곳엘 가셨을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점쟁이가 ‘당신 아들은 관운이 좋아서 2년만 참으면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간다’고 했다네요. 어머니께서 얼마나 한시름 놓으시던지. 점쟁이가 그렇게 고맙기는 난생처음이었습니다. 하하하.”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시험 한 번 안 보게 했다고 자르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내셨습니다. 칠순을 바라보시는 경상도 양반이 얼마나 보수적이고 무뚝뚝하시겠어요? 신문도 꼭 보수신문만 고집하십니다. 그런 분이 결국 일제고사에 반대하신 셈이 됐죠. 하하하.” 그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말을 마칠 때도 항상 “하하하” 웃음으로 끝냈다. 교사로서 생명줄이 끊긴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고서도 웃는 표정으로 너무나 담담하게 말해 기자가 민망할 정도였다. 기자가 “담담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하자 그는 “어차피 복직될 거라 믿기 때문에 의연하고 싶다”며 또 웃었다. -당분간 생활도 걱정이겠어요? “아내도 교사인데, 이제 ‘외벌이’가 된 거죠. 얼마 전에 국회의원 나경원씨가 여교사 대우가 너무 좋다고 했잖아요? 교육 경력 13년 아내가 한달에 278만원 정도 법니다. 두 아이에 부모님까지 모시는 6인 가족이어서 넉넉한 돈은 아니죠. 파면당해 퇴직금도 절반으로 깎였는데 저축 좀 많이 해 놓을걸 하고 후회가 좀 되네요. 하하하.” -부인은 뭐라고 하던가요? “갑자기 아내가 저를 옷가게에 데리고 갔어요. 그 가게에서 제일 두껍고 따뜻해 보이는 오리털 파카를 하나 골라서 입혀주는 겁니다. ‘방송에 나오는 당신, 너무 추워 보이더라’면서요. 아내도 일제고사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인데, 파면까지 당할 줄은 몰랐다고 좀 놀란 눈치였어요. 이젠 복직투쟁에 나서는 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깁니다.” 그는 부인 자랑에 신이 난듯, 갑자기 “사실 아내는 눈이 예쁘다”는 뜬금없는 말을 해 기자를 웃게 만들었다. 지난 10월 일제고사 때 정상용 교사의 6학년 딸은 시험을 치렀다. 일부 보수 언론들은 ‘반 학생들은 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하고 자기 딸은 시험을 치르게 한 비도덕적인 교사’라고 정 교사를 공격했다. 정 교사는 딸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일러줬고, 그 뒤 딸이 시험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여러 차례 해명했지만 그의 이야기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언론보도를 본 딸은 “내가 시험 안 봤으면 아빠 학교에서 안 잘렸을지도 모르는데…”라는 말로 정 교사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딸 이야기가 나오자 정 교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정상용 전 구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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