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감사 문제에 대해 “(한예종) 일부 교수들이 끊임없이 장관이 무식하다, 정책도 없다는 식의 말을 퍼뜨리고 다니며 비판을 계속했다”며 “우리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일방적인 측면은 반성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자신의 공통점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옆에서 봤기 때문에 내가 닮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유인촌 문화부 장관
대담/김의겸 문화편집장
연극에서 배우 유인촌은 최고의 ‘햄릿’이었다. 고뇌와 번민 그리고 머뭇거림을 표현하고자, 그는 무대에서 구르고 뒹굴었다. 햄릿을 여러 차례 상업무대에 올렸고, 햄릿의 성격 연구로 석사학위도 받았다. 장관이 된 뒤 ‘좌파 적출’에 앞장서다가도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다”며 주저하는 모습을 보일 때는 영락없는 햄릿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배우 유인촌은 한 마리 ‘야수’였다. 주인공을 맡은 <연산일기> <김의 전쟁> 두 편 다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었다. 연산은 말할 것도 없고, 재일동포 김희로 또한 다이너마이트와 장총으로 무장한 채 인질극을 벌이는, 피가 튀는 역이었다. 장관 유인촌도 세뇌 발언, 국회 욕설 파문 때는 섬뜩한 기운을 뿜어냈다. 한 영화감독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임권택 감독이 <연산일기>를 만들 때, 유인촌의 눈빛이 순간순간 번득이는 것을 보고는 연산을 맡겼다고 해요. 이지적이고 단정한 모습 뒤에 감춰져 있는, 작렬하는 눈빛 말이죠.”
과연 유인촌은 고뇌하는 햄릿일까, 아니면 폭군 연산일까?
분장하지 않은 그의 맨얼굴을 보고자, 1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실에서 2시간 동안 무릎을 맞댔다. 결론부터 말하면 실패였다. 그의 거침없는 답변, 활기찬 손짓에 어디 한 곳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햄릿? 연산? 내 캐릭터는 사실 무색무취해요. 별 개성이 없는 거죠. 그저 두달 석달 꾸준히 연습해서 다른 인물로 모습을 만들어 갈 뿐이죠”라는 그의 말을 핑계 삼을 뿐이다.
다음은 한 인간을 탐구하고자 하는 기상은 갸륵했으나, 결과는 초라한 좌절의 기록이다.
한예종 사태 일방적 측면은 인정
통섭교육 부분은 새 시스템 짤것
이대통령 일 추진력에 깜짝 놀라
나도 옆에서 점차 닮아간 것 같다 -장관 취임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을 내보는 데 앞장섰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도 ‘지난 1년간 이를 정비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았다’고 인정했다. 왜 그렇게 중요하고 시급했나? “사람 정비가 아니라 산하 기관의 조직, 예산, 정책 방향 등을 정비하는 데 힘을 쏟았다는 말이다. 사람 문제는 우연히 촉발된 거다. 취임 일주일 만에 광화문 포럼이란 데서 문화예술 정책 방향 등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기자들이 ‘전 정부가 임명한 산하 기관장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기에, 나 스스로가 서울문화재단 대표 하다가 시장이 바뀌면서 임기를 남겨둔 채 사표 내고 나왔다, 그게 도리로 본다고 했다. 현장 예술인의 마음으로 말한 건데, 그래도 일이 커지자 당사자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 뒤 10개월 정도 그들과 따로 회의도 하고, 개인적으로 만나서 바뀐 문화 정책에 뜻을 같이하면서 가보자 했지만, 잘 안됐다.” -같이 가자는 게 어떤 의미인가? “보수든 진보든 문화예술의 목표는 비슷하다. 그런데 전 정권에서 좌우 편을 갈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만 해도, 지난 1년4개월 동안 일부 교수들이 끊임없이 장관이 무식하다, 정책도 없다는 식의 말들을 퍼뜨리고 다녔다. 교수인지, 정치인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황지우 총장한테 ‘당신네들 예의가 없다. 우리 문화부가 그 정도로 막무가내라면 도와 달라’고 했다. 그렇게 같이 가자는 의미였는데, 한 번도 좋은 제안을 안 주고 토론할 생각도 안 하고, 밖에서 비판을 계속했다. 섭섭했다.”
-이른바 코드 인사 정리는 이제 끝난 건가?
“정리가 아니다. 전 정권에서 임명한 조선희 한국영상자료원장과 장향숙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은 그대로 있지 않나. 임기 지켜 달라고 했다. 이들은 딱 부러지게 맡은 일을 잘한다. 조 원장이 사표를 냈으나 말렸다.”
-한예종 감사에서 학제간 융합 과정인 통섭 교육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장관의 저서인 <유인촌, 연기를 가르치다>(세종서적)를 보면 “장르 해체는 모든 예술 장르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면 통섭은 지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통섭은 당연히 해야 한다. 산하 문화콘텐츠 기관들을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 통폐합한 것도 통섭 때문이다. 게임이 잘되면 소설도, 영화도 되고 캐릭터가 만화까지 간다. 한예종에서 통섭 예산을 뺀 가장 큰 이유는 공부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통섭 연구를 하는 대전 카이스트 시티 대학원에 이미 통섭 과정이 있고 한예종과의 교환 프로그램도 기획돼 있다. 문화부도 큰 그림이 있으니 일단 구상이 정리될 때까지 하지 않는 쪽으로 해 달라는 거였다.
한예종은 순수 예술의 명맥을 유지시키려고 만든 학교다. 최근 만난 무용원 학생이 ‘통섭은 트렌드이고 앞으로의 예술 방향인데, 왜 못하게 하느냐’고 하길래 ‘발걸음 걷는 연습부터 해라. 명인들이 평생 발 올리는 연습을 한다’고 말해줬다. 기량을 먼저 익혀야 한다. 한예종마저 인기있는 트렌드 위주로 가면 순수예술 명맥을 어떻게 유지하겠나. 통섭은 새 시스템을 짤 거다. 다만 한예종이 모든 걸 다 하려고 하는 것은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황 총장에게 전했다.”
-감사에서 황지우 전 총장의 공금 유용 사례를 보면 액수도 적고, 내용도 심각하지 않다. 중징계 근거가 되나?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감사 쪽 의견은 고의성이 높다고 나왔다. 공직자로서는 굉장한 문제다. 국공립 대학의 총장으로서 굉장히 조심했어야 할 부분이다. 총장 사표 수리된 뒤에는 교수 신분도 박탈되는 걸로 알고 있던데, 그건 아니다. 재임용 심사 받으면 된다.”
-그러면, 한예종 쪽이 너무 피해의식에 젖어 있다고 보는 건가?
“우리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너무 전달만 하려 한 게 아닌가, 사전에 미리 만나서 감사 결과 얘기도 하고 논의하는 과정도 있었으면 했는데, 그런 소통은 못했다. 일방적 측면은 반성한다.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므로 학교 문제는 잘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상황이 되어서 학생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다른 저의나 치사한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은 절대 아니다.”
-보수 인터넷 매체들의 한예종 공격과 감사 내용 등이 상당 부분 일치한다.
“학교에서 그런 얘길 많이 하더라. 변희재씨가 공격을 주도하던데, 황 전 총장의 서울대 미학과 후배더라.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다.”
-부산영화제 등을 비롯한 여러 민간 문화단체들이 감사원의 집중 감사를 받고 있다. 배경이 뭔가?
“국회에서 감사원에 요청해서 8천만원 이상 보조금이 지원된 단체에 하고 있는 거다. 문화부와 별개지만, 대상인 560여 단체 중에 540여 단체가 우리 소관이라 걱정이다. 순수 공연예술처럼 단순 지원금 차원이 아니라 투자펀드 등 지원 내역이 복잡하고 액수도 훨씬 크다. 대부분의 단체들이 지원금 쓰는 데 별 개념이 없어 한예종보다 훨씬 큰 문제를 빚지 않을까 걱정된다. 벌써부터 ‘보조금을 집행하는 문화부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와 요즘 잠이 안 온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대단한 것 같다. 두 사람이 서로 잘 통하는 이유가 뭔가? 공통점이 있나?
“공통점이 있다면, 오랫동안 옆에서 봤기 때문에 내가 닮아간 것이다. 일의 목표를 갖고 몰입 매진하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장 때 청계천 복원, 교통체계 개편 등 큰일을 처리하면서 보여준 아이디어 추진력 등에 깜짝 놀랐다. 나는 정치적·행정적으로 능수능란한 사람은 아니지만, 진정성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게 장점이고 대통령이 그런 부분을 인정해주시지 않나 생각한다.”
-유 장관의 텃밭인 연극계에서도 시국선언을 했다. 참여한 연극인 수가 1000명이 넘었다.
“연극인 시국선언 때는 딱 관두고 싶더라. 명단을 일일이 다 봤다. 그 가운데 내가 가르친 애, 유씨어터에 있던 애도 있었다. 그래서 너무너무 깜짝 놀랐다. 그런 친구들은 내가 연극계 현장에서 일해 오고 후배들을 위해 투자한 것 등을 너무 잘 아는 친구들이거든. 누군가 사전에 미리 통보하고 의논해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더구나 문화 현장의 당면 문제가 아닌 정치적 내용이라 속이 상했다. 아직도 우리가 진정성 어린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장에서 틀기로 한 정부 홍보 영상물 ‘대한 늬우스’가 물의를 일으켰다.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나?
“실무자 선에서 아이디어를 냈고, 내용은 외부 기획사에서 만든 것이다. 심각하게 만든 게 아니라, 요즘 복고풍 개그가 인기이니, 이를 패러디했을 뿐이다. 만들어서 가져왔길래 나도 미리 봤다. 보면서 그냥 웃고 넘겼다. 극장 광고비도 많지 않다. 가볍게 봐 달라.”
-서울시장 나온다는 말들이 돌고 있다.
“요새는 제외된 것 같던데(웃음). 욕심 없다. 하겠다 안 하겠다 대답하는 것도 우습고…. 언젠가 다시 배우를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는데, 절대 안 한다기보다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하겠다는 거다. 이미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는 몸이고, 책임지겠다는 거다. 지금 하는 일을 또다른 자리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요즘 일을 더 벌이고 있다. 자리에 충실하려고. 그 이상 미래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
유인촌 장관을 만나기 전, 김해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 아래 허름한 함바집에서 영화감독 이창동, 배우 문성근과 같은 밥상에 앉은 적이 있다. 비빔밥에 고추장을 비벼가며 이 감독에게 근황을 물었다. “작품 준비중이죠. 구상은 거의 끝났고, 곧 찍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감독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성근이 이죽댄다. “감독들은 꼭 저런 식으로 얘기해요. 사실 놀고 있으면서, 작품 구상중이라고 알리바이를 댄단 말야.”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이 감독은 노무현 정부 때, 유인촌 장관처럼 초대 문화부장관을 1년4개월했다. 물러난 뒤 영화판으로 돌아왔고 <밀양>을 만들었다. 문성근도 최근 <실종>의 주연배우를 맡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두 남자는 감투를 썼든, 아니든 그렇게 우리 옆에 와 있었다.
과연 유인촌 장관은 <전원일기> 양촌리 김 회장 댁 둘째아들 용식이로 우리 곁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정리 김의겸 노형석 기자 kyummy@hani.co.kr
한예종 사태 일방적 측면은 인정
통섭교육 부분은 새 시스템 짤것
이대통령 일 추진력에 깜짝 놀라
나도 옆에서 점차 닮아간 것 같다 -장관 취임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을 내보는 데 앞장섰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도 ‘지난 1년간 이를 정비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았다’고 인정했다. 왜 그렇게 중요하고 시급했나? “사람 정비가 아니라 산하 기관의 조직, 예산, 정책 방향 등을 정비하는 데 힘을 쏟았다는 말이다. 사람 문제는 우연히 촉발된 거다. 취임 일주일 만에 광화문 포럼이란 데서 문화예술 정책 방향 등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기자들이 ‘전 정부가 임명한 산하 기관장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기에, 나 스스로가 서울문화재단 대표 하다가 시장이 바뀌면서 임기를 남겨둔 채 사표 내고 나왔다, 그게 도리로 본다고 했다. 현장 예술인의 마음으로 말한 건데, 그래도 일이 커지자 당사자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 뒤 10개월 정도 그들과 따로 회의도 하고, 개인적으로 만나서 바뀐 문화 정책에 뜻을 같이하면서 가보자 했지만, 잘 안됐다.” -같이 가자는 게 어떤 의미인가? “보수든 진보든 문화예술의 목표는 비슷하다. 그런데 전 정권에서 좌우 편을 갈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만 해도, 지난 1년4개월 동안 일부 교수들이 끊임없이 장관이 무식하다, 정책도 없다는 식의 말들을 퍼뜨리고 다녔다. 교수인지, 정치인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황지우 총장한테 ‘당신네들 예의가 없다. 우리 문화부가 그 정도로 막무가내라면 도와 달라’고 했다. 그렇게 같이 가자는 의미였는데, 한 번도 좋은 제안을 안 주고 토론할 생각도 안 하고, 밖에서 비판을 계속했다. 섭섭했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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