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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왕, 맞습니까?

등록 2009-11-11 20:47수정 2009-11-11 20:48

손님은 왕, 맞습니까?
손님은 왕, 맞습니까?
[매거진 esc]
‘손님이 밉다’ 후속편- 블로거 3인의 답변 ‘요리사가 밉다’ … 습관적 무개념 이젠 없어져야




지난달 29일치 요리면에 요리사·식당 주인들이 손님들에게 바라는 점을 소개했다. 이들의 고백에 대해 손님 3명이 화답했다. ‘손님 일반’을 대표할 손님을 고르는 일은 어려웠다. ‘믿을 만한 음식 블로거’ 3명에게 답변을 요청했다. 음식 블로거에 대해 과도한 권력을 행사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이들 3명은 ‘반성하는 블로거’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이들은 맛집과 조리법에만 갇히지 않고 요리사와 인터뷰하고 식당 문화와 제도 전반에 두루 관심이 많다. 파워 블로거가 가진 ‘파워’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자의식도 갖고 있었다. 이들에게 1)황당하거나, 화나게 했던 요리사·식당 주인이 있었는지 2)요리사·식당 주인이 고쳐야 할 점은 무엇인지 3)한식 세계화에 필요한 점은 무언지 물었다. 이들은 당장 외국 시스템을 흉내 낸 레스토랑이 들어오는 것보다, 밥을 팔고 사 먹는 밑바닥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건다운(kr.blog.yahoo.com/igundown)

1) 일본의 유명업소 인기 메뉴를 그대로 베낀 요리를 내면서도 다른 한국 음식점의 흉내를 방지한다며 손님의 음식 사진 촬영을 막던 강남 유명 양식당이 있었습니다. 주문과 다른 빈티지에 이미 개봉된 와인을 가져오며 “종업원이 서툴러서”라고만 답하고 교환이나 환불을 해주지 않던 홍대 부근 ‘ㄱ’ 와인바도 기억납니다. 엉뚱한 부위를 낼까 싶어 “뼈에 살점이 온전히 붙은 갈비를 달라”고 사전에 다짐받았음에도 저급 부위를 섞어 내고는 “갈비는 손질하면 살점이 죄 떨어지는 게 정상이고 붙은 게 가짜”라는 괴기스러운(?) 주장을 펴던 마포구의 ‘ㅎ’ 갈빗집도 있었죠. 이런 현상이 특정 업소의 문제가 아닌, 한국 중저가 갈빗집의 보편적인 현실이라는 점이 더욱 두렵습니다. 텔레비전 고발 프로그램에서, 주방에서 ‘미라’가 된 쥐의 시체가 나와 단속에 걸리고도 “너무 깨끗하면 손님들이 못 견뎌 한다”며 큰소리치던 중구의 ‘ㅌ’ 제과점 업주, 주방 위생이 단속된 마당에 이번엔 한우를 쓴다고 속이다 걸려 “한우를 쓰고 싶어도 구할 수 없어 젖소를 썼다”는 변명으로 시청자들을 황당케 했던 중구의 유명 설렁탕집 업주도 기억나네요. 그보다 무서운 건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 지금도 출입을 하는 단골들의 의식입니다.

너무 깨끗하면 손님이 못 견뎌?
‘요리사가 밉다’
‘요리사가 밉다’

2) 식당에서 위생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방 안이야 볼 수 없다 쳐도 조리사가 돈을 만지거나 음식 나르는 사람이 신발 정리까지 하는 ‘습관적 무개념’은 개선될 수 없을는지요. 화장실에는 반드시 물비누와 손 건조기를 비치하고 조리사는 근무 시간에 금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정체성 확립이 아닐까요. 떡볶이를 서구 사회에 팔겠다며 크림소스에 치즈로 범벅을 해놓고는 “잘 만들었다”고 자축하는 모습은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기본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의 변화가 어떨까요?


⊙ 취생몽사(blog.naver.com/landy)

1) 올해 초여름, 볼일이 있어 ㄱ대학교 앞에 갔습니다. 대학로 식당 골목에 새로 개업한 듯한 라면집이 보였습니다. 라면에 앞서 만두를 주문했습니다. 막 먹으려는데, 가게 주인아줌마가 거래처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번에 갖다준 만두요, 이거 아주 별로야! 전에 쓰던 게 훨씬 나아. 그걸로 좀 갖다줘요. 언제 돼?” 열이 팍 오르더군요. “이번에 갖다준 만두요 …”라는 말에서 직접 빚지 않았음을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하긴 기대하지도 않았으니 상관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거 아주 별로야”라는 말은 참기 어려웠습니다. ‘이 아줌마가 손님을 귀머거리로 아나?’

라면이 나왔습니다. 맛이 어땠는지는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절반도 못 먹고 나왔죠. 나오려는 찰나 사고가 터졌습니다. 옆 테이블 손님의 라면에서 비닐 조각이 나온 것입니다. 만두 납품업체를 혼내던 주인아주머니가 달려와, 손님에게 사과하는 둥 마는 둥 한 뒤 알바 ‘족치기’에 더 신이 났더군요. 음식문화의 발전은 외국 외식 시스템을 빌려 오는 데 급급해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2) 요리사에게만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첫째 더 많이 치열하게 연구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은 고객의 수준도 많이 높아졌습니다. 프로페셔널 요리사라면 고객의 수준을 선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올바른 식재료의 선택, 다양한 조리법 개발, 새로운 식문화 확산 등이 온전히 요리사들의 몫입니다. 둘째 요리사의 사회적 지위와 직업인으로서의 대우가 지금보다 나아져야 합니다. 요리사는 식문화의 최전선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더 많은 권위와 사회적 책임을 부여할 때 식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글을 쓰거나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요리사가 늘어나는 현상은 환영할 만합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만 제이미 올리버나 고든 램지 같은 요리사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요리사가 밉다’
‘요리사가 밉다’

3) 지난해 식량자급률 25.3%, 식재료에 대한 무관심, 후진적인 외식업 시스템 속에서 ‘한식 세계화’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이탈리아 스파게티, 베트남 쌀국수, 타이 똠양꿍, 일본 스시 같은 메뉴가 국가이미지 제고와 식재료 수출에 기여한 바가 크지만 단기간에 이루어질 사안은 아닙니다. 우리의 식탁과 외식업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가령, 막걸리 세계화를 외치지만 양조전용 주조미(酒造米)는 고작 1개 품종만이 개발·재배되고 있을 뿐입니다. 반면 추곡수매가 하락으로 농민들의 시름은 갈수록 깊어집니다. 세계화에 앞서 우리 음식과 술의 본질을 재조명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더 시급합니다. 당장 시장 확대보다 우리 시장의 구조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요.

⊙ 다루인(blog.naver.com/daruine)

1) 몇 년 전 한 고깃집에서 차돌박이를 주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손님들이 많았죠. 헌데 제공된 차돌박이의 질이 너무 떨어져 종업원에게 바꾸어 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이게 뭐가 어때서 이러시냐, 그냥 드시라”는 말이었습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아 대충 먹고 나왔습니다. 한때 자주 찾던 ㅎ생태탕과 ㅈ생태탕은 생태탕을 먹고 있는데 종업원이 자꾸 “알이나 곤이를 추가해 드시라”고 권합니다. 필요하면 알아서 주문할 텐데 강요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프랜차이즈보다 줄 서서 먹는 맛집을

2) 식당을 경영한다는 건 사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진리는 맛있는 음식을 정성스레 제공하면 손님과 주인 모두가 행복하다는 게 아닐는지요. 첨언하자면, 저는 식당이 맛있다고 입소문이 났다고 지나치게 확장하거나 프랜차이즈점을 내는 것에 비판적인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조리법을 표준화하고 좌석 수를 늘려 더 많은 손님을 받을 순 있겠지만 정성이 분산되고 집중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봅니다. 차라리 가게 밖에서 손님이 차분히 줄을 서서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가게에 들어와 앉아 있는 동안은 맛있는 음식을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며 먹으면 될 것입니다. 이 단순한 진리가 깨지는 순간, 손님과 주인이 서로 치어 음식 맛이 예전만 못하다느니 불친절해졌다느니 하는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게 아닐까요. 식당은 그냥 한곳에만 집중하길 바라는 건 이상주의일까요?

3) 적절한 현지 적응이 관건이 아닐까요. 미국에서의 한식, 일본에서의 한식, 필리핀에서의 한식은 느낌과 맛이 다 다를 것입니다. 모든 식재료를 한국에서 공수할 수도 없죠. 조리법 표준화보다 권역별, 국가별로 현지 사람들이 한식의 어떤 아이템을 선호하는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가 아닐까요. 이 일은 기존에 외국에 진출한 감각 있고 열정적인 한식 요리사들의 몫일 듯합니다.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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