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카 부오리스토 핀란드 대사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페카 부오리스토 핀란드 대사
인터뷰/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대학 서열도 사교육도 없는 ‘평등교육’
비판적·창의적 인간 양성 목표로 삼아
아이들에겐 공부 말고 즐길권리 있어
하루 수업은 길어도 6시간 넘지 않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교육 현실은 질식 일보 직전이다. ‘학교 만족 2배, 사교육 절반’이란 공약과 반대로 현실은 ‘학교 만족 절반, 사교육 2배’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자율화란 미명 아래 평준화를 깨기 위해 학교 서열화를 도모하는 정책 때문에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외환위기보다 심하다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사교육비는 오히려 늘었다는 게 그 방증이다. 그렇다고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목마른 자들의 절박감이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모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대안의 하나로 주목하는 게 핀란드 교육이다. 핀란드 교육은 형평성과 수월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잡으면서 핀란드를 국가경쟁력 1위의 나라로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 교육이 어떻게 그런 결과를 낼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제도를 낳은 역사적·사회적 배경은 무엇인지 페카 부오리스토 핀란드 대사에게 들어봤다. 평등이란 가치에 바탕한 핀란드 교육은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을 목표로 삼는다고 설명하는 부오리스토 대사는 핀란드 교육을 벤치마킹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요즘 들어 핀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작지만 강한 나라의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인구 5백만이 약간 넘는 나라지만 세계 1위의 휴대전화 업체인 노키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핀란드 국가 경쟁력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먼저, 교육제도를 들 수 있습니다. 전 인구가 우수한 교육의 수혜자입니다. 핀란드 교육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람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교과서를 단순히 암기하는 것을 넘어 여러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도록 하며,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도록 합니다. 경쟁력은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핀란드의 경쟁력은 전통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협력에 의해 창조됐습니다. 정부, 기업, 대학은 물론 작은 마을까지도 다양한 부문에서 핀란드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했습니다.” -핀란드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교육을 지적하셨는데, 핀란드 교육의 특징을 꼽자면? “벌써 몇 가지 특징은 말씀드린 것 같고요. 사고의 유연성과 앞을 내다보는 태도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핀란드 교육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평등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가 부여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핀란드의 교육제도를 수출한다면, 가장 큰 장점으로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교육제도란 사회 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수출할 수 있는 품목은 아니지요. 하지만, 제도를 판다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계발하는 교육법과 언어교육을 자랑하겠습니다. 또 우리가 매우 자랑하는 점이 있는데, 바로 교사의 자격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는 점입니다. 교사가 되려면 전공과목뿐만 아니라 교육학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우수한 교사들이 핀란드 교육을 강하게 만든 원동력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선생님들은 국가 발전에 중요한 구실을 해왔고, 특히 지방에선 도서관을 세우거나 다양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기도 하는 등 중심적 역할을 합니다.” -대사님은 자제분들이? “아들이 둘 있습니다. 벌써 다 컸지만요.”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보통 학교에서 몇 시간씩 수업을 했나요? “한 주에 25~35시간 정도로, 하루에 6시간을 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점심도 먹는데, 그 시간을 포함해서요. 숙제는 한두 시간 걸리는 것 같더군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시간이 길어지고 숙제도 많아지기는 하지만 주 40시간을 넘지는 않습니다.” -대학입시를 위한 사교육을 받지는 않았나요? “그런 제도는 핀란드엔 없습니다. 핀란드 학교에는 배움의 속도가 느린 아이들을 따로 지도하는 교사가 있습니다. 이는 학교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저와 제 아내가 숙제 말고 따로 가르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것은 주로 주의나 훈육을 주는 가정교육 같은 거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대다수의 학생이 과외나 학원에 의존해 사교육비가 대략 40조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교육비 절감을 공약으로 내걸지만 항상 실패로 끝났습니다. 혹시 이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하신다면. “‘교육에 돈을 얼마나 쓰느냐?’ 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지만 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커리큘럼을 개선하거나 교육 방법을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교육의 목적에 대한 토론도 중요합니다. 핀란드인들이 갖고 있는 철학이 있는데 아이들에겐 놀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교육과 발달에 중요한 그 밖의 것을 즐길 권리입니다. 놀기도 하고, 예술을 즐기고, 스포츠나 여가 활동을 하며, 잘 자라기 위해 푹 잘 권리 말입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한국의 어린이들은 참 불쌍하네요. 잘 시간도 없고 여가 활동을 할 시간도 없으니 말입니다. 핀란드는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와 아이들의 학업성취도의 연관성이 가장 낮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정부는 교육의 평등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 들려주십시오. “핀란드는 작은 국가로서 특별히 자원이 많은 나라도 아닙니다. 역사를 통해 교육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우리는 평등과 형평성, 즉 똑같이 참여하고 똑같이 대우받는다는 기본적인 이상 위에 우리의 교육을 설계했습니다. 교육은 중요한 국가적인 목표였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평등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데는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공감했습니다. 좋은 교사를 유치하고 교육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으로 루터파 교회의 역할도 중요했습니다. 기본적인 읽기, 쓰기 등을 못 하면 교회에 다니지도, 결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17세기의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의무교육에 대해 국민들의 동의를 쉽게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현 교육제도가 수월성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우파와, 교육의 형평성을 강조하는 좌파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핀란드가 합의를 이뤄낸 과정이 궁금하네요. “핀란드는 합의 지향적인 나라입니다. 물론 우리 안에도 다양한 정치적인 의견과 주장, 지향이 있지만 독립과 2차대전에 이르는 힘든 역사를 견뎌내면서 노동문제, 소득정책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 갔습니다. 물론 파업도 있었고 심각한 정치적 분쟁도 있었지만 공동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의견을 하나의 지향점으로 모아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부럽네요. “물론 불을 켰다 껐다 하는 것처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20세기 초 핀란드 역사를 들여다보면, 우리도 위기를 거쳤고 격렬한 논쟁도 있었습니다. 결국 작은 나라인 핀란드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우리는 동의했던 것입니다.” -핀란드 국민들이 공유하는 교육관을 다시 한 번 짤막하게 정리해주신다면? “교육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핀란드와 한국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결과를 창출하기 위한 방법과 실행일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선 흔하지만 핀란드에는 없는 게 있습니다. 더 좋은 대학, 별로인 대학의 구별 말입니다. 핀란드에선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대학이 있지만, 모든 대학은 고른 수준을 유지합니다. 따라서 핀란드에서는 어느 대학에 다니는가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낫고, 더 못한 대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핀란드 사회가 지향하는 이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핀란드처럼 부유한 복지국가가 아닌 한국 같은 나라가 충분한 재정 없이도 핀란드 같은 교육제도를 가질 수 있을까요? “초반에 말씀드렸듯이 교육제도는 수출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벤치마킹을 해서 가장 맞는 실행방법을 찾아내는 일은 중요합니다. 최고의 실행법을 찾는 것은 돈의 문제는 아닙니다. 충분한 토론을 통해 대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상황은 항상 변합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논의가 중요합니다.” -주제를 좀 바꿔보겠습니다. 몇 년 전 <한겨레>는 정치체제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그 당시 대다수의 국민은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을 선호했지만, 세금을 더 낼 뜻은 없었습니다. 실례지만, 소득의 몇 퍼센트나 세금으로 내시나요? “어느 나라 국민이나 세금이 너무 높다고 합니다. 높은 세금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고 또 그게 사람이지요. 그러나 핀란드 사람들은 높은 세금에 대해 분노하진 않습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세금을 어디에 썼는지 공표하기 때문입니다. 2002년에서 2003년 무렵 제가 낸 소득세는 38%였습니다. 최근에는 35%로 낮아졌습니다. 소득세 외에 상당히 높은 간접세와 18~22%의 부가가치세도 있습니다. 핀란드의 소득세는 누진세로, 많이 벌수록 많이 냅니다. 저도 세금이 줄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에 비춰보면 제 어머님이 노후에 받을 수 있었던 혜택, 제 아버지가 받는 의료 혜택, 저와 제 아들들이 무료로 다닌 대학, 그 밖에도 많은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세금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국민들이 자신이 필요로 할 때 정부가 도움을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정부가 복지국가 모델을 지지하는 국민들로 하여금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런 변화는 불을 껐다 켰다 하는 일처럼 순식간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하는 일입니다. 개혁의 기초에는 참정권, 언론의 자유, 교육제도, 사회보장 등 다양한 요소가 있습니다. 복지국가에 대해 말하자면 어떤 요소를 제도 안에 포함할지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 정부는 이런 내용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고요. 물론 우리에겐 초기부터 이런 개혁에 대한 믿음이 자리할 수 있는 토대가 있었습니다. 국민이 정부를 통제하는 장치가 있었으니까요. 핀란드 정치사를 보면 반대 의견을 제시할 때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근거를 갖고 대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반대파도 정당한 정책이라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영상: www.hanitv.com
|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