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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승리, 진보정당 통합 계기이자 논쟁 계기”

등록 2009-05-07 19:39수정 2009-05-08 10:29

후보 단일화로 출마 접은 김창현.
후보 단일화로 출마 접은 김창현.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후보 단일화로 출마 접은 김창현




우리의 눈물과 땀, 한숨으로 얻은 울산
조승수 의원이 잘해야 내가 위안받아

진보진영 대통합엔 상당한 시간 필요
내년 지방선거 전면적 연합은 어려워

후보 단일화. 말을 쉽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한번 선거전에 뛰어든 사람이 말머리를 돌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정치권에 몸담아본 사람이라면 안다. 더구나 ‘단일후보만 되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양쪽 모두 가질 때, 단일화는 훨씬 풀기 힘든 고차 방정식이 된다. 4월29일 울산 북구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진보 진영은 그 어려운 문제를 풀었다. 진보신당의 조승수 후보와 민주노동당의 김창현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했을 때, 이미 선거는 끝났다. 투표를 불과 사흘 앞둔 시점이었다.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의 표차는 불과 26표였다. 조승수 568표(31.27%), 김창현 542표(29.86%) …. 김창현씨는 깨끗이 후보직을 물러났다. 두 사람의 지나온 궤적을 생각한다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조승수와 김창현은 1998년 울산에서 북구청장(조승수)과 동구청장(김창현)으로 정치권에 함께 진입한 진보운동의 동지였다. 2007년 대선 직후 민주노동당이 쪼개지면서 둘은 결정적으로 갈라섰다. 두 사람은 민주노동당내 두 세력, 이른바 ‘자주파’(김창현)와 ‘평등파’(조승수)의 핵심이었다. 그때 <한겨레>가 주선한 대담에서 두 사람은 두시간의 격한 토론을 끝낸 뒤 서로에게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정말 맞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의 개인적 관계가 어떻든, 울산의 단일화 성공은 진보진영 연대와 통합의 발판을 놓은 것으로 많은 이들에겐 비쳐진다. 정말 그럴까. 6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김창현씨(47·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를 만났다. 우선 그의 심경이 궁금했다. 앞으로 진보 진영의 재통합이 가능할지 묻고 싶었다. 여전히 민주노동당 한켠에 드리워진 ‘친북’ 논란도 비켜갈 수 없는 주제였다.

■ 인터뷰/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선거 끝나고 조승수 의원(당선자)은 한번 만났나요?
=아직 안 만났어요.  

-전화는 왔었어요?
=단일화 여론조사 결과를 알고 전화가 한번 왔지요. 잘 하라고 그랬죠. 이기라고요. 그랬더니 내몫까지 해서 이기겠다고 하더라고요.

-선거 끝나고는 통화하거나 만난 적은 없네요?
=예. 아직 뭐….

-여론조사로 단일화 했잖습니까. 표 차이가 26표로 굉장히 적었는데, 결과를 봤을 때 심정이 어땠습니까?
=솔직히 얘기한다면, 많이 안타까웠죠. 여론조사 결과에 믿음도 많이 가지 않았고…. 왜냐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워낙 제가 수직 상승하는 분위기를 현장에서 느끼고 있었고, 승리에 대한 믿음이 강해져 있어서 믿어지지가 않았죠.

-처음에 단일화 얘기가 나왔을 때 김 후보는 민주노총 조합원 투표로 하자고 했고 조 후보는 여론조사를 하자고 했잖아요, 그래서 진통을 많이 겪었고 협상이 깨지기도 했는데, 막판에 마음을 바꿔서 여론조사 안을 받은 이유는 뭔가요?
=단일화는 국민적 바람이었어요. 지역에서도 대세였지요. 뭐냐면, 선거기간 내내 무척 힘들었어요. 선거운동이란 건 당을 알리고, 본인의 소신, 철학 내지는 노선 이런 것을 적극적으로 선전하는 행위잖아요.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공격, 진보신당의 분당에 대한 심판, 차별성 부각 등 여러 가지를 얘기해야 하는데, 이게 단일화라는 단어 하나에 묻혀버리더라구요. 유권자 10명 중 9명은 만나면 ‘단일화 안하십니까’, ‘단일화하면 될 것 같은데’ 이런 질문을 하시더라 이겁니다. 이러다 보니까 안하면 ‘양김씨’(1987년 대선 때 후보단일화에 실패했던 김영삼·김대중씨) 가 되겠더라구요. 그런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단일화 할 겁니다’ 했지요. 단일화는 국민적 바람이기도 하고 노동자들이나 진보진영의 숙원처럼 돼 있었어요. 막판까지 유불리 따지지 말고, 단일화 방식이 저한테 유리하게만 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마지막에 받은 것이고, 여론조사 자체에도 자신감 있었어요. 실제로 분위기가, 조 후보는 인지도가 원래 높았던 것이고, 저는 낮은 인지도로 시작해서 지지율 상승 추세가 계속되고 있었죠.

-단일화가 안되고 한나라당 후보와 3자 대결이 됐다면, 한나라당에 졌겠죠?
=중앙당에서 자체 여론조사를 했는데, 후보 등록하는 날 보니까 한나라당이 25%고, (조 의원과 나) 둘이 21%로 딱 붙어 있어요. 선거전이 진행되니까 한나라당은 30%까지 올라가는데 우리 둘은 23~24%로 가더라고요. 그러다가 단일화 합의를 하고 난 직후인 24일 여론조사를 보니까 제가 30%, 조 의원이 28%, 한나라당 후보가 23%까지 떨어졌더라고요. 단일화 소식을 듣고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빠져나간 거죠 . 둘이 계속 오차범위 안에 있었는데, 이걸 여론조사로 단일화하는 건 참 어떻게 보면 말이 안되는 거죠. 그런데 시간이 없으니 오차범위 무시하기로 하고 여론조사를 한 거죠, 1%포인트만 뒤져도 지는 걸로.

-어찌 보면 제비뽑기 비슷하게 돼버렸네요.
-사실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했는데, 그만큼 단일화가 절박했던 거죠.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우리가 선거에서 2위를 하겠더라고요. 하지만 그러면 역사의 죄인이 되겠다는 판단을 했던 거죠. 

-아무래도 민주노동당 쪽에서 보면, 조승수 후보가 지난 대선 직후 종북(從北)주의 논쟁을 촉발시킨 장본인 아닙니까? 그래서 조 후보와의 단일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강하게 있었고 지금도 있지요. 실제로 앞으로 (단일화에 대한) 평가가 이뤄질 겁니다. 저나 단일화를 봤던 다른 분들은,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해야 한다, 국민들이 바라는 단일화 개념에는 분열하지 말아라, 그러니까 분당에 대한 문제의식도 녹아있는 단일화였던 거죠. ‘단일화해서 한나라당 이겨라’라는 건 당면한 것이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은 과오다’라는 게 있다고 본 거죠. 당 내부에 조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지만, 단일화라는 대의와 진보진영을 통합하라는 대의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죠.

-여론조사 방식을 받지 말자는 의견은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실제로 진보진영에는 진보진영다운 단일화 방식이 있는 거예요. 제가 수차례 주장했거든요. 조합원 총투표는 울산에서 보면 상당한 전통이 있어요. 조합원의 지지를 얻어서 하는 선거, 그렇게 해야 대중적 역동성도 끌어내고 승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주인공으로서 노동자를 훈련시키는 것, 그렇게 진보 진영이 당을 키워나가는 것이거든요. 이번에도 그런 전통을 따르자고 제안한 건데요, 하지만 유불리로만 보면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에) 조직력이 있으니까 상대방이 우려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도 돌아보면 (조합원 총투표 방식이) 무산됐다는 건 안타까워요. 안 좋은 선례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조합원 총투표 제안이 무산됐을 때, 여론조사로 단일화하자는 데 반대하는 분들은 명분이 있는 것이었어요. 진보적 가치와 상관없는 여론조사 방식으로 단일화한 게 의미 있느냐, 그냥 넘겨주는 건 아니냐는 우려를 비롯해서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여러가지를 설명했죠. 단일화의 역사적 의의와 승리에 대한 자신감 같은 것들이 맞물려 있어서 받았구요.

-어쨌든 단일화를 많은 이들이 환영했고, 진보진영도 안도한 부분이 있는데, 이번 단일화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재통합의 중요한 계기, 즉 발판이나 씨앗이 됐다고 평가하십니까?
=분명히 긍정적으로 작용을 하겠죠. 더불어서 상당한 수준의 논쟁과 과제도 함께 던져지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어떤 과제인가요?
=제가 TV토론 등을 통해서 계속 제기했습니다만, 단일화가 왜 나왔냐 하면 분당 때문입니다. ‘분당’이 역사적 과오냐 아니냐, 그쪽에선 ‘분화’라 표현하고 또 단일화를 때로 협력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거든요. 단일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이고 향후에도 단일화라는 개념, 즉 진보진영 대통합이라는 개념에서 기준과 원칙이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겁니다. 크게 두가지인데요, 분열·분당에 대한 입장 그리고 당시 벌였던 종북(從北) 논쟁에 대한 입장, 이런 것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서로 간에 옳았다 잘못됐다는 제기와 더불어, 그런 것들에 대한 합의, 이런 지점들이 있어야 앞으로도 단일화든 대통합이 있을 겁니다.

이번에는 워낙 급하게 선거를 이겨야 한다는 것 때문에 단일화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묻혀버렸죠. 우리가 (분당 이후) 1년 동안 만나본 적도, 한자리에 앉아 평가한 적조차 없었는데, 하필이면 종북 논쟁 일으키고 선도 탈당했던 조 후보(가 단일화 대상이)라 당내에서 당원들에겐 상당한 받아들여지기가 힘들었던 것이죠. 단일화라는 건 누가 (단일후보가) 되든 밀어준다는 의미인데, 그래서 박승업 (민노당) 대변인 같은 분은 못 받아들인다고 사퇴했죠. 박 대변인 사퇴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일정 부분 당원들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라고 봅니다.

-단일화가 성공했으니까 두 당의 연대, 재통합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도 같지만, 지금 얘기를 들어보면 갈등은 여전히 깊게 남아 있고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조만간 재통합으로 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서 전면적인 선거 연합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딜레마죠. 뭐냐면 빠르게 통합될 거라고는 보지 않고 있고, 그러나 지방선거는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거죠. 아마도 전국적으로는 (선거연합이) 안 될 겁니다. 이번 단일화의 특징은, 단일화가 되면 이긴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서로 요구사항이 같았던 것이고, 그래서 어려워도 마음에 안 들어도 (단일화를) 한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이번에 단일화를 안 했다면, 대중적으로 울산에서 진보라는 단어를 꺼내지 못할 정도로 공분을 자아낼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던 겁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으로는 여기저기서 경쟁이 이뤄지겠고, 울산에서는 단일화가 안되면 선거가 어려워질 테죠. 그런데 그 이전에, 이번 단일화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대중적으로 단일화란 건 누가 돼도 상관없다는 개념이 되어버리니까 민노당과 진보신당 사이에 차별성이 없게 되어버렸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왜 둘이 나왔는지 설명이 안 돼요. 분열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왜 둘이 출마했는지) 격론을 거쳐서 (유권자가) 판단하게 하는 시간이 일정기간 있어야 하고, 그 뒤에 사람들이 ‘그만들 싸우고 단일화해라’ 했다면 균형이 팽팽하게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토론도 하기 전에 단일화가 대의명분이 돼 버렸고, 양당 대표가 합의를 먼저 해버렸고, 그러니까 단일화라는 단어 들어오고 나서는 맹렬하게 서로 비판할 수도 없게 돼 버렸던 거죠. 단일화란 단어만 앵무새처럼 외우고 가게 되니….

이번 선거가 좀 독특했습니다. 한나라당을 열심히 공격도 못해봤고, 한달 내내 단일화로 끌다가 막판에 돼서 한 사람이 이기는 희안한 선거가 된 거죠. 그렇다면 내년엔 기준이 있어야 할 겁니다. 내년까지 가는 동안에 왜 두개 당으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대중적 설명을 할 필요가 있을 거라는 거죠. 하나로 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단일화 과정에서) 노동자와 울산시민들이 대중적으로 보여준 건 두 당하지 말라는 겁니다. 진보진영은 하나로 합치라는 요구입니다. 정치를 국민 보고 해야지 운동권끼리의 이념 분화를 맨날 얘기해봐야 차별을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진보진영 통합을 위한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보고요, 제가 진보진영 대통합의 기수가 됐다고 했는데, 조승수 의원도 어떤 얘기를 했건 간에 대통합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진보진영의 사랑을 받아 (당선)된 것이지 분당돼 나간 힘으로 된 건 아니거든요. 통합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를 밀어준 절반이 기뻐하지 않을 겁니다.

-단기간에 두 당의 재통합으로 이어지긴 어렵다고 봐야할 것 같군요.
=손바닥도 부딪쳐야 소리가 나는 건데, 이런 것(단일화)을 계기로 조 의원이나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적극성을 띠어주면 몰라도, 분열은 잘 한 것이고 이념 분화가 필요한 거라고 쭉 가면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쪽에선 (분당이) 불가피했다고 얘기하니까요.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은 이번 울산 재보선에서 여론조사 26표 차이로 조승수 진보신당 후보에게 진보진영 단일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그는 “조 의원의 한 석은 우리의 눈물과 땀과 한숨이 다 녹아든 자리”라며 “(조 의원이) 종북이나 분당 문제와 관련한 진정한 자기성찰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물러선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종찬 선임기자 <A href="mailto:rhee@hani.co.kr">rhee@hani.co.kr</A>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은 이번 울산 재보선에서 여론조사 26표 차이로 조승수 진보신당 후보에게 진보진영 단일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그는 “조 의원의 한 석은 우리의 눈물과 땀과 한숨이 다 녹아든 자리”라며 “(조 의원이) 종북이나 분당 문제와 관련한 진정한 자기성찰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물러선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당 차원에서 지방선거 전까지 재통합 또는 최소한 선거연대 같은 걸 최우선 과제로 놓고 추진할 생각이 있습니까?
=그건 강기갑 (민노당) 대표나 여러 지도부의 기본 사고입니다. 진보진영 재통합의 중심이 되겠다는 거죠. 저는 이번에 중앙으로 진출하는 데 실패했으니까 직접 나서기는 힘들겠지만 전반적 흐름은 그렇게 갈 겁니다.

-예전에 권영길 전 대표를 만나도 그렇고,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시던데요.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민노당과 민주당 사이엔 장강이 흐른다’고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선 뒤엔 보면,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갔는데도 우리 사회는 엄청나게 바뀌고 있거든요. 오히려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장강이 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진보진영뿐 아니라 민주당까지 포괄하는 범개혁 또는 범진보진영 연대, 이런 게 필요하다는 얘기도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주당과 민노당 관계는 민노당과 진보신당과의 관계와 좀 다릅니다. 진보와 보수의 기준이라고 할 수도 있고, 당의 정강정책 차이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비정규직 문제도 그렇고 미국에 대한 시각, 노동 정책, WTO 체제에서 에프티에이(FTA) 등 이런 것들에 대한 기본 차이가 사실 심각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민주당과 선거연합 이룬다는 건 당에서 기본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고요. 다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기본적으로 갖고 있던 성과인 민주적 기본질서조차 무위로 돌려버리면서, 파쇼가 아니냐 할 정도로 가고, 남북관계는 거의 군사독재 시절로 돌아가고 있죠. 민생이 철저히 붕괴돼 버렸고요. 그래서 이명박 정부와 맞서 싸우기 위한 연대는 다양하게 존재할 것 같아요.

-하지만 선거에서까지 연대하기는 어렵다는 거죠?
=그건 쉽지 않은 문제죠. 원래 후보 단일화는 통합할 수 있는 대상과 할 수 있는 것이구요, 민주당과는 그런 수준의 연대까지 하기에는 너무나도 해결해야 할 벽이 높다고 봅니다.

-분화든 분열이든,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온 계기의 중심엔 이른바 종북주의 논란이 있습니다. 민노당 자주파들은 조 의원 등이 종북주의 문제를 꺼내니, ‘실체 없는 유령이다, 유령을 자꾸 꺼내 혼란시킨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유령이라고 해도, 유령을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10명에 7~8명쯤 되면 단순히 실체가 없다고 넘길 수는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종북이란 표현 자체는 격하고 심하긴 하지만, 종북이든 친북이든 민노당이 북한에 가깝다는 생각은 외부의 많은 사람들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민노당이 외연을 넓히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한나라당이나 조·중·동같은 수구세력들은 민주당도 친북좌파라고 해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6·15 공동선언도 북한의 통일전선에 말린 꼴이라고 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4 선언도 퍼주기의 극치라고 보지 않습니까? 수구가 보기에는 민주당 정부 안에서 친북좌파들이 암약하고 있다고 본다는 것이죠. 민노당은 통일을 지향하고,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연방제 통일하자, 평화적으로 통일을 하려면 체제와 제도, 정권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평화통일을 위해선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고 연방제 통일하자고 누구보다 앞장서 말해왔던 것입니다. 통일을 가로막는 세력의 제일이 미국 아닙니까. 미국이 남북 대치상황에서 현상 유지론을 강화시키려 하고, 심지어 북한 정권을 제거해야 한다고까지 해왔습니다. 이런 건 상당히 위험하다는 관점을 유지했던 것인데, 그런 걸 당 외부에서 수구가 볼 때는 친북좌파라고 얘기할 수 있었을 겁니다. 당내에서도 종종 이견이 발생했는데 이견은 몇가지 사안에 대해 논쟁이 있었던 것이거든요. 논쟁을, 대선 이후에 당내 민주주의로 풀어야 할 당내 패권주의 문제를 무차별적으로 섞어가지고 친북 내지는 종북이다 라고 했던겁니다. 이건 차분하게 토론해야 할 문제죠. 다만 ‘종북’이라는 없던 단어를 만들어내니까, 이제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도 즐겨 쓰던데요, 종북이라는 증오가 담긴 단어는 쓰지 말았으면 합니다.

-물론 극우에선 민주당도 친북좌파라고 보는 사람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요즘은 합리적 보수 쪽에서는 대북 민간교류는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등 대북 교류나 인도적 대북 지원 등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폭넓게 공감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결국 갈라지는 지점은 김정일 북한 정권에 대한 평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정일 정권은 인민을 굶주리게 하면서도 핵 개발을 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반동적인 정권인데 왜 (민노당은) 비판을 안 하느냐는 지적이 많은데, 김정일 정권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북한을 평화롭게 통일해야 할 파트너라고 볼 때, 가장 주의할 것은 체제와 제도의 인정입니다. 김정일 정권은 현존하는 실질적인 살아있는 정권이잖아요. 그 체제, 그 정권을 부정하면, 실제로 북과 평화롭게 할 수 있는 건 민간교류 외에는 할 게 없게 됩니다. 예전엔 정부와 언론 모두 북의 정권 자체를 비판하고 불인정해 왔잖아요. (북한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불온시했고요. 지금 우리가 굳이 김정일 정권이 잘했다 잘못했다고 하기 전에, 기본 태도는 통일해야 할 정권으로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든 것이죠. 인권은 틀림없이 인류 보편의 가치이고 (인권에) 문제가 있다면 해결해야 하겠지만, 북한 정권 문제나 인권 문제나 공통적우로 폴리티컬한(정치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고 봅니다. 2004년에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만들어지고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표현을 쓰면서 북한을 붕괴시키겠다고 했는데, 그럴 때 왜 (민노당은) 함께 북한을 심하게 공격하지 않았느냐, 친북이다라고 하면 옳지 않다는 겁니다. 김정일 정권 문제는 훨씬 폴리티컬하게 접근해야 하는 거죠.

-미국도 버락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고 태도가 바뀌고 있는 거 아닌가요? 반면 북한의 태도는 별로 변화가 없는 상황이고요.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고 실제로 변화하는 측면이 나타난 바 없고, 특히 이명박 정부는 적대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지금 북한은 자신들의 추구하는 미국과의 3단계 타결 중 마지막 단계에 와 있습니다. 비핵화를 하는 대신 영구평화를 얻자는 마지막 단계에 접근해서 가고 있는 게 아니냐고 보고 있어요.

-북한의 전략 같은 것까지 문제 삼는 건 아니고요, 미국이나 이명박 정부가 잘못할 수도 있고 북한을 자극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개성공단 교류를 막거나 로킷 발사를 하는 것 역시 잘못된 게 아니냐, 그런 점은 그때그때 비판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그 점에서 민노당이 늦거나 미온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것만큼 북한 비판도 정확하고 과감하게 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럼요, 물론이죠. 민노당은 한마디로 남쪽의 진보정당이에요. 남쪽의 민중들 속에서 인정받아야 하고, 친북이다 종북이다라는 편향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죠. 북한 핵실험이 나왔을 때도 한반도 비핵화의 관점을 분명히 밝힌 바가 있고요. 진보진영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 태도는 전쟁 위기를 막고 평화롭게 문제를 풀자는 것으로,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부분이죠. 적대감을 부추기고 때로는, 피에스아이(PSI) 참여도 그렇고, 전쟁하면 좋겠다는 정도로까지 보이는 적대감을 수구언론들이 중심이 돼 일으키기도 하고 그럴 때, 대중적으로 평화로운 길은 무엇인가 제출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죠. 우리는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비판을 좀 더 하라, 그건 충분히 알겠는데 저희가 볼 때는 원인과 결과를 근본적으로 따지고, 전쟁을 하자는 게 아니라면 어렵고 힘들더라도 평화로운 길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자는 데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통일을 가로막는 세력으로 미국을 얘기했는데, 너무 단선적인 건 아닌가요. 한-미 관계는 폭넓게 다변화해왔고, 또 미국엔 부시 정부만 있는 게 아니고 오바마 정부도 있고 다양한 세력이 있습니다. 미국을 반통일세력으로 보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거 아닌가요?
=현상은 바뀌어도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건, 미국의 세계 패권 논리와 한반도에 대한 패권주의적 시각입니다. 경제적으로는 때로 우리가 수출을 많이 할지 몰라도, 우리나라 정권들이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과연 미국과 떨어져서 대등하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고 봐요. 무슨 소리냐면, 예전처럼 남한이 미국의 식민지다 아니다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고 미국과 자주적 관계로써 대등해지려면 한-미 군사동맹 체계를 그만둬야 한다는 겁니다. 군사동맹으로 묶일 때는 말이 동맹인데 군사패권 논리의 한 축, 즉 하부로 편입돼 있다고 보는 것이죠. 이건 논쟁이 될 거라고 보는데, 단일 패권국인 미국이 있는 조건에서, 한반도 같은 지정학적 조건에서 (군사동맹 폐기가) 가능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요. 제가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는데 많은 학자들은 한국같은 지정학적 조건에서는 한 강대국에 달라붙는게 좋다는 현실주의적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제 주장은, 한반도 안에서 미국과 향후 관계를 적대시하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남북이 통일하고 일본, 중국, 러시아와 외교관계 맺고 살아가는 중립국으로 살아갈 순 없겠는가 하는 거죠.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무조건적인 ‘양키 고 홈’ 같은 걸 외치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한-미 군사동맹체계는 없애길 바란다, 당연히 미군 철수하고 외국군이 주둔하지 않는 대등한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한번 미국에 가서 머물면서 미국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음…. 세계 여러 나라에 가봤지만 미국은 아직 못 가봤어요.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니고요, 기회가 되면 미국 가는 것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죠.

-조 의원하고 울산에서 함께 정치를 시작하고 구청장도 같이 했는데, 분당과정에선 치열하게 싸웠죠. 이제 그런 개인적인 감정은 많이 정화가 됐습니까?
=그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에요. 실제로 심하게 공격을 받았잖아요, 종북주의자라고. 대한민국에서 현실 정치인을 두고 친북이란 말만 나와도 정치하기 어려운 판에, 당시에 제가 나서질 않으면 그 누구도 논쟁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제가 나선 이유는 개인적 피해가 있더라도 역사적으로 평가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거죠. 그런 주장을 계속 하는 한 건설적이고 희망적인 정치 토론이 아니라는 겁니다. 화해할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한 거라는 걸 분명히 했던 것인데, 이번에 단일화에 갇혔던 것이고요.

-지금까지 조 의원을 안 만났다고 했는데, 이번 단일화를 계기로 앞으로는 만나서 얘기도 하고 그럴 수 있겠습니까?
= 음….(웃음) 같이 하는 모임이 있어요. 머슴골이라고 진보진영 단체장 출신들의 모임이죠. 다른 회원들이 우리 둘이 있을 땐 얼마나 조마조마 했겠습니까. 서로 모임에서 안 볼 것도 아니고 하지만, (조 의원이) 종북 이야기를 철회한 적도 없고 지금도 소신이라고 주장하는 한에서는 이렇게….

-옛날 같은 자연스런 관계는 되기 힘들다는 건가요?
=그렇죠. 그러니까 (단일화와 개인적인 관계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주간지 <시사인>에선 (조 의원과 나를) 라이벌이라고 하는데, 라이벌도 아니고 그런 의식도 가질 필요가 없었어요. 부닥칠 일이 없었으니까요.

-후보 양보하려니까 많이 힘들었겠습니다.
=많이 힘들었죠. 초기에 진보신당 후보로 (조 의원이) 나올 때, 당내에 여러 기류가 있었지만 조승수는 단일화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분당과 종북 논쟁 때문이죠. 차라리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심상정이나 단병호를 내보내라 하는 얘기도 있었고요. 단일화는 우리가 질 수도 있는 것이고 또 지면 흔쾌히 밀어줘야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제가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개인에 대한 감정이나 호불호의 문제가 아닙니다. 결과는 어쨌든 이렇게 됐고 조 의원이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조 의원의 한 석은 우리들의 눈물과 땀과 한숨이 다 녹아든 자립니다. 사활을 걸고 싸워야 할 대상과 맞서 싸우라는 겁니다. 그리고 종북이나 분당 문제와 관련한 자기성찰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 대단결의 모습도 보여줬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게 제 바람이죠. 단일화라는 대의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물러선 사람 입장에선 그렇게 되면 훨씬 마음의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정리/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김창현은? 대학재학중 노동운동 뛰어들어…구속…구속…구속…

김창현(47) 위원장은 고려대 사회학과 재학중 구로공단 세광알루미늄에 위장취업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86년 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하다 구속됐고, 87년 서울남부지역노동자연맹(남노련) 사건으로 다시 구속됐다. 이후 정치에 입문해 경상남도 도의원, 울산광역시 시의원을 거쳐 98년 초대 울산 동구청장에 당선됐다. 그러나 이른바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또다시 구속되는데, 2000년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17대 총선에서 울산 동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당시 부인 이영순 의원이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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