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혹적 실루엣의 을왕리 겨울 바다
[매거진 esc] 곽윤섭의 사진명소 답사기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주로 청춘 남녀들이 불현듯 바다가 보고 싶다면서 무작정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특히 바닷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가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답답하고 복잡한 도시가 숨이 막히는지 향수병처럼 바다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집에서 입던 트레이닝복에다 운동화를 끌고 잠깐 걸어가거나 버스 한번 타면 바로 바다가 나타나던 고향과 비교하면 서울은 바다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 특히 추운 겨울엔 무작정 나갔다간 후회하기 딱 좋다.
교통편을 고려한다면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인천시 중구 을왕동에 있는 을왕리해수욕장이다. 물도 깨끗하고 해변도 볼만하다. 서울에서 가깝다는 이점 덕에 겨울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을왕리해수욕장은 서해 바다이니 갯벌이 널찍하다. 갯벌에서 본 겨울 바다의 역광은 특히 선과 빛이 변화무쌍하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모델 삼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실루엣으로 찍어 보았다.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막 찍을 일은 아니다. 인물들끼리 겹치지 않는 순간을 노려야 하고 가능한 한 동작이 클 때를 기다려야 한다. 배경으로 보이는 산도 역광이니 검게 찍힌다. 따라서 인물과 서로 겹치지 않는 눈높이를 찾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먼바다에서 물이 막 들어오기 시작한 시간, 역광으로 바라본 풍경이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컬러인데도 눈으로 볼 때부터 흑백으로 보인다. 썰물이 남긴 물길 자국도 자연이 만든 판화처럼 보였고 바닷가에 정박한 고깃배와 방파제도 제대로 배경 노릇을 한다.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인근의 왕산해수욕장은 상대적으로 개발이 되질 않아 한산해서 좋다. 지하철로 인천국제공항역까지 가서 버스로 갈아타면 을왕리까지 갈 수 있다.
kwak1027@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