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통닭골목’.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는 손님들로 거리가 복잡하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밤샘 성업중인 수원 통닭골목…번호표 뽑고 수십분 기다려도 언제나 북적북적
밤샘 성업중인 수원 통닭골목…번호표 뽑고 수십분 기다려도 언제나 북적북적
“가끔씩 오죠. 동생에게 맛보이고 싶어서 데리고 왔어요.”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는 박영민(53)씨가 건넨 첫마디다. 박씨는 중국에 사는 여동생과 부모님을 모시고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일명 ‘수원 통닭골목’을 찾았다. ‘진미통닭’에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린 지 벌써 20분이 넘지만 짜증난 표정은 찾아볼 수 없다.
지난 19일 오후 5시께 이 골목은 박씨 같은 이들로 북적거렸다. 장터가 따로 없다. 여름을 알리는 눅진한 바람이 고소한 통닭 냄새를 끌어안고 치맛자락을 잡아챈다. 튀긴 닭고기 특유의 향이 콧구멍을 파 헤집는다. 진미통닭, 용성통닭, 장안통닭, 치킨타운, 매향통닭 등, 약 10개의 통닭집이 이 거리에 모여 있다.
통닭집 앞은 진풍경이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통닭 여행객이 있는가 하면, 배를 두둑하게 채우고 의기양양 아이스크림 베어 문 이도 있다. 가게 밖 가마솥에는 닭을 튀기는 종업원들의 손이 바쁘다. 밀가루와 갖은 양념을 버무린 튀김옷에 닭을 던지고 꺼내 튀기고 묻히고 튀긴다.
71년 최초로 문 연 매향통닭
방송타며 인기 모은 진미통닭 우리 민족만큼 닭요리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을까!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임원십육지> 등 고서에는 닭 조리법이 빼곡하다. 조선시대에는 집집마다 사육할 정도로 그 수도 많았다. 최고의 인기 가축이었다. ‘무릇 닭을 잡아 거꾸로 달기를 반나절이나 해야 피가 다 빠지고 연하여 맛이 좋다’는 기록도 있다. 평안남도에는 ‘알을 품고 있을 때 남자가 들어가면 수컷이 많이 나오고 여자가 들어가면 암컷이 많다’는 미신도 있었다. 팔도에 닭과 관련된 오만가지 미신들이 그 옛날에는 떠돌았다. 그만큼 닭은 우리와 가까웠다. 그래서일까, 대표적인 닭요리인 통닭의 인기는 여전하다. 골목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번호표를 받은 이들이 무리지어 있다. 마치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서 짧은 시간 놀이나 행동을 취하는 것)을 보는 듯하다. 한날, 같은 시각, 같은 음식(통닭)을 먹기 위해 모여든 이들이다. 닭을 통째로 튀겨내는 ‘매향통닭’과 참숯 바비큐 ‘훌랄라’ 등을 빼면 대부분의 집들은 튀김통닭과 양념통닭, 이 둘을 섞어 내는 ‘반반’이 주메뉴다. 특징은 푸짐하다는 것. 닭은 1.1~1.2㎏ 정도의 크기. 값도 1만3000원으로 가게마다 거의 동일하다. 이 동네가 통닭골목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4~5년 전부터다. ‘토탈치킨타운’ 김은경 사장은 “진미통닭은 수원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고 말한다. 매향통닭(1971년)이 제일 먼저 생겼지만 사람들을 골목으로 끌어들인 것은 30여년 전에 문을 연 진미통닭의 현재 주인 이성희(44)씨다. 그는 20년 전 진미통닭을 맡았다. “남편(박순종)의 누나가 원래 했었죠. 10년 전에 제가 ‘생활의 달인’(SBS)에 나가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죠.” 그는 방송에서 가마솥에 튀겨낸 닭을 포장용, 서빙용에 따라 빠르게 분리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한마리 1만3000원
1㎏ 넘는 닭으로
푸짐하게 내는 게 비결 가게 안도 진풍경이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폭탄주를 제조하는 20대, 등산을 하고 내려와 허기진 배를 허겁지겁 채우는 40대, 조막만한 아이 손에 잘게 찢은 닭고기를 얹어주는 30대 등. 앞집 용성통닭도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13년 전부터 용성통닭을 운영한 주인 한창석(58)씨는 한때 “후배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오갈 데가 없을 정도로 나락에 떨어졌었다. 그의 나이 45살 때 일이다. 26.4㎡(8평) 작은 가게를 인수해 하루 18시간씩 일해 가며 매달렸다. 지금은 231.4㎡(70평)로 키운 가게에, 직원만 12명이다. 주말은 하루 800마리가 팔린다. “푸짐해야 합니다. 대중음식은 대중음식다워야 하죠.” 통닭집 덕을 톡톡히 보는 이도 있다. ‘편의점 사랑’의 주인 한용우씨는 “물, 음료, 아이스크림 등이 잘 팔린다”며 웃는다. 이 거리 통닭집들은 문 닫는 시간과 휴일이 모두 다르다. 진미통닭과 용성통닭, 치킨타운이 새벽 1시쯤 문을 닫으면 손님들은 새벽 2시까지 영업하는 장안통닭으로 몰린다. 장안통닭이 끝나면 새벽 5시까지 영업하는 남수통닭이 왁자지껄하다. 남수통닭은 야외 파라솔이 장점이다. 최근 복개한 개천 앞에 있다. 행궁통닭, 남문불닭발, 매향통닭도 같은 줄에 있다. 파라솔과 빨간 의자가 즐비하다. 41년째 영업중인 매향통닭은 주인 고병희씨의 손놀림이 능숙하다. 허연 닭 한 마리에 쑥쑥 칼집을 내 가마솥에 통째로 튀긴다. 지글지글, 여름날 빗소리가 나면 고씨는 다시 칼집을 낸다. 감으로 익은 것을 감지한 그는 철판에 꺼내 기름이 빠질 때까지 기다린다. 마지막 단계는 소금을 뿌리는 것. 그의 능숙한 손놀림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일찌감치 유명세를 탄 매향통닭 벽에는 한국방송, 문화방송 등 방송출연 흔적이 많다. 새벽 3시까지 영업을 한다. 매향통닭 건너편에는 종로통닭도 눈에 들어온다. 통닭골목에서 배를 한껏 불리고 나면 소화시키기 위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팔달문(화성의 남문)을 찾아도 좋다. 화성 행궁(왕이 궁궐을 벗어나 머무는 곳)을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다시 출출해지고 지글지글 고소한 기름냄새에 발걸음이 다시 통닭골목으로 향할지도 모를 일이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참고도서 <한국요리문화사>, <한국식품사회사>
‘진미통닭’의 튀김통닭
방송타며 인기 모은 진미통닭 우리 민족만큼 닭요리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을까!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임원십육지> 등 고서에는 닭 조리법이 빼곡하다. 조선시대에는 집집마다 사육할 정도로 그 수도 많았다. 최고의 인기 가축이었다. ‘무릇 닭을 잡아 거꾸로 달기를 반나절이나 해야 피가 다 빠지고 연하여 맛이 좋다’는 기록도 있다. 평안남도에는 ‘알을 품고 있을 때 남자가 들어가면 수컷이 많이 나오고 여자가 들어가면 암컷이 많다’는 미신도 있었다. 팔도에 닭과 관련된 오만가지 미신들이 그 옛날에는 떠돌았다. 그만큼 닭은 우리와 가까웠다. 그래서일까, 대표적인 닭요리인 통닭의 인기는 여전하다. 골목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번호표를 받은 이들이 무리지어 있다. 마치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서 짧은 시간 놀이나 행동을 취하는 것)을 보는 듯하다. 한날, 같은 시각, 같은 음식(통닭)을 먹기 위해 모여든 이들이다. 닭을 통째로 튀겨내는 ‘매향통닭’과 참숯 바비큐 ‘훌랄라’ 등을 빼면 대부분의 집들은 튀김통닭과 양념통닭, 이 둘을 섞어 내는 ‘반반’이 주메뉴다. 특징은 푸짐하다는 것. 닭은 1.1~1.2㎏ 정도의 크기. 값도 1만3000원으로 가게마다 거의 동일하다. 이 동네가 통닭골목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4~5년 전부터다. ‘토탈치킨타운’ 김은경 사장은 “진미통닭은 수원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고 말한다. 매향통닭(1971년)이 제일 먼저 생겼지만 사람들을 골목으로 끌어들인 것은 30여년 전에 문을 연 진미통닭의 현재 주인 이성희(44)씨다. 그는 20년 전 진미통닭을 맡았다. “남편(박순종)의 누나가 원래 했었죠. 10년 전에 제가 ‘생활의 달인’(SBS)에 나가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죠.” 그는 방송에서 가마솥에 튀겨낸 닭을 포장용, 서빙용에 따라 빠르게 분리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용성통닭’ 안의 풍경. 식탁마다 손님이 가득하다(왼쪽) 이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매향통닭’. 한 마리 통째로 튀긴다(오른쪽)
1㎏ 넘는 닭으로
푸짐하게 내는 게 비결 가게 안도 진풍경이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폭탄주를 제조하는 20대, 등산을 하고 내려와 허기진 배를 허겁지겁 채우는 40대, 조막만한 아이 손에 잘게 찢은 닭고기를 얹어주는 30대 등. 앞집 용성통닭도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13년 전부터 용성통닭을 운영한 주인 한창석(58)씨는 한때 “후배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오갈 데가 없을 정도로 나락에 떨어졌었다. 그의 나이 45살 때 일이다. 26.4㎡(8평) 작은 가게를 인수해 하루 18시간씩 일해 가며 매달렸다. 지금은 231.4㎡(70평)로 키운 가게에, 직원만 12명이다. 주말은 하루 800마리가 팔린다. “푸짐해야 합니다. 대중음식은 대중음식다워야 하죠.” 통닭집 덕을 톡톡히 보는 이도 있다. ‘편의점 사랑’의 주인 한용우씨는 “물, 음료, 아이스크림 등이 잘 팔린다”며 웃는다. 이 거리 통닭집들은 문 닫는 시간과 휴일이 모두 다르다. 진미통닭과 용성통닭, 치킨타운이 새벽 1시쯤 문을 닫으면 손님들은 새벽 2시까지 영업하는 장안통닭으로 몰린다. 장안통닭이 끝나면 새벽 5시까지 영업하는 남수통닭이 왁자지껄하다. 남수통닭은 야외 파라솔이 장점이다. 최근 복개한 개천 앞에 있다. 행궁통닭, 남문불닭발, 매향통닭도 같은 줄에 있다. 파라솔과 빨간 의자가 즐비하다. 41년째 영업중인 매향통닭은 주인 고병희씨의 손놀림이 능숙하다. 허연 닭 한 마리에 쑥쑥 칼집을 내 가마솥에 통째로 튀긴다. 지글지글, 여름날 빗소리가 나면 고씨는 다시 칼집을 낸다. 감으로 익은 것을 감지한 그는 철판에 꺼내 기름이 빠질 때까지 기다린다. 마지막 단계는 소금을 뿌리는 것. 그의 능숙한 손놀림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일찌감치 유명세를 탄 매향통닭 벽에는 한국방송, 문화방송 등 방송출연 흔적이 많다. 새벽 3시까지 영업을 한다. 매향통닭 건너편에는 종로통닭도 눈에 들어온다. 통닭골목에서 배를 한껏 불리고 나면 소화시키기 위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팔달문(화성의 남문)을 찾아도 좋다. 화성 행궁(왕이 궁궐을 벗어나 머무는 곳)을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다시 출출해지고 지글지글 고소한 기름냄새에 발걸음이 다시 통닭골목으로 향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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