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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거실에서 홀로 추는 춤

등록 2009-12-02 21:13수정 2009-12-06 14:23

밤 12시, 거실에서 홀로 추는 춤
밤 12시, 거실에서 홀로 추는 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발레학원 다니며 도전한 뉴요커식 발레 스트레칭, 지적 없으니 맘은 편한데 말야…
운동, 하기 싫은 거냐, 못하는 거냐. 어린 아기에 직장까지 거느린 (인생)품절녀로 살면서 걷기조차 대놓고 싫어한 지 오래됐다. ‘디브이디 다이어트 한달 실험’을 시작하려고 했던 첫날도 이대로 계속 붙박이 가구처럼 살고 싶은 욕망에 발목을 잡혔다. 사회생활이고 밤생활이고 제낀 지 오래지만 운동만 하려고 하면 당장 할 일들이 줄줄이 생각나는 건 집에서 하는 운동에도 적용되는, 예외 없는 법칙이다.

그래도 처음에 겪는 낯가림만 넘어선다면 ‘뉴요커식 발레 스트레칭 앤 다이어트’는 다른 다이어트 디브이디에 비해 흡인력이 강한 구성이다. 발레학원에 다닌다면 보통 처음 얼마 동안은 발이 땅에 붙은 듯 180도로 양 발끝을 벌리고 섰다가 다리를 엇갈려 발을 서로 붙이는 기본 자세를 완전히 익히는 데 힘을 모은다. 그런데 이 디브이디에선 대뜸 ‘바트망 탕뒤’부터 시작한다. 다리를 앞으로 곧게 뻗었다가 뒷발과 부딪치는 동작으로, 발레 초보에겐 현기증을 일으킨다. 스텝도 빨라서 발레단원들이 10번 다리를 쳐들 동안 3번이나 따라할까. 움직임이 많은 춤으로 시작하면서 발레의 세계를 먼저 맛보고 흥미를 갖게 한다는 전략인 듯하다. 그 뒤 바닥에 누워서 하는 스트레칭부터 제자리에서 튀어오르는 점프까지 발레의 기본 자세를 응용한 동작들을 2~5분씩 17개의 섹션으로 나눠 선보인다. 60분 동안 열심히 따라한다면 숨이 헉헉 차오를 만큼 분주한 분량이다.

발레는 가만히 선 자세에서도 안 쓰는 근육의 힘으로 몸을 지탱하는 강도 높은 근력운동이고, 여기에 점프나 턴 동작이 곁들여지면 칼로리 소모가 많은 유산소운동이다. 단 동작도 동작 나름이다.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던 뉴욕시티 발레단원들조차 다른 쪽 무릎에 발을 걸치는 ‘파세’에서는 잔잔히 다리를 떨다가 90도로 다리를 들고 버티는 ‘아티튀드’ 동작쯤에 이르면 부들부들 떠는데, 처음에는 ‘이 디브이디 짝퉁인가’ 했다. 그러나 횟수를 거듭하면 허리와 엉덩이를 일자로 제대로 폈는지에 따라 다리 부담은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몸이 깨친다. 어영부영 따라할 때는 막춤 같더니 양다리에 무게중심을 공평히 나누면 서커스급의 필살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럴 때 ‘지적질’을 당할 일이 없다는 것은 혼자 하는 발레체조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한 달 끊어 반달 다닌 발레학원 경험상, 장점이라면 아무리 선생님이 지적을 해도 결코 나아질 리가 없는 ‘운동 루저’로서 서로 민망할 일이 없다는 거지만 밤 12시 거실에서 혼자 추는 춤은 지나치게 외롭다. 다리를 굽혔다가 펴면서 발끝으로 서는 ‘를르베’ 동작에서 처음으로 휘청거리지 않게 됐던 밤엔 누구한텐가 칭찬도 받고 싶었다. 아래층 이웃의 고뇌를 생각한다면야 계속 파트너가 없는 편이 낫겠지만 그래도 누구하고도 소통 없이 격한 스포츠를 이어가려면 끈기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 다이어트 비디오로 유명해진 한 스포츠 강사는 “현장 강습이 슬로푸드라면 비디오 강습은 허기만 채우는 인스턴트 푸드”라고 했다는데 맞는 말이다. 다음카페에서 ‘핑크빛 토슈즈를 신고’라는 발레카페를 운영하는 카페지기 쏘냐치카는 “부상 위험이 높은 운동인 만큼 고무바닥으로 된 연습실에서 해야 한다”며 “발레는 꼭 연습실에서 2시간 이상 땀을 흘리며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권한다.

디브이디 체조의 효과는? 처음에 꿈꾸던 ‘단단한 근육’이나 ‘발레리나의 목선’ 따위는 물론 로망일 뿐, 얼굴에서 빠진 지방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려 허리에 고이던 추세가 좀 진정되긴 했는데 그게 효과적인 스트레칭 덕분인지, 야식 먹으며 뉴욕수사대를 보는 대신에 뉴요커 발레를 따라 한 덕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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