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담배중독자, 작심이 가장 어려웠다

등록 2011-01-06 15:50수정 2011-01-08 10:15

담배중독자, 작심이 가장 어려웠다
담배중독자, 작심이 가장 어려웠다
[매거진 esc] esc VS 작심삼일|김진철 팀장의 ‘20년 흡연 이별’ 몸부림 실패기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쉬는 것 또는 참는 것이라는 게 고2 때부터 근 20년 흡연인생을 살아온 나의 평소 지론이다. 그 20년간 담배를 자발적으로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아울러 나로 하여 ‘담배 쉬기’를 멈춘 이들도 허다하니 케이티앤지의 감사패를 받아 마땅하다고 여긴다. 당당한 애연가인 양 뻐기지만 실은 담배 없는 삶을 감히 상상조차 못하는 담배 중독자의 허세다. 솔직히 두렵다. 일상의 고됨이나 허전함을 채워주는 좋은 친구이자 애인과의 이별을 미리부터 두려워하는 가련한 이의 뒷모습이 떠오를 정도다. 일종의 슬픔이기도 하다. (아… 금단증상이…) 튼튼한 몸에 대한 걱정은 별나라 얘기로만 여기던 젊은 날을 떠나보내는 헛헛한 감정 같은.

그렇다. 담배를 쉬기로, 좀더 오래 참아보기로 결심했다. 2011년 새해, 김진철의 작심이다. ‘새해’라는 데 의미를 그다지 부여하지 않아온 탓에 무슨 작심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마흔살을 향해 달려가는 이즈음에야 비로소 작심을 요구받는다. 첫 작심이 ‘담배 참기’라니. 맙소사.

2010년 12월29일 오후 5시 | 새해 특집 마지막 회의.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마땅한 작심을 찾지 못해 결국 애꿎은 담배를 팔아먹기로 한 것. 작심삼일의 귀결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나는 독배를 들 수밖에 없다. 금연 도전기를 새해 특집 아이템으로 잡고 회의가 끝나자마자 담배를 꺼내 문다. ‘미안하다. 담배야.’

저녁 7시 | 평소 같으면 담배 한 갑을 주머니에 넣고 버스를 탔을 터. 그러나 일단 슬슬 시작해보려 한다. 아직 마음은 금연을 용납하지 않는다. 담배가 속삭인다. ‘내가 너한테 뭘 그리 잘못했니? 기사 쓰면서 단어나 표현이 안 떠오를 때, 힘들게 다섯살짜리 아들과 놀아주고 나서, 주말이면 책 쓴다고 낑낑거리며 카페를 전전할 때, 모처럼 여유로운 술자리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에 피로를 풀 때, 아내와 다투고 헛헛하게 서성일 때… 그때 네 곁에 있어주던 게 누군지 떠올려봐.’

밤 10시40분 | 버스가 오지 않는다. 바람은 모질게도 분다. 가방 속엔 담배 두 개비가 든 담뱃갑이 있을 것이다. 의식이 흐려진다. 감각이 무뎌진다. 의지와 무관하게 손은 관습을 따른다. 하필이면 버스가 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입술은 반갑게도 담배를 받아든다. 후우~ ‘내일부터 해도 늦지 않겠지….’

12월30일 아침 8시 | 안방에서 나와 거실을 지나 책방으로 들어선다. 책상 위를 눈이 훑는다. 담뱃갑과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고 신문을 가지러 집 밖으로 나간다. 신문을 펼쳐들고 담배를 꺼낸다. 아! 입에 물고서야 깨닫는다. 한번 꾸욱 참는다. 신문을 찬찬히 넘겨보고 서둘러 들어간다. ‘굿모닝 담배’와도 이별해야 한다는 것인가! 오호통재라!

오전 9시 | 출근길, 나의 애틋한 동지는 오며 가며 피우는 담배. 집을 나서 지하철에 오르기 전 한 대, 지하철에서 내려 신문사에 도착하기까지 한 대. 담배 없이 길을 걷는 일은 너무나 쓸쓸하다. 어차피 내일은 종합건강검진을 받는 날. 마침 위장·대장 내시경을 해야 하므로 오늘 저녁식사 이후로 음식물은 물론이고 담배도 피워선 안 된다. 오케이! 담배에 불이 붙는다.


낮 12시30분 | 편집국장과 팀의 점심 자리. 마침 수산물 먹을거리가 성찬을 이루고 있다. 술 한 잔이 빠지면 점심 맛이 날쏘냐. 맥주에서 시작해 소주… 그리고 섞인다. 당연한 귀결. 한두 잔 부딪히고 나니 담배가 당긴다. 술은 그야말로 금연의 최고의 적이다. 건강검진이 핑계다. 에라~ 모르겠다.

12월31일 낮 12시께 | 수면 내시경 뒤끝, 기억이 가물가물. 담배는 안 피웠을 것이다. 어쨌든 새벽 3시 대장 내시경을 위한 약물 4ℓ를 3시간 가까이 조금씩 나눠 마신 뒤로 지금까지 담배연기는 한 모금도 내 폐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 기쁜가? 글쎄, 모르겠다.

저녁 9시 | 가족과 함께 외식. 지글지글 고기를 굽는다. 때때로 아이의 심한 장난과 부산함 역시 적잖은 스트레스다. 부모의 길은 어렵고 험하다. 새삼 사무치는 사실들. 그래 나는 아빠다.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2011년 1월1일 아침 9시 | 어젯밤 아이를 재우다 함께 잠들어버렸다. 니코틴 부족에 수면 내시경의 뒤끝까지 겹친 듯하다. 아침 나름 개운하다. 담배에 길든, 아니 찌든 몸이 하루아침에 변할 리 없다. 다행히 담배가 없고 날씨는 춥다. 물을 마신다.

오전 11시 |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내려 마신다. 커피! 담배와 더불어, 금상첨화의 시너지, 정신은 고양되고 마음은 여유로운. 대학 시절 자판기 커피와 담배만 있어도 대여섯시간은 쉽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내 곁에 담배는 없다. 짙은 아쉬움. 다시 스멀스멀 잔잔한 물결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새해 첫날인데…. 새해 첫날이 뭐 대수냐? 그거 끊는다고 얼마나 오래 산다고? 아직 건강도 괜찮잖아! 그래도 기사는 써야 할 거 아닌가!?

오후 5시~자정 | 친지들과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시간. 오감을 어루만지는 와인이 있고 크랜베리 향이 감도는 칵테일이 있다. 알싸한 맥주도 있다. 술이 있다는 말씀. 담배의 강한 유혹이 시작된다. 술이 돌고 돌아 중추신경이 자꾸만 담배를 요구한다. 역시 술은 강적. OTL

1월2일 저녁 9시 | 오늘 밤 기사를 써야 한다. 책방에 앉았다. 커피도 진하게 한 잔 내려 마신다. 오랜만에 음악도 듣는다. 샤워를 하고 화장실에 가고 빵을 먹고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자정. 써야 할 건 많고, 키보드에 얹혀야 할 손은 자꾸 다른 곳을 향한다. 새벽이 오고 아직도 모니터는 백지장처럼 질려 있다. 호흡이 가빠온다. 새벽 3시. 어설픈 작심, 최대의 위기.

1월3일 아침 7시30분 | 기사는 거의 쓰지 못했다. 마음껏 못 피운 담배 탓이라고 떠넘긴다. 승리를 예감한 담배는 반긴다.

오전 9시30분 | 신문사 도착. 는 월·화에 기사를 마감한다.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이르는 요일이다. 사진촬영용으로 책상 위에 쌓아둔 담배를, 문화부문 편집장이 치워버린다. “성공했어?” “…” 새해 첫 출근, 담배와의 전쟁.

오후 1시20분 | 기사 쓰고, 데스킹 작업도 해야 한다. 가슴이 답답하다. 시원하게 연기를 내뿜는 상상. 후우~. 커피를 한 사발 들이마신다. 머리를 쥐어뜯는다. 책상을 박차고 일어선다.

작심이 단단해야 한다. 작심의 근거와 명분이 강고한 의지를 만든다. 나의 작심은 야물지 못했다. 그래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우기련다. 흡연량은 줄었으니까. “적게 피우고 많이 피우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피우느냐 안 피우느냐가 핵심입니다.” 금연 전문가의 일침이 따갑게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nowher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