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철 esc팀장
왜 제주 이민자 중
30대가 유독 많을까
행복하지 않은 서울
바꾸려고 나섰다
30대가 유독 많을까
행복하지 않은 서울
바꾸려고 나섰다
‘제주 이민’ 이야기를 들은 게 1년 전쯤이었다. 여행지로만 여기던 제주도로 이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자로서 생활인으로서 구미 당기는 이야기였다. 한겨레 매거진 196호(3월24일치) 커버스토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제주로 이삿짐 싸들고 들어가는 이들은 ‘서울에서 반듯하게 학교 마치고 번듯하게 직장 다니던’ 사람들이었다.
서귀포시 안덕면에서 게스트하우스 레이지박스를 운영하는 이재하(37)·하민주(33)씨 부부는 지난해 제주로 ‘이민’ 갔다. 워낙 제주를 좋아했던데다 결혼 뒤 서대문에서 수원까지 출퇴근하는 생활이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시에서의 불행한 속도전 대신 게으른 행복을 택한 것이다. 이들처럼 제주 이민자들 대부분이,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샛별처럼 떠오른 30대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10여년 전 제주에 들어 제주시 산천단에서 바람카페를 운영중인 이종진(46)씨는 “1~2년 사이에 제주도로 살러 오는 사람들은 30대가 많다”고 말했다. 는 이렇게 설명했다. “30대는 대부분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냈고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때를 전후해서 사회에 나온 세대다. 야간자율학습은 있어도 심야학원강습은 없었던 때 학창시절을 보냈다. 환란을 겪으면서 나이가 어리면 대학 공동체가 무너지는 걸, 많으면 종신고용 신화가 붕괴되는 걸 봐야 했다.”
30대 후반, 멀쩡한 대기업에 잘 다니는 직장인 ㄱ씨. 그 역시 요즘 서울살이를 접어야 하는가 고민에 빠져 있다. 겉으로는 별문제 없다. 10년 전 어렵사리 취직했지만 회사에서 잘나가고 맞벌이 아내도 탄탄한 직장에 다닌다. 5살짜리 아이도 잘 자란다. 그러나 새벽에 출근해 별도 없는 밤하늘 보며 퇴근하기가 일상이다. 보모를 두고는 있으나 아내는 육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돈? 많이 들어가지만 돈보다 더 큰 문제는 보모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 한달 백수십만원 주고 중국동포 아줌마를 고용하고 있지만 불안불안하다. 다른 이들은 요즘 필리핀 여자를 쓰고 있단다. 그나마 보모 둘 여유가 있다는 것, 불안하나마 보모가 그만두지 않고 있다는 것, 이것만 해도 배부른 고민이라고들 한다. 초등학교 들어가면 더 힘들다는 데 걱정이다. 집 문제는 아예 포기했다. 선배 세대는 그나마 아파트 분양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는데, 분양가 치솟는 데 질겁한 지 오래다. 까짓 안정적인 전세면 되겠지 했는데, 전셋값이 이젠 집값 못잖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가야 할 처지다. 포기다.
미혼의 30대들은 또다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청춘남녀의 숙원이라 할 연애사업을 보면 그들의 삶이 포착된다. 227호(10월27일치) 커버스토리 ‘도시남녀의 청춘사업 분투기’를 만들며, 마음이 짠했다. 불안한 삶의 조건들은 가장 행복해야 할 연애사업조차 불행하게 만드는 듯 보였다. 에스비에스 <짝>에 출연했던 연애 전문가들은 이렇게 증언했다. “연애 자체에 소극적이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만남도 점점 계층별로 만나는 게 심화하고 있다. 가난해서는 연애하기 힘든 게 당연하다. 절대로 사람과 시간을 낭비하려 들질 않는다.” 30대 기혼의 삶을 적나라하게 목격하는 그들은 영악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듯하다.
이래저래 30대는 서울이라는 이름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왜? 행복하지 않으니까. 행복을 찾아 떠나거나 행복을 포기한 채 생존에 존재 이유를 맞추거나. 이런 이들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제 더는 오지 않는 행복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뜻일까. ‘서울’을 ‘제주’로 만드는 데 30대가 팔 걷어붙여 나선 것일까.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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