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은 시대와 함께 변한다. 절대 미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세상을 만들고, 세상은 다시 사람들의 입맛을 만든다. 여름의 대표 간식 아이스크림의 역사에도 입맛의 변천사가 숨어 있다. 예전에 즐기지 않던 맛을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뭘까? 또 어떤 맛이 사라지는 이유는 뭘까?
따지고 보면 아이스크림을 먹는 현상 자체가 그리 오래지 않았다. 1958년 창립한 롯데삼강이 아이스크림을 처음으로 대량생산하기 시작했고, 이어 해태제과, 대일유업(빙그레)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소박하게 팥 앙금을 얼린 ‘아이스케키’를 먹던 소비자들의 입맛은 금세 변덕스러워졌다. 70년대 들어 아이스크림 제품은 급격하게 다양화한다. 부라보콘(해태제과), 쮸쮸바(롯데삼강), 투게더(빙그레), 서주아이스주(효자원) 등 아직까지 인기를 끄는 아이스크림들이 이때 출시됐다.
기본 풍미 + 유행 풍미
부라보콘처럼 단일 브랜드의 역사만 30년이 넘는 제품은 그 안에 입맛의 역사를 품는다. 특히 ‘~맛’을 나타내는 풍미(플레이버)는 유행을 탄다. 해태제과의 설명을 종합하면, 부라보콘의 기본 운영 체계는 ‘기본 플레이버+유행 플레이버’다. 부라보콘에는 네 가지 풍미가 있는데, 기본은 역사가 긴 바닐라 맛이다. 여기에 해마다 잘 팔리는 풍미를 내세운다. 가령 올해는 바나나 맛이 인기고, 지난해에는 ‘바리스타’란 이름의 커피 맛, 2006년엔 초코청크 맛이 인기를 끌었다.
아이스크림 회사로서는 ‘유행하는 맛’을 잘 판단하는 데 매출이 달려 있다. 빙그레는 과거에는 일반적으로 ‘소비자가 실생활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맛’이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70~80년대에는 바닐라나 오렌지 맛이, 90년대에는 멜론 맛 아이스크림이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생활수준이 더 올라가 특별한 한두 가지 원료로 승부를 보기보다 다양한 맛을 찾는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고 빙그레는 덧붙였다. 한마디로 입맛이 더 까다로워지고 복잡해졌다는 말이다. 아이스크림 회사로서는 죽을 맛이다. ‘트렌드 플레이버’가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 해태제과 마케팅팀과 연구소가 외국 사례, 소비자 조사 자료 등을 근거로 머릴 쥐어짜며 회의를 거듭하는 이유다. 기존 고객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층을 공략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해태제과는 여행처럼 당대 사람들이 공통으로 갖는 경험이 유행하는 풍미에 영향을 준다고 분석했다. 가령 동남아 여행 붐이 일었을 때는 열대과일 맛 아이스크림이 잘 팔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절대적 판단 기준은 되지 못한다. 아무리 ‘핫’해 보이는 플레이버도 평균적인 입맛을 앞지르는 인위적인 풍미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태제과는 설명했다. 한 아이스크림 업체가 지중해 열대과일 포멜로의 변종인 스위티 맛 아이스크림을 출시했으나 오래 못 갔다는 것이다. 9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한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영향을 받기도 한다. 기존에 쓰지 않던 피스타치오 맛 제품을 출시한 것이 예다.
변치 않는 원칙은 풍미와 아이스크림의 형태에도 ‘마리아주’(포도주와 음식의 궁합)가 있다는 사실뿐이다. 가령 레몬은 빙과와 어울리지만 우유 비율이 높은 아이스크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축산물의 가공기준 및 성분규격’을 보면, 아이스크림류는 유지방분의 성분에 따라 아이스크림(유지방분 6% 이상, 유고형분 16% 이상), 아이스밀크(유지방분 2% 이상, 유고형분 7% 이상), 셔벗(무지 유고형분 2% 이상), 저지방 아이스크림(조지방 2% 이하, 무지 유고형분 10% 이상), 비유지방 아이스크림(조지방 5% 이상, 무지 유고형분 5% 이상) 등으로 나뉜다. 풍미와 유지방 성분의 궁합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해태제과는 설명했다. 이처럼 까다로운 한국인의 입맛을 생각한다면, 30년 넘는 장수 아이스크림이 여전히 팔리는 일은 새삼 놀랍다.
본연의 맛이 장기승부처
해태제과는 올해 부라보콘 단일 매출을 350억~400억원으로 예상한다. 빙그레 투게더는 70년대 30억원, 80년대 100억원, 90년대 180억원 규모의 판매기록을 올렸고 현재 연간 350억원 규모로 팔린다. 비비빅도 비슷한 추세로 해마다 300억원 가까이 팔린다. 비결이 뭘까? 빙그레는 “장수 브랜드는 소비자의 트렌드에 반응한 제품보다 본원적 효능에 충실한 제품”이라고 분석했다. 첨단 유행의 시대에 유행을 거스르는 제품을 만들라는 말이다. 모두가 원하지만 누구도 쉽게 만들지 못하는 제품이다. 시간과 기억이란 식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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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출시된 장수 아이스크림들
⊙ 부라보콘 | 1970년 처음 출시했다. 현재까지 판매되는 아이스크림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형님이다. 해태제과.
⊙ 아맛나 | 1972년 처음 나왔다. 단순하고 깔끔한 맛이 복고적이다. 롯데삼강.
⊙ 서주아이스주 | 1973년 처음 나왔다. 내용물이 없는 단순한 맛과 복고풍의 포장지를 고집해 마니아를 거느린다. 원래 이 제품을 만들었던 서주산업을 1998년 조경업체인 효자원에서 인수해 생산중이다.
⊙ 투게더 | 1974년 처음 나왔다. 바가 아닌 떠먹는 고급 아이스크림의 효시다. 빙그레.
⊙ 바밤바 | 1976년 태어난 ‘용띠’ 아이스크림. 해태제과.
⊙ 쮸쮸바 | 1976년 출시한 쮸쮸바는 비닐 재질에 담겨 빨아 먹는 아이스크림을 부르는 보통명사가 됐다. 롯데삼강.
⊙ 비비빅 | 한국인은 통팥을 사랑한다. 70년대나 지금이나. 빙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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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우리생활 100년·음식>(한복진·현암사)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ㆍ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모델 오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