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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가 몰락? 아직 발전하지 못했을 뿐”

등록 2009-04-16 19:30수정 2009-04-17 15:40

중국 좌파들의 시각을 대변하는 우유즈샹의 판진강(오른쪽) 대표는 시사평론가 궈쑹민(왼쪽), 장훙량(가운데) 중앙민족대 교수와 함께 기자를 맞았다. 좌파 이론의 고수들인 이들은 “중국에서 우파는 매국노, 좌파는 애국자”라고 주장하며 지금 중국은 미국이 쓰는 G2라는 기만전략에 놀아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중국 좌파들의 시각을 대변하는 우유즈샹의 판진강(오른쪽) 대표는 시사평론가 궈쑹민(왼쪽), 장훙량(가운데) 중앙민족대 교수와 함께 기자를 맞았다. 좌파 이론의 고수들인 이들은 “중국에서 우파는 매국노, 좌파는 애국자”라고 주장하며 지금 중국은 미국이 쓰는 G2라는 기만전략에 놀아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우유즈샹 서점’의 좌파 논객들
‘발전한 나라’ ‘G2’라고 치켜세우며
중국 돈으로 금융위기 구하려는 미국

신자유주의가 남긴 것은 양극화뿐
사회주의로 평화적 발전 추구해야

네모난 탁자 앞에 세 명의 절세고수가 앉아 있다. 최근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좌파무림의 실력자들이다. 녹차 향이 감도는 탁자 위에는 간밤에 날아든 괴이한 첩지 한 장이 놓여 있다. “요즘 중원무림에 좌파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하니 감히 견식을 청하오.”

이들은 몇 해 전부터 ‘신자유주의’가 이끄는 우파무림과의 결투에서 심오한 무공을 선보였다. ‘사회주의’ 내공이 절정에 이르러 만독불침(어떤 독도 침범하지 못함)의 경지에 올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들의 무공은 60년 전 중원을 통일한 좌파무림의 전설 ‘마오쩌둥’이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좌파의 소굴로 알려진 책방 ‘우유즈샹’(烏有之鄕) 판징강(32) 대표와의 만남은 무협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작했다. 애초 그에게 인터뷰를 청하며 질문지를 보냈는데, 책방에 들어서니 두 사람이 더 앉아 있었다. 질문이 좌파 전체를 향한 것이어서 빼어난 논객들을 초청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실로 도탄에 빠진 무림을 구하려 검을 든 협객들 같았다. 작금의 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말로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제 사회주의의 깃발을 다시 들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판 대표에게 무림을 수호하는 ‘용의 전사’가 되기를 꿈꾸는 ‘쿵푸 팬더’ 같다고 했더니,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느냐며 웃는다.

옆에 있던 시사평론가 궈쑹민(40)이 북한의 로켓 발사 문제를 거론하면서 갑자기 대화가 가팔라졌다. 그는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제재한다고 하는데, 왜 한국도 거기에 동조하느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그게 미사일이든, 인공위성이든 한민족의 것이 될 테니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공군 조종사 출신인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시사평론가로 변신했다. 2003년 인터넷 포털사이트 소후가 주최한 제1회 시평대회에서 일등을 했다.)

‘우유즈샹 서점’의 좌파 논객들
‘우유즈샹 서점’의 좌파 논객들

-그런 생각은 일반적인 좌파들의 견해와는 다른 것 같다. 중국에서 좌우파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서방의 좌파와 중국의 좌파는 다르다. 서방에선 1980년대 소련이 붕괴하자 좌우파 모두 사회주의를 포기했다. 좌파는 복지를, 우파는 시장을 중시하지만, 자본주의를 신봉한다는 점에선 한통속이다. 그러나 중국의 좌우파는 철저하게 대립한다. 좌파는 여전히 사회주의를 신봉하고, 우파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지지한다. 국가관이란 기준으로 보면 좌파는 애국자이고, 우파는 매국노이다. 애국주의는 외국의 좌파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중국 좌파만의 특징이다.”

-우파가 누구한테 나라를 판다는 말인가?

“좌파는 중국을 ‘발전하고 있는 나라’로 본다. 그러나 우파는 중국을 ‘발전한 국가’라고 우긴다. 우파의 주장은 중국의 힘을 과장해 이익을 보는 미국의 계산에 놀아나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이라면 속옷까지 벗어준다. 지금 중국에선 우파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을 초월해 있다. 이번 금융 위기로 중국이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고 있는지 아는가? 중국 외환보유고의 태반이 미국에 투자돼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중국에 고마워하는가?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고약한 이웃에 맡겨둔 것이나 진배없다.”

미국이 입에 오르자 중앙민족대 교수 장훙량(50)의 독설이 불을 뿜었다.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뿐 아니라 아시아의 부상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잠시 자리를 뜨더니 중국을 에워싼 미사일 배치도를 들고 와선 미국이 중국을 소련처럼 붕괴시키려 한다고 열을 올린다.(중앙민족대 증권연구소 주임이기도 한 그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금융 문제를 바라본다. 인터넷에선 그를 ‘국가의 금융 안보를 대변하는 민간인’이라고 즐겨 부른다.)

-금융 위기 이후 국제질서가 미국과 중국(G2)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마당에 미국에 너무 적대적인 것 아닌가?

“G2를 말하는 이가 누구인가? 바로 미국이다. G2란 주머니가 빈 미국이 중국의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어낸 말일 뿐이다. 중국이 자원과 노동력을 희생해 벌어들인 돈으로 미국의 금융자산을 구하려는 수사다. 물론 금융 위기로 세계는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개의 발전 모델로 나뉘었다. 이런 관점에선 G2라는 개념이 통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직은 G2가 아니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중심적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중국은 아직도 발전하고 있는 나라에 불과하다.”

-만약 국제질서가 G2로 재편되면 세계가 더 좋아지는 것인가?

“당연하다. 중국의 근원은 평화적인 동방의 문화다. 서방의 문화는 약육강식의 생존방식을 강요한다. 평화적 발전을 추구하는 중국과 동방 문화는 세계를 다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 최근 금융 위기 속에서 거리에 나선 영국과 프랑스 학생들이 외친 구호가 바로 중국의 구호다. 사람을 기본으로, 노동을 존중하고, 발전의 열매를 같이 누리자는 것이다. 중국은 신자유주의가 아닌 다른 길을 인류에 제시할 수 있다.”

판 대표가 신자유주의는 극단적인 이윤 추구를 정당화하는 논리라고 거들고 나섰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사람들에게 한시라도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것처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껏 중국의 금융 자유화와 개방을 외워댔는데, 지금 세상을 보면 중국이 그런 사기에 넘어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냐며 눈을 부라린다.

-하지만 중국의 발전은 어떤 측면에선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덕분이 아닌가?

“신자유주의가 중국에 준 이익은 단 한 푼도 없다. 신자유주의는 중국의 양극화를 초래했을 뿐이다. 재산은 소수에 집중됐고, 노동자들은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이들은 늙어서도 사회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 교육, 의료, 거주, 양로 같은 기본적 복지는 신자유주의가 선동하는 ‘작은 정부, 큰 시장’에선 실현 불가능하다. 노동자들은 지금 공산당에 너희가 ‘사유당’이냐고 묻는다. 신자유주의가 중국에 끼친 유일한 공로는 그런 길을 가선 안 된다는 반면교사의 교훈을 줬다는 것이다.”

-중국이 사회주의를 밀고 나갔다면 지금보다 더 좋아졌을 것이라는 얘기인가?

“중국이 사회주의로 더 나아갔더라도 재산이 지금보다 결코 적진 않을 것이다. 지금 중국의 재산은 창조한 것이 아니다. 본디 갖고 있던 자원을 현금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이런 자원의 현금화는 중국인들을 약탈하는 것이다. 중국은 저렴한 노동력으로 상품을 만들어 미국에서 달러를 벌어들인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손실을 막기 위해 미국 국채를 사들인다. 미국이 국채를 판 돈은 다시 중국에 투자된다. 그리곤 결국 저임금에 기초한 상품 생산으로 이어진다. 이런 순환의 결과 중국에 남는 것은 제로다. 중국은 명목상으로만 부자가 된 것이다.”

장훙량이 사회주의야말로 애초 중국과 서방을 가르는 기준이었다며 주석을 달았다. 사회주의 중국에선 교육, 의료, 거주, 양로가 보장됐고, 모든 이들이 국가가 제공한 시설에서 여유로운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며 가슴을 친다. 그땐 지금처럼 대출 받아 집을 산 뒤 대출금 갚느라 평생을 보내는 ‘방의 노예’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이미 사회주의의 몰락을 목도하지 않았는가?

“사회주의가 일어날 때 인류는 진정한 공유제의 기반을 갖지 못했다. 역사가 그 정도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 소유제가 공유제 대신 들어섰다. 그러나 국가 소유제는 곧바로 관료 소유제로 타락했다. 관료 소유제는 관리는 없고 집단의 이익만 있다는 점에서 사유제보다도 못하다. 그래서 결국 사유제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사회주의는 결코 몰락한 적이 없다. 사회주의가 아직 발전하지 못했을 뿐이다.”

-중국은 지금은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는가?

“중국은 ‘사회주의의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마르크스의 생산력 결정론과는 다른 창조적인 노선이다. 사실 중국은 사회주의를 실현하기에 좋은 전통을 갖고 있다. 대중들의 사회주의에 대한 열망과 지지도 거대하다. 최근 도처에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마오쩌둥 주석의 기념관을 찾고 있지 않은가? 중국인들 대부분은 지금도 여전히 사회주의를 바라고 있다.”

-‘사회주의의 새로운 길’은 중국 정부가 얘기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와 같은 것인가?

“사회주의의 새로운 길은 민간 차원의 토론물이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정부의 언어다. 우리의 토론 중에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와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핵심은 ‘발전’이다. 성장을 중요하게 본다. 그러나 우리가 토론하는 사회주의의 새로운 길은 ‘공평’을 중시한다. 후진타오 주석이 제시한 과학발전관이나 조화사회론은 우리의 이념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우파무림에선 좌파를 ‘눈은 작고, 입만 큰’ 사람들의 무리라고 비웃곤 한다. 세상의 변화를 보지 못하면서, 목청만 높인다는 비아냥이다. 언론 통제나 인권 침해 같은 중국 사회의 문제를 실제로 개선하는 데는 기여하지 않고, 고담준론만 즐긴다는 비판도 던진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판 대표에게 톈안먼(천안문) 사태를 좌파는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선 말할 수 없다”며 악수를 청했다.

당신이 좌파라면 꼭 들러보시라~

‘우유즈샹’을 찾아가는 기분은 묘했다. 우유즈샹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옮기면 ‘유토피아’가 될 법한 문패를 단 책방이라니. 책방 주인은 스스로를 헛된 꿈을 좇는 이상주의자로 여기는 것일까?

우유즈샹은 베이징 런민대(인민대) 근처의 한 빌딩 9층에 ‘까마귀 둥지’처럼 숨어 있었다. 건물 밖에선 간판이 보이지 않았으니, 외부인들에겐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공교로움이 이곳이 중국 좌파들의 아지트라는 세간의 소문을 실감하게 했다.

우유즈샹은 2003년 9월 문을 연 작은 책방이다.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사회주의의 대의가 흔들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중국의 좌파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힘을 합쳐 만들었다. 처음엔 베이징항공대 근처에 둥지를 틀었으나, 이곳이 철거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아왔다.

우유즈샹은 중요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각종 강좌와 웹사이트를 통해 좌파의 시각을 중국 사회에 투영한다. 중국 최대 검색사이트 바이두의 백과사전은 “중국 좌파 논단의 진정한 인사들이 포진해 있는 곳”이라며 “당신이 좌파라면 반드시 들러볼 곳”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유즈샹의 목표는 △공평확대 내수 △정의창조 재부 △평등격발 활동 △자유향수 격정이라는 네 가지 슬로건에 압축돼 있다. 이들의 일차적 공격 목표는 신자유주의다. 세계 곳곳을 휩쓴 신자유주의가 이제는 중국에까지 침투해 국가와 인민의 이익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본다.

판징강 대표는 이곳의 두 번째 대표다. 친구가 맡고 있던 자리를 어쩌다 보니 물려받게 됐단다. 중국인들은 개인사를 밝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며, 더 이상은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다. 아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회주의를 향한 열정에 비해선 너무나 수줍었다.

글·사진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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