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페스티벌에서 슬램을 하는 관객들. TOPCON 제공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록음악 맞춰 몸부딪치는 슬램…페스티벌 열기에 기름붓는 젊은이들 놀이
록음악 맞춰 몸부딪치는 슬램…페스티벌 열기에 기름붓는 젊은이들 놀이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더위이다. 이 더위를 온몸으로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 정면돌파다. 록음악에 몸을 싣고, 미친 듯이 뛴다. ‘날뛴다’는 말이 훨씬 들어맞겠다. 지난 6월 말과 7월 말 서울 홍익대 앞 록음악 공연장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무대 위의 열기에 관객들 몸부림의 열기가 더해지자, 공연장은 폭발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뛰고 또 뛰고, 때로는 관객들 사이로 ‘붕’ 하고 날아오른다. “왜 저러지? 저런 걸 뭐라고 하지?”라는 질문에, 공연장 출입 내공 10년을 넘어선 친구가 말했다. “저런 걸 ‘슬램’이라고 하는 거야. 슬램은 강렬한 느낌의 록음악에 맞춰 서로 몸을 부딪치면서 노는 것이지.” 공연장에서 지켜본 슬램 마니아들의 표정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는 듯했으나 이내 낄낄거리는 듯한 웃음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슬램 마니아들을 찾아나섰다. 바야흐로 ‘록페스티벌의 계절’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7월 말 지산밸리록페스티벌과 8월 초 부산국제록페스티벌로 향했다.
지산록페스티벌 슬램존
원형대형 만들며 달리기
마주보고 돌진하며 부딪치기 햇빛이 온몸을 후려치는 날씨였다. 30도가 넘는 한낮 기온을 보고는 겁이 났다. 7월27일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이 열리는 경기도 이천 지산포레스트리조트의 주요 공연장인 ‘빅 탑 스테이지’. 30분 정도 서 있었을 뿐이었는데, 정수리가 타는 듯했다. 오후 5시40분부터 시작한 김창완밴드의 공연은 얌전히 듣고 앉아 있으면 되지 싶었다. 오해였다. 묵직하면서도 신나는 노래가 이어지더니, ‘기차로 오토바이 타자’가 나오자, 무대 오른편에 있던 관객들이 슬슬 몸을 풀었다. 그러다 노래의 절정 부분이 나오자 서로 몸을 부딪치며 슬램을 하기 시작하고, 기차놀이가 이어졌다.
얼떨결에 슬램존에 몸을 맡겼더니, 이리저리 치이고 머리채를 잡히고 난리가 났다. 땀이 쭉 났고, 기분은 뺀 땀만큼 가벼워진 듯했다. 모든 취재 일정을 ‘슬램’에 맞춰 체력을 비축해두려고 했던 계획은 이렇게 초반부터 틀어졌다. 들국화와 라디오헤드 등 국내외 정상급 가수들의 공연도 일품이었지만 슬램 마니아들이 목을 빼고 기다린 시간이 있었으니, 오픈 스테이지에서 밤 12시부터 시작하는 ‘슬램 샤워’!
슬램으로 땀 샤워를 하기 딱 좋은 헤비메탈 등의 음악을 선보이는 밴드들이 줄줄이 무대에 올랐다. 나인씬, 다운헬, 럭스 등 5개 팀이 출격, 슬램에 빠진 관객들도 모두 출격! 밴드 음악 문맹에 가까워 어떤 가사인 줄, 노래인 줄 몰랐지만 슬램존 옆에 다가서기만 했을 뿐인데도 흥분의 에너지가 장풍급으로 느껴졌다. 나인씬과 다운헬 공연 사이 혀를 빼고 헉헉거리는 관객 이지명(27)씨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좀 ‘쎈’ 분들일 거라 지레짐작했으나, 무엇이든 겪어보기 전엔 선입견을 버리자. 땀을 비처럼 쏟으면서도 굵고 짧은 한마디를 뱉었다. “이거요? 다 잊을 수 있다는 거요. 슬램, 록음악이 더해지면, 바로 그것뿐이에요.”
슬램하기 위해
페스티벌 고정출석도
“1년 동안 쌓인 거 푸는 곳이죠” 28일, 이들의 공연을 손꼽아 기다렸다. 할로우 잰, 오후 3시 시작된 그들의 공연. 관객들은 이날 빅 탑 스테이지의 거의 첫 공연이었음에도, 그날치 기운을 쏙 뽑아낼 만큼 몸을 뒤흔들었다. 울부짖는 듯한 보컬과 강렬한 악기 연주는 가슴을 ‘꽝’ 하고 때렸다. 그 충격과 함께 시작된 슬램은 신나는 몸짓이었다기보다는 그들의 음악과 함께 울부짖는 몸짓이었다. 보컬 임환택씨가 노래 도중 관객들을 향해 “슬램핏!” 하고 외치자, 우르르 동그란 대형을 만들며 미친 듯이 뛰었다. 남녀 가리지 않고,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뛴다. 그리고 이어서, ‘엠프티’라는 노래 도중, 임씨는 ‘월 오브 데스’(관객이 양쪽으로 나뉘어 선 뒤 서로를 향해 돌진해 몸을 부딪치는 것)를 제안했다. 임씨는 공연이 끝나고 말했다. “록음악에서 슬램은 관객과 나누는 무언의 커뮤니케이션 같은 것이죠. 관객과 저희가 소통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는 것이고요.”
8월3일 오후 3시, 부산 삼락생태공원에서 열린 13회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스스로 내쉬는 숨의 열기도 못 참겠는 날씨였다. 구름은 정말 한 점도 없었고, 타는 햇볕 아래 그보다 더 뜨겁게 젊음을 불태우는 이들이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는 3시부터 거의 쉬지 않고 몸을 흔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했다. 공연장 열기를 식히기 위해 스프링클러가 돌아가고, 공연 절정의 순간 소방차에서 내뿜는 물줄기가 있었기 망정이었다. 부산에 사는 강병민(31)씨와 유혜린(20)씨는 얼굴이 벌겠다. 술 한잔들 하셨냐고 물었는데 유씨가 말짱한 눈동자로 쳐다보며 “한잔도 안 마셨는데요”란다. 부산록페 첫날, 그것도 2시간 정도 지났을 뿐인데 온몸이 땀과 물로 젖었다. 이 둘은 4년 전 부산록페에서 만난 ‘슬램 동지’이다. 나이 차이도 많지만, 빼놓지 않고 이곳을 찾아 쌓인 스트레스와 고민을 다 털어낸다. 강씨는 “음악은 가리지 않아요. 슬램이 원래 남 눈치 안 보고 서로 엉켜서 노는 것이잖아요. 남 시선으로부터 통제되지 않은 공간에서 마음껏 몸을 움직이면서 희열을 느끼곤 해요.”
멀리 전남 여수에서 온 서형우(26)씨는 6년째 부산록페를 찾았다. 부산에 오면 3년 전 이곳에서 만난 친구 이창환(24)씨와 함께 ‘주구장창’ 슬램을 한다.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까맣게 탄 얼굴 사이 흰 이를 드려내며 웃는다. “1년 동안 쌓인 것을 푸는 곳이죠.” 슬램을 하러 오는 이유는 이것 하나이다. 슬램존에서 무리들을 이끄는 몸짓을 하며 리더 노릇을 하는 것 같은 그였다. 대장 선출이라도 하는 것일까? “슬램을 오래 하거나, 노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노래의 기승전결을 알잖아요. 음악이 ‘빵’ 터지는 순간을 안다는 거죠. 그것에 맞춰 신나게 슬램을 할 타이밍을 잡는 것이죠. 누가 정해놓고 그런 것은 아니고요.” 강씨와 유씨, 서씨와 이씨, 이렇게 슬램 동지들은 짧은 인터뷰가 끝나기 무섭게 이어지는 강렬한 음악 소리를 쫓아 내달렸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원형대형 만들며 달리기
마주보고 돌진하며 부딪치기 햇빛이 온몸을 후려치는 날씨였다. 30도가 넘는 한낮 기온을 보고는 겁이 났다. 7월27일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이 열리는 경기도 이천 지산포레스트리조트의 주요 공연장인 ‘빅 탑 스테이지’. 30분 정도 서 있었을 뿐이었는데, 정수리가 타는 듯했다. 오후 5시40분부터 시작한 김창완밴드의 공연은 얌전히 듣고 앉아 있으면 되지 싶었다. 오해였다. 묵직하면서도 신나는 노래가 이어지더니, ‘기차로 오토바이 타자’가 나오자, 무대 오른편에 있던 관객들이 슬슬 몸을 풀었다. 그러다 노래의 절정 부분이 나오자 서로 몸을 부딪치며 슬램을 하기 시작하고, 기차놀이가 이어졌다.
뜨거운 햇빛 아래서도 지칠 줄 모르고 몸을 흔드는 부산록페 관객들.
페스티벌 고정출석도
“1년 동안 쌓인 거 푸는 곳이죠” 28일, 이들의 공연을 손꼽아 기다렸다. 할로우 잰, 오후 3시 시작된 그들의 공연. 관객들은 이날 빅 탑 스테이지의 거의 첫 공연이었음에도, 그날치 기운을 쏙 뽑아낼 만큼 몸을 뒤흔들었다. 울부짖는 듯한 보컬과 강렬한 악기 연주는 가슴을 ‘꽝’ 하고 때렸다. 그 충격과 함께 시작된 슬램은 신나는 몸짓이었다기보다는 그들의 음악과 함께 울부짖는 몸짓이었다. 보컬 임환택씨가 노래 도중 관객들을 향해 “슬램핏!” 하고 외치자, 우르르 동그란 대형을 만들며 미친 듯이 뛰었다. 남녀 가리지 않고,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뛴다. 그리고 이어서, ‘엠프티’라는 노래 도중, 임씨는 ‘월 오브 데스’(관객이 양쪽으로 나뉘어 선 뒤 서로를 향해 돌진해 몸을 부딪치는 것)를 제안했다. 임씨는 공연이 끝나고 말했다. “록음악에서 슬램은 관객과 나누는 무언의 커뮤니케이션 같은 것이죠. 관객과 저희가 소통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는 것이고요.”
뜨거운 햇빛 아래서도 지칠 줄 모르고 몸을 흔드는 부산록페 관객들.
슬램을 하는 관객들의 움직임에 매료돼 사진 찍기를 시작한 정경일씨. TOPC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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