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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앞에서…대법원마저 진실에 눈감았다”

등록 2009-06-18 20:05수정 2009-06-19 14:01

곽노현 방송통신대 교수는 재벌의 세금 없는 불법승계 의혹, 특히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해 10여년 동안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의 노력은 최근 대법원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에 합법 판결을 내림에 따라 허탈하게 좌절되고 말았다. 곽 교수는 대법관들마저 형식적 서류에 기대 진실에 눈감았다며, 검찰과 법원을 비판하는 책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곽노현 방송통신대 교수는 재벌의 세금 없는 불법승계 의혹, 특히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해 10여년 동안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의 노력은 최근 대법원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에 합법 판결을 내림에 따라 허탈하게 좌절되고 말았다. 곽 교수는 대법관들마저 형식적 서류에 기대 진실에 눈감았다며, 검찰과 법원을 비판하는 책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경제 민주화’ 꿈꾸는 곽노현 교수

일생을 통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목표를 하나라도 추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행복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곽노현 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재벌이 세금 없이 경영권을 불법 승계하는 걸 법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의미 있는 노력을 쉼 없이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대법원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발행을 통한 삼성의 경영권 승계가 합법이라고 판결함으로써 그가 10여 년 동안 추구했던 목표는 일단 좌절됐다. 지난 15일 서울 대학로 방송대에서 만난 그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프고 비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가 추구해온 목표가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에서일까.

“삼성 앞에서…대법원마저 진실에 눈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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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교수는 두 가지 점에서 개혁 성향의 일반 학자들과는 다르다. 하나는 유독 삼성 문제에만 매달린다는 점이다. 현대나 엘지 등 다른 재벌들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다른 그룹들에 대한 문제 제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삼성 문제 중에서도 경영권의 불법 승계를 통한 소유지배구조 변경에만 초점을 맞춘다. 삼성의 불법 로비나 비자금 문제 등은 그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그가 왜 이렇게 삼성, 그 중에서도 소유지배구조 문제에 집착하는 것일까.

“1980년대 초부터 90년대까지 회사 지배구조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그러면서 재벌이 어떻게 불법으로 경영권을 2세, 3세에게 승계하는지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됐다. 결국 재벌개혁의 핵심은 세금 없는 경영권 승계를 차단하는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것만 제대로 지켜지면 재벌 문제의 상당 부분은 자연히 해결된다.”

삼성을 타깃으로 삼은 것은 “꼭대기를 바로잡아야 바닥까지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침 1995년 후반부터 이건희 삼성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씨가 삼성 계열사를 통해 부당 차익을 얻고 있다는 단신 보도가 잇따랐다.

“97년 3월 당시 <주간한국>에 삼성 승계 작업의 흐름도가 최초로 보도됐다. 그것을 보는 순간 부정의의 극치가 이뤄지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때부터 분석을 시작해 97년 5월에 처음으로 공론화를 시작했다.”

2000년 에버랜드 배임 검찰 고발
세금없는 경영승계와의 싸움 10년

‘경제 민주화’ 꿈꾸는 곽노현 교수
‘경제 민주화’ 꿈꾸는 곽노현 교수
그러나 이를 법적으로 문제 삼기까지는 무려 3년이 넘게 걸렸다. 그는 이런 사실을 검찰이 이미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보통 사건이었으면 대검 중수부가 나서야 할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재용씨가 이건희 회장한테서 60억원을 증여받아 16억원 세금 내고, 당시 적게 잡아도 1조원 가까운 부당이득을 봤기 때문에 법 집행 당국이 여러 가지 조처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검찰이 어떤 곳인가.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은 비상한 수단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2000년 6월29일 곽노현 교수를 포함한 법학교수 43명이 이건희 회장과 1996년 당시 중앙개발(현재 삼성에버랜드)의 주요 임원진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지검에 형사고발한 것이다. 고발장은 무려 원고지 250장 분량에 이르는 논문 형식의 방대한 양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6월29일에 고발을 했을까?

“1987년 6월29일은 쿠데타 정치권력이 항복한 날이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도 삼성 내부의 친위쿠데타였다. 이건희 회장 일가가 지배권을 영속화하기 위해 배임 수법을 다 동원해 무세(세금 없는) 승계를 획책한 것이다. 쿠데타 정권이 87년 6월29일 시민에 항복한 것처럼 반드시 (삼성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6월29일을 골라서 고발장을 제출했다.” 87년 6월29일이 ‘정치 민주화’를 이룬 날이었기에(지금은 그 성과가 허물어지고 있긴 하지만) 2000년 6월29일 삼성 불법승계를 고발함으로써 ‘경제 민주화’를 이루고자 하는 꿈을 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진행된 검찰의 수사와 1·2심 재판,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시작된 특검 수사와 대법원 판결은 대한민국 검찰과 사법부가 “삼성의 특권과 반칙을 합법화해주는 삼성의 하부기관”임을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는 고비마다 빠지지 않고 검찰의 태도를 비판하고, 법원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과 말을 남겼다. 그 말과 글이 책 한 권을 훌쩍 넘는다. 그는 이를 모아 조만간 단행본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길게는 12년 동안 그가 겪고 느꼈을 실망과 좌절과 울분을 어찌 한마디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양심과 양식을 믿었던 대법관들마저 무죄 판결을 내린 데 그는 분노했다. 특히 주변에는, 김지형 대법관과 양창수 대법관이 다수의견에 합류해 무죄 판결을 한 데 대해 충격을 받은 법학자와 변호사들이 많다고 했다. 평소 그들의 양식과 성향 등에 비춰볼 때 무죄 판결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다.

“법리적으로 비판할 가치조차도 없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이 무죄라는 대법원 다수의견은 법리적으로 너무 허술해 이를 비판한다는 게 입만 아플 뿐이다. 최고 법원의 판결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그는 법리 이전에 대법원이 실체적 진실에 눈을 감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발행이 경영권 이전을 목적으로 한 제3자 배정이라고 보지 않고, 이를 주주배정방식에 의한 것으로 판단해, 아무리 저가로 발행해도 배임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의 진실이 다 드러난 상태다. 전환사채 발행을 결의했던 1996년 10월30일은 실제로 이사회도 없었고, 다른 계열사 주주에 주주배정도 하지 않았다. 주주배정 통지서나 이사회 결의서 등도 모두 다 사후에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사회 결의에 의한 전환사채 발행은 이사회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원천 무효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이런 실체적 진실에 애써 눈감고, 형식적으로 사후에 조작된 서류만을 근거로 ‘주주배정 방식에 의한 전환사채 발행은 배임죄가 안 된다’는 취지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곽 교수는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상속받는 데 세금을 16억원밖에 안 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서울 강남의 70~80평짜리 아파트를 상속받으려 해도 세금이 16억원이 넘는다. 대법관들은 이걸 가지고 고민했어야 하는데, 비겁하게도 형식적으로 갖추어진 서류에 기대어 실체적 진실에서 도피했다”고 비판했다.

그럼 대법원 다수의견이 내세운 무죄 주장은 법리적으로 타당한 것일까?

“백번 양보해 주주배정 방식에 의한 것이라 인정하더라도 법리적으로 너무 허술하다. 주주배정 방식이면 아무리 저가로 발행하더라도 배임이 안 된다고 했는데, 헐값도 수준 나름이다. 이 법리대로라면 전환사채를 적정가의 1%로 발행해도 배임이 안 된다. 또 발행 물량이 아무리 많아도, 실권 비율이 아무리 높아도 배임이 안 된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이처럼 무분별한 법리는 어디에도 없다. 주주배정 방식에 의한 저가 발행이 배임죄가 안 되려면, 발행가와 적정가의 괴리율이 높지 않고, 실권 비율이 얼마 안 돼 실권주를 제3자가 전부 인수해도 소유지배구조에 변동이 없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대법원 다수 의견은 이런 전제 조건을 전혀 제시하지 않은 무지막지하고 분별력 없는 법리다.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발행은 적정가의 10%도 안 되는 발행가에, 발행 물량이 기존 물량의 125%나 되고, 실권 비율이 97%나 됐다. 결국, 이로 인해 이재용씨 등이 62.5%의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경영권이 넘어갔다.”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그의 논리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의 비판과 울분을 다 담기에는 지면이 너무 부족하다.

그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12년 동안 그나마 작용했던 재벌의 불법승계에 대한 억지력이 절반 이상 무너졌다고 했다. 전환사채 저가 발행 등을 통한 불법 승계가 1·2심에서 유죄로 인정될 때만 해도 재벌들이 그런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대법원이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앞으로 맘대로 이런 방식을 활용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재벌들에게 배임 특권을 법리적으로 부여해 준 것이다. 이 사이비 법리는 향후 5~6년은 지속할 것이다. 유죄라는 소수의견을 냈던 5명의 대법관은 2~3년 안에 임기가 끝나 퇴임한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보수적인 대법관을 임명하면 이번 판결이 다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회사법 전문 로펌이라면 ‘향후 5년간은 100% 보증할 테니 이 기간 중에 전환사채 저가 발행 등을 통해 경영권을 넘겨라’라고 코치할 것이다.”

정의 대신 강자의 편에 선 사법부
허술한 법리 내세워 ‘삼성 면죄부’

그는 10여년 동안 삼성 사건을 겪으면서 대한민국의 속살을 보게 됐다고 한다. 한국 사회가 움직이는 방식을 알게 됐다는 뜻일 것이다. 그가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정의의 편에 서야 하는 사법권이 기득권층인 강자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특히 이른바 개혁정권이라 불리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 동안 삼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데 절망했다고 한다.

“어느 지방대 교수가 지방 사학과 싸우는 것도 결국 대한민국 기득권과의 싸움이라고 하더라.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 그리고 이건희 회장은 사실 너무나 버거운 상대였다. 그러다 보니 사법당국, 정치권, 언론계, 학계 어디 하나 이번 사건에 대해 제대로 발언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가 결국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래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마무리 질문에 “잘될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그러면서 “경제력이 세계 12위라면 모든 분야가 그런 수준으로 가야 하는데 재벌문제는 턱없이 부족하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넘어야 할 중요한 지점이다”라며 말을 맺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그 지점은 한참 더 멀어진 듯 보인다. 그만큼 곽노현 교수가 할 일도 아직 남아 있는 셈이다. 그래서 ‘경제 민주화’를 위한 그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정석구 논설위원 twin86@hani.co.kr

영상: www.hani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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