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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시스템의 대립은 내 문학 최고 테마”

등록 2010-05-12 19:45수정 2010-05-15 16:43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 박미향 기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인터뷰를 통해서 본 하루키 사상과 작품
무라카미 하루키는 2006년 이후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의 단골손님으로 꼽힌다. 그렇지만 그의 세계적인 명성이 일본 내 평가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은유 능력을 서로 다른 두 개의 메시지 사이에 점프하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그만큼 먼 곳까지 점프하는 능력을 가진 일본 작가는 없다”는 찬사도 끊이지 않지만 연애 이야기와 상실, 고독 등 그의 작품 중심 테마와 심플한 문장은 “자기애에 지나지 않는 것” “결혼 사기의 소설” “피냄새가 나지 않는다”라는 등 상반된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지난해 5월 〈1Q84〉가 출간된 이후 이전보다 한층 묵직해진 테마를 다뤘음에도 놀라운 판매력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인지 비판의 목소리는 일본에서 잦아들고 있다. 언론에 잘 나서지 않는 그는 지난해 〈1Q84〉 출간 이후 일본 국내외 언론과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 ‘서비스 정신’을 보여주었다.

평이한 문체와 난해한 이야기의 세계 〈1Q84〉

<해변의 카프카>(2002년) 이후 7년 만에 나온 장편소설 〈1Q84〉는 일본에서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체가 여전히 살아 있다. 지난달 16일 출간된 3권을 포함해 이 작품이 일본에서만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의 판매기록을 넘보는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데는 명료하고 적확한 문장에다 하루키 특유의 절묘한 비유와 은유의 힘이 크다.

그러나 〈1Q84〉의 이야기 구조는 1984년의 현실과, 달이 두 개 뜨는 ‘1Q84’라는 초현실의 세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결코 가볍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하루키 자신도 소설 판매량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 고정 독자는 장편소설의 경우 15만~20만명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라면 내가 발신한 것이 어느 정도 수용되고 있는지 감지할 수 있다. 50만, 100만이 되어버리면 어떤 사람들이 읽고 어떤 감상을 가지고 있는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지난해 9월 <마이니치신문>)


<1984>와 옴진리교 지하철 테러 사건, 9·11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1Q84〉는 스포츠클럽 강사이자 살인청부업자인 여주인공 아오마메와 소설가 지망생인 학원강사 덴고라는 초등학교 동창생이 10살 때 헤어진 이후 서로를 애절하게 갈구하는 이야기를 기본축으로 삼고 있다. 여기까지는 <노르웨이의 숲> <스푸트니크의 연인> 등 하루키 소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서사구조이다. 그러나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나타난 통제된 미래 사회, 일본 사회를 경악하게 한 1995년 사이비 종교집단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 2001년 9·11 동시다발 테러 사건 등을 소설의 주요 모티브로 삼음으로써 하루키의 소설세계는 단순 연애소설을 넘어 한층 중층구조를 띠게 됐다.

“조지 오웰이 가까운 미래소설로 쓴 <1984>를 거꾸로 해서 가까운 과거소설로서 과거에 이랬을지도 모른다는 모습을 쓰고 싶었다.” “나는, 9·11 사건은 현실의 사건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지금 있는 세계는 정말로 실존하는 세계인가라는 것에 나는 늘 의심을 품고 있다. 그렇지 않았던 세계도 어딘가에 있을 터이다라는 마음이 어딘가에 있다.”(지난해 12월 <로이터> 통신)

그는 1995년 12명을 사망케 하고 수천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 60명 이상의 관계자를 취재하면서 왜 사람들이 광신 종교집단에 들어가는지를 추적해왔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 게 옳은가. 무슨 가치를 축으로 해서 살아가면 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지만 특별히 이렇다 할 축이 없다. 광신 집단이라는 것은 그런 사람들을 점점 끌어들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과는 다른 삶의 축을 제공하는 것이다.”(<로이터> 통신)

그렇지만 그는 이런 모티브를 직접 묘사하는 게 아니라 ‘아케보노’ ‘사키가케’라는 광신적 집단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포스트 냉전 세계의 존재방식을 나는 그리고 싶었지만, 아무리 리얼하게 묘사해도 제대로 다 쓸 수 없다. 그렇다면 메타포(은유)밖에 없다.”(<로이터> 통신)

신화와 원리주의에 대한 비판

1960~1970년대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경험한 하루키는 작품 속에서 체제든 반체제든 시스템의 문제점을 비판해왔다. 그의 이런 강렬한 문제의식은 여느 사회보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라는 평가를 듣는 일본 사회의 작가란 데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1968년을 배경으로 한 <노르웨이의 숲>에서도 학생운동 세력을 야유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번 작품에서도 연합적군사건(1972년 극좌 무장투쟁 세력이 군사훈련 중 동료 학생 14명을 살해 암매장한 사건)과 관련해 연합적군을 연상시키는 ‘아케보노’와 그 분파로 옴진리교와 흡사한 ‘사키가케’라는 집단이 등장한다.

그는 〈1Q84〉에서 사키가케라는 폐쇄적인 종교집단을 통해 종교와 혁명사상이 시스템의 악을 낳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고 했다. 소설 속 리틀피플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은 신화화된 존재와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원리주의에 대한 하루키의 비판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개인과 시스템의 대립과 상극은 나에게 늘 가장 중요한 테마이다. 시스템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사람들을 많은 면에서 비인간화시킨다. 지하철 사린 사건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부상을 당한 사람들은 옴진리교라는 시스템이 개인에게 상처 입혔다. 동시에 사건 실행범들도 옴진리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압살당하고 있다. 그런 이중의 압살 구조가 무척 두렵다. 자신이 어디까지 자유로운가라는 점은 언제나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마이니치신문>)

지난해 2월 이스라엘 정부가 수여한 예루살렘상 수상식 연설에서 “높고 굳건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혀 부서지는 달걀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늘 달걀 편에 서겠다”며 이스라엘군의 가자 시민 학살을 에둘러 비판한 대목에서도 시스템에 대한 하루키의 문제인식이 엿보인다.

폭력과 성은 내 작품의 필수

〈1Q84〉를 보면 광신 집단 탈주 소녀 ‘후카에리’와 교주의 이해불가한 성접촉, 가정폭력 등 폭력과 섹스가 빈번히 등장한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 핀볼> 등에는 나오지 않았던 폭력과 성이 작품을 거듭하면서 나에게 중요한 문제가 돼 왔다. 그 두 가지는 사람의 영혼 깊은 곳에 접근하기 위한 중요한 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가죽을 벗기거나 고양이의 목을 비트는 이전 작품의 잔혹한 묘사는 이번에 없지만 섹슈얼한 장면은 상당히 나온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야기 구조를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이다.”(지난해 6월 <요미우리신문>)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사진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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