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구로구 항동
[매거진 Esc] 곽윤섭의 사진명소 답사기
서울은 세계적으로도 큰 도시다. 인구가 1천만 명을 넘고 땅도 그만큼 넓다. 강남의 고층 아파트들과 곳곳에 있는 달동네의 스카이라인은 같은 서울이지만 별천지처럼 보인다. 그래서 강남의 아이들이 강북의 오래된 골목을 보게 되면 이국적이라며 관심을 보인다는 말이 허언은 아닐 듯싶다. 생활사진가들이 예스러운 골목을 찾아다니는 것도 기본적으로 같은 욕구에서 나온다. 점점 사라지고 잊혀 가는 것들을 기억 속에 붙들어 두고 싶어하는 것은 사진의 속성이자 사진가의 속성이다.
서울시 구로구 항동 일대는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까닭에 동네의 모습에 큰 변화가 없다. 마을 가운데에 난데없는 기찻길이 있고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저수지가 있다. 철도의 한쪽 끝에 있는 공장 이름을 따 경기화학선으로 불리는 이 기찻길은 평소 동네 사람들의 산책로 겸 지름길로 쓰인다. 마을을 지나는 구간은 1㎞밖에 안 되지만 손바닥보다 조금 큰 철교도 하나 있다. 철교 밑은 바닥을 깔지 않아서 3미터 아래로 개천 바닥이 보인다. 발만 빠질 뿐 떨어질 염려는 전혀 없는데도 살짝 아찔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꼭 동행한 이성의 손을 붙잡게 된다고 해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철교’라고 부른다고 동네 주민이 귀띔해 주었다. 철길에서 내려서면 바로 항동 한가운데다. 중국집, 담뱃가게, 교회의 건물과 간판에서 1970년대 새마을운동 시절을 담은 사진들이 떠오른다.
이제 곧 항동 일대엔 큰 변화가 생긴다. 3만 평 규모의 수목원이 들어서기로 확정되었고, 우선 유채꽃밭을 조성하려고 땅을 갈고 있었다. 7호선 천왕역에서 내려 걸어오는 코스도 있지만 1호선 온수역에서 내려 성공회대학교를 통해 산길로 접어드는 코스를 더 권하고 싶다. 2000년께 학교 담장을 허물어버린 이 학교엔 교문도 없다. 개방이라고 할 것도 없이 동네 주민들이 휴식 공간으로 즐겨 쓴다. 학교 어귀엔 유일한 박사가 기증한 서양식 벽돌건물이 앙증맞게 서 있다. 이 대학의 나머지 건물들도 하나같이 특이하게 생겼다. 대학교 건물에서 바라보는 항동 주택가 너머 노을이 멋있다고 한다. 크지 않은 캠퍼스 곳곳에 산벚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여의도 벚꽃보다 늦게 피고 늦게 지며 꽃 색깔도 다르다는데 4월쯤에 벚꽃도 볼 겸 항동 일대를 다시 가볼 생각이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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