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노노야구단 단장 겸 1루수 이동수씨, 영등포글로리아 유격수 진원심씨, 재팬야구단 감독 겸 2루수 마쓰모토 마코토씨
실버·여성·외국인 3인3색 개성 넘치는 사회인야구 선수들
사회인야구 선수 20만 시대. 힘차게 던진 공을 시원하게 받아내는 재미에 사회인야구를 한다는 건 이제 새로운 얘깃거리도 아니다. 게다가 사회인야구는 젊은 남성의 전유물도 아니다. 이 세계에도 이제는 백발성성한 스타급 팀이 존재하고, 외국인 군단에, 도루왕 언니까지 있는, 말 그대로 남녀노소·국적불문의 시대다. 3월, 사회인야구단 각 리그의 시즌 개막을 앞두고 3인3색 사회인야구 스타들을 모아봤다! 〈esc〉와 함께 와인드~업!
평균 연령 64살 노노야구단
내야 수비, 타석 순서도
무조건 나이순! 여든살 슈퍼 루키, 노노야구단 이동수씨 “자세 낮추고, 그렇지!” 26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정동 갈산초교 운동장에는 빨간 야구유니폼 입은 이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쌀쌀한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원스레 펑고(수비 연습을 위해 쳐내는 공)를 쳐내는 이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모자 밑으로는 새하얀 머리카락이, 얼굴에는 주름살이 한가득이다. ‘노노(No老)야구단’은 선수 나이대가 51~82살, 평균 64살의 실버 야구단이다. 창단 15년째인 이 야구단은 사회인야구계에서 이미 스타급이다. 선수들이 함께 공익광고 모델로 나선 적도 있고, 최근 고양원더스 트라이아웃에도 참가한 최고령 선수 장기원(82)씨는 최고 구속이 120㎞다. “나이스 배팅!” 이동수(81)씨가 경쾌한 소리로 공을 쳐내는 선수들을 향해 우렁찬 소리를 질렀다. 노노야구단 단장 겸 1루수를 맡고 있는 이씨는 팀에서 둘째로 나이가 많다. 하지만 한겨울에도 빠짐없이 나와 야구를 즐기고 있다.
“젊었을 적부터 야구를 좋아했어요. 체육주임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 그는 1994년까지 초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명예퇴임했다. 1997년 신문에서 노노야구단 창단 기사를 보고 한달음에 합류한 창단멤버다. 그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20대에 야구를 처음 배웠다. “1950년 9월 입대를 해서 곧바로 유엔군으로 편입됐지. 일본 규슈 벳푸에 있는 미군부대에서 있었는데, 거기 미군 중대장들이 한국 병사들로 야구단을 꾸려 내기 시합을 했어. 거기서 야구를 배웠지.”
초등학교 교사가 된 뒤에는 학교에서 야구부를 조직했다. “오류초, 강남초에서 야구부를 만들었어요. 오비(OB)베어스에서 뛰던 정혁진이 내 제자야.” 그는 야구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글러브 안에 공이 들어올 때의 매력을 꼽는다. “땅볼을 정확하게 잡았을 때만큼 짜릿한 게 없어.”
노노야구단을 나이 든 할아버지 야구단이라고 얕잡아 보면 안 된다. 지난해에도 청백전·연습경기 등 모두 20경기를 치렀고, 화력도 만만찮다. 조관형(63) 노노야구단 총무가 “지난해 공으로 깨먹은 학교 유리창 값만 100만원”이라고 귀띔한다. 이 팀에 깨지지 않는 규칙도 있다. 경로 우대. 내야 수비도, 타석 순서도 무조건 나이 많은 순서대로라는 것!
“베이징올림픽·더블유비시 할 때
제일 힘들었어요
상대 팀들이 무섭게 경기를
했거든요” 매주가 한·일전! 재팬야구단 마쓰모토 마코토씨 국내 사회인야구단에도 주한미군, 원어민 어학강사 등 외국인이 함께 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순수하게 외국인끼리 야구단을 만들어 뛰는 팀은 ‘재팬’ 야구단이 유일무이하다. 한국에서 일하는 주재원이 대부분인 이 팀은 올해로 창단 9년째다. 일본 상공회의소가 운영하는 ‘서울-재팬 클럽’(SJC) 안에 있는 동호회로 출발한 이 팀은 창단 이래로 다른 국내 사회인야구단과 함께 ‘쥬신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꾸 한·일전이라 생각해서 고생 정말 많았어요.(웃음)” 25일 오전 만난 마쓰모토 마코토(45)씨는 현재 팀의 감독 겸 2루수를 맡고 있다. 3년 전 서울 여의도의 한 회계법인에 취직하면서 재팬 팀에 합류했다. “솔직히 베이징올림픽·더블유비시(WBC·세계야구클래식) 할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상대 팀들이 무섭게 경기 했거든요. ‘독도는 우리 땅’이라며 소리지르는 사람도 있었어요.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요.” 한국말도 잘하는 그는 스스로를 ‘친한파’라고 부른다. 일본 도쿄에 살 때도 사회인야구를 했다. 그래서인지 사회인야구 문화가 더 발달한 일본과 다른 점도 자주 눈에 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난시키’(연식)라고 부르는 고무공을 써요. 재밌게 즐겨야 하니까 다치지 말아야죠. 그런데 한국 사회인야구에서는 초보라도 프로선수들이 쓰는 공을 쓰더라고요.” 공격적인 플레이도 가끔 무섭다고 한다. “슬라이딩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하면 서로 크게 다칠 수 있는데, 다들 과감하게 해요.” 진학이나 프로 입단을 목표로 야구를 하는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야구부와 달리 일본은 야구클럽에서 취미처럼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하는 점도 다르다. “저도 고등학교 때 야구를 했는데, 한국 기준으로 보면 우리 팀은 거의 다 선수 출신인 거죠.” 그와 재팬팀이 국내에서 사회인야구를 하면서 가장 아쉬워하는 점은 연습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저희가 자주 쓰는 실내야구장은 2시간에 10만원이에요. 비싸요. 올림픽 금메달 딴 나라가 이렇게 야구장 없으면 안 돼요. 김연아도 좋고, 장미란도 좋지만, 다음 대통령은 야구장을 좀 많이 세워주면 좋겠어요.”
“고3 아들이 먼저
‘엄마 같이 한 게임 하자’고 해요
이런 엄마 드물걸요?” 왕언니 야구한다! 영등포글로리아 진원심씨 “자자, 오전 경기 반성도 좀 하면서 식사합시다!” 26일 낮 경기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온 2년차 여자 사회인야구단 ‘영등포글로리아’의 감독 손호진(35)씨가 선수들을 향해 일갈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서울 양화동 안양천변의 영롱이갈대1구장에서 열린 영등포리그 올해 첫 경기에서 강호팀 ‘시엠에스’(CMS) 여자야구단과 맞붙어 4 대 8로 졌기 때문이다. “와하하하.” 비록 경기는 졌지만,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특히 창단 2년차인 이 팀의 두 왕언니인 전문숙(46)씨와 진원심(45)씨는 팀원들 밥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문숙 언니가 여자 사회인야구 심판 보러 간다고 해서 구경하려고 따라갔다가 야구에 푹 빠졌죠. 말로만 듣던 것과 다르게 다들 엄청 대단하더라고요.” 전씨는 소프트볼 국가대표 출신으로 현재 소프트볼 심판이며, 진씨는 1988년 서울올림픽(은)과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금) 등에서 ‘동양의 진주’로 이름을 날리던 하키 국가대표 메달리스트다. 태릉인 출신으로 알고 지내던 이들이 지금은 야구에 푹 빠져 있다. “하키는 몸이 먼저 나가는 운동인데 야구는 그렇지 않아요.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자세를 다 갖춰야 해요. 이런 새로운 것을 배우다 보면 힘든 줄 몰라요.” 100m를 12초에 달리던 학창시절 육상선수로 뛰다 하키 국가대표까지 된 까닭에 진씨는 유격수 겸 여성 사회인야구단 안에서 소문난 도루왕이다. “투수나 타자의 발 움직임을 보고, 이때다, 딱 눈치를 채죠. 야구도 순발력이에요. 예전에는 이 세상에서 하키가 제일 어려운 운동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웃음)” 최근 몇 년 사이 25개 팀까지 늘어난 여성 사회인야구단은 초기에는 소프트볼 선수 출신들을 중심으로 꾸려져왔다. 그러나 꾸준히 늘어나는 인원 탓에 회원들이 기존의 팀을 나와 새 팀을 꾸리는 일이 늘어나면서, 운동과 담을 쌓던 야구팬 여성들도 많아졌다. “야구는 여자가 하기에 체력적으로 과하지 않은 운동이라 좋아요. 경기 뛰다 보면 참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 친구 정말 많더라고요. 기왕에 할 거라면 여자축구처럼 초·중·고교에 여성야구부를 만들어 좀더 육성했으면 좋겠어요.” 진씨는 고교 3학년 큰아들과 캐치볼 하는 엄마다. “아들이 먼저 ‘엄마, 같이 한 게임 하자’고 해요. 제가 야구 하는 것도 참 좋아하고요. 이런 엄마 드물걸요?” 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내야 수비, 타석 순서도
무조건 나이순! 여든살 슈퍼 루키, 노노야구단 이동수씨 “자세 낮추고, 그렇지!” 26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정동 갈산초교 운동장에는 빨간 야구유니폼 입은 이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쌀쌀한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원스레 펑고(수비 연습을 위해 쳐내는 공)를 쳐내는 이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모자 밑으로는 새하얀 머리카락이, 얼굴에는 주름살이 한가득이다. ‘노노(No老)야구단’은 선수 나이대가 51~82살, 평균 64살의 실버 야구단이다. 창단 15년째인 이 야구단은 사회인야구계에서 이미 스타급이다. 선수들이 함께 공익광고 모델로 나선 적도 있고, 최근 고양원더스 트라이아웃에도 참가한 최고령 선수 장기원(82)씨는 최고 구속이 120㎞다. “나이스 배팅!” 이동수(81)씨가 경쾌한 소리로 공을 쳐내는 선수들을 향해 우렁찬 소리를 질렀다. 노노야구단 단장 겸 1루수를 맡고 있는 이씨는 팀에서 둘째로 나이가 많다. 하지만 한겨울에도 빠짐없이 나와 야구를 즐기고 있다.
펑고를 쳐내고 있는 노노야구단 선수.
제일 힘들었어요
상대 팀들이 무섭게 경기를
했거든요” 매주가 한·일전! 재팬야구단 마쓰모토 마코토씨 국내 사회인야구단에도 주한미군, 원어민 어학강사 등 외국인이 함께 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순수하게 외국인끼리 야구단을 만들어 뛰는 팀은 ‘재팬’ 야구단이 유일무이하다. 한국에서 일하는 주재원이 대부분인 이 팀은 올해로 창단 9년째다. 일본 상공회의소가 운영하는 ‘서울-재팬 클럽’(SJC) 안에 있는 동호회로 출발한 이 팀은 창단 이래로 다른 국내 사회인야구단과 함께 ‘쥬신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꾸 한·일전이라 생각해서 고생 정말 많았어요.(웃음)” 25일 오전 만난 마쓰모토 마코토(45)씨는 현재 팀의 감독 겸 2루수를 맡고 있다. 3년 전 서울 여의도의 한 회계법인에 취직하면서 재팬 팀에 합류했다. “솔직히 베이징올림픽·더블유비시(WBC·세계야구클래식) 할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상대 팀들이 무섭게 경기 했거든요. ‘독도는 우리 땅’이라며 소리지르는 사람도 있었어요.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요.” 한국말도 잘하는 그는 스스로를 ‘친한파’라고 부른다. 일본 도쿄에 살 때도 사회인야구를 했다. 그래서인지 사회인야구 문화가 더 발달한 일본과 다른 점도 자주 눈에 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난시키’(연식)라고 부르는 고무공을 써요. 재밌게 즐겨야 하니까 다치지 말아야죠. 그런데 한국 사회인야구에서는 초보라도 프로선수들이 쓰는 공을 쓰더라고요.” 공격적인 플레이도 가끔 무섭다고 한다. “슬라이딩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하면 서로 크게 다칠 수 있는데, 다들 과감하게 해요.” 진학이나 프로 입단을 목표로 야구를 하는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야구부와 달리 일본은 야구클럽에서 취미처럼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하는 점도 다르다. “저도 고등학교 때 야구를 했는데, 한국 기준으로 보면 우리 팀은 거의 다 선수 출신인 거죠.” 그와 재팬팀이 국내에서 사회인야구를 하면서 가장 아쉬워하는 점은 연습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저희가 자주 쓰는 실내야구장은 2시간에 10만원이에요. 비싸요. 올림픽 금메달 딴 나라가 이렇게 야구장 없으면 안 돼요. 김연아도 좋고, 장미란도 좋지만, 다음 대통령은 야구장을 좀 많이 세워주면 좋겠어요.”
수비 연습을 하고 있는 여자 야구단 영등포글로리아 선수들의 모습.
‘엄마 같이 한 게임 하자’고 해요
이런 엄마 드물걸요?” 왕언니 야구한다! 영등포글로리아 진원심씨 “자자, 오전 경기 반성도 좀 하면서 식사합시다!” 26일 낮 경기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온 2년차 여자 사회인야구단 ‘영등포글로리아’의 감독 손호진(35)씨가 선수들을 향해 일갈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서울 양화동 안양천변의 영롱이갈대1구장에서 열린 영등포리그 올해 첫 경기에서 강호팀 ‘시엠에스’(CMS) 여자야구단과 맞붙어 4 대 8로 졌기 때문이다. “와하하하.” 비록 경기는 졌지만,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특히 창단 2년차인 이 팀의 두 왕언니인 전문숙(46)씨와 진원심(45)씨는 팀원들 밥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문숙 언니가 여자 사회인야구 심판 보러 간다고 해서 구경하려고 따라갔다가 야구에 푹 빠졌죠. 말로만 듣던 것과 다르게 다들 엄청 대단하더라고요.” 전씨는 소프트볼 국가대표 출신으로 현재 소프트볼 심판이며, 진씨는 1988년 서울올림픽(은)과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금) 등에서 ‘동양의 진주’로 이름을 날리던 하키 국가대표 메달리스트다. 태릉인 출신으로 알고 지내던 이들이 지금은 야구에 푹 빠져 있다. “하키는 몸이 먼저 나가는 운동인데 야구는 그렇지 않아요.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자세를 다 갖춰야 해요. 이런 새로운 것을 배우다 보면 힘든 줄 몰라요.” 100m를 12초에 달리던 학창시절 육상선수로 뛰다 하키 국가대표까지 된 까닭에 진씨는 유격수 겸 여성 사회인야구단 안에서 소문난 도루왕이다. “투수나 타자의 발 움직임을 보고, 이때다, 딱 눈치를 채죠. 야구도 순발력이에요. 예전에는 이 세상에서 하키가 제일 어려운 운동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웃음)” 최근 몇 년 사이 25개 팀까지 늘어난 여성 사회인야구단은 초기에는 소프트볼 선수 출신들을 중심으로 꾸려져왔다. 그러나 꾸준히 늘어나는 인원 탓에 회원들이 기존의 팀을 나와 새 팀을 꾸리는 일이 늘어나면서, 운동과 담을 쌓던 야구팬 여성들도 많아졌다. “야구는 여자가 하기에 체력적으로 과하지 않은 운동이라 좋아요. 경기 뛰다 보면 참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 친구 정말 많더라고요. 기왕에 할 거라면 여자축구처럼 초·중·고교에 여성야구부를 만들어 좀더 육성했으면 좋겠어요.” 진씨는 고교 3학년 큰아들과 캐치볼 하는 엄마다. “아들이 먼저 ‘엄마, 같이 한 게임 하자’고 해요. 제가 야구 하는 것도 참 좋아하고요. 이런 엄마 드물걸요?” 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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