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
[매거진 esc] 생활레포츠로 정착돼 가는 국궁…활쏘기에 빠진 3인방 인터뷰
쿠궁! 2000년 전통에 빛나는 우리 궁술 국궁. 그렇다. 우리는 말 타고 자유자재로 활을 쏘며 만주 벌판을 내달리던 기마민족의 후예다. 서양 활 양궁에서 잇따라 세계 정상에 오른 데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전통 활 국궁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어르신들의 소일거리’ 정도로 여겨지던 국궁은, 이제 청소년에서부터 호호백발 할머니까지 남녀노소가 즐기는, 건강 생활레포츠로 정착돼 가고 있다. 활쏘기의 매력은 무엇일까. 한번 빠져들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 불거나’ 과녁을 향해 눈을 부라리게 된다는, 국궁에 푹 빠진 할머니와 대학생과 중학생 3인이 각각 털어놓은 활쏘기의 즐거움을 들어보자.
70대 여성 궁사
8년 전 활 잡으면서
어지럼증·이명 사라져 살림 도맡아 하며 활쏘기 즐기는 할머니 궁사 최춘자(73·사진1)씨 9월16일 오후 서울 사직동 인왕산 자락의 유서깊은 활터 황학정. “땡, 땡, 땡.” 활쏘기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남녀노소 회원들이 조용히 사대에 들어섰다. 최춘자씨가 과녁을 노려보며 팽팽하게 시위를 당겼다. “퉁!” 가냘픈 몸집의 70대 할머니가 쐈다고 여겨지지 않는, 강력한 힘이 실린 화살이 145m 떨어진 과녁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딱!” 스피커를 통해, 과녁에 명중했음을 알리는 둔탁한 소리가 사대에 울려퍼졌다. “관중(명중)이오! 축하합니다.”
국궁 경력 8년의 최씨는 황학정의 회원(총 150여명·여성 30여명) 중 최고령 여성 회원. 수십년씩 활을 쏘아온 80~90살의 ‘정정한’ 남성 궁사는 많아도, 70살 넘은 할머니 궁사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남편 세상 떠나고 몸이 안 좋아져 고민하다, 활 쏘는 조카의 추천으로 활을 배우게 됐어요.” 최씨는 6개월간 이론·실기 연습(직궁)을 한 뒤 ‘입사’(연습을 마치고 사대에 서는 일)해 3개월 만에 ‘초몰기’(처음으로 화살 5개를 모두 맞힘)를 이뤘다. 활은 ‘1순 5시’(한번 사대에 올라 5발을 쏨) 방식으로 쏘는데, 처음으로 5발을 모두 맞히면 회원들의 축하와 함께 ‘접장’ 칭호를 받게 된다. 1년을 쏴도 접장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니, 최씨는 할머니치고는 빼어난 실력을 갖춘 셈. 최씨가 배시시 웃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솔직히 다섯발 다 맞히기가 정말 어려워. 몸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안 되고, 과욕을 부려서도 안 되지.”
최씨는 8년째 거의 매일, 마포 성산동 집에서 버스를 타고 와 활을 쏘았다. 적을 땐 5순(25발), 많이 쏠 땐 9순(45발)을 쏘고 간다. 한번 시위를 당길 때마다 상·하체 근육을 긴장시키고, 복식호흡을 하면서 정신을 과녁에 집중해야 하므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최씨의 말이다.
“어지럼증과 이명이 심했는데, 싹 사라졌어요. 소화도 잘되고.” 최씨는 맞벌이 부부인 아들·며느리와 함께 살며, 밥하고 빨래하고 손주들 뒤치다꺼리까지 하면서도 활 쏘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고 자랑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날씨와 상관없이 혼자서도 싸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 바로 활쏘기죠.” 한 ‘순’만 더 쏘고 밥 차리러 가야 한다며 활을 드는 최씨의 팔에서 단단한 근육이 ‘꿈틀’하는 게 느껴졌다.
10대 소년 궁사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
“소심한 성격 밝아졌죠” 소극적·내성적이던 성격 바꾼 중학생 궁사 양승호(14·사진2)군 “활을 쏘면 정말 기분이 좋아져요. 가슴도 활짝 펴지고요.” 16일 오전 남산 석호정에서 만난 양승호(서울 가락중 2년)군. 지난 4월부터 학교 토요 방과후 프로그램의 하나인 ‘국궁·문화탐방반’(담당 문화일 교사)에 들어 매주 한번씩 동급생 11명과 석호정을 찾아 시위를 당긴다.
스스로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고백한 양군은 “평소에 몸을 웅크리고 다니길 좋아했는데 이젠 활짝 펴고 다닌다”며 “활을 쏘기 시작한 뒤 양팔과 배에 근육이 늘고 힘이 세진 것 같다”고 자랑했다. 학생들과 함께 활을 쏘던 문 교사는 “승호가 교실에선 친구들과 대화도 잘 안 하는 아이였는데, 요즘 먼저 말 걸고 큰 소리로 웃으며 대화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활을 쏘면서 자신감이 부쩍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양군은 이날 함께 온 같은 반 친구 최인호·고형호·방예민군 등과 함께 자세를 연습하고, 직접 10m 거리의 과녁을 향해 한발 한발 화살을 날리며 1시간45분 동안 게임 하듯 활쏘기를 즐겼다. 양군의 어머니 이은영(43)씨는 “수줍고 나약해서 걱정했던 승호가 밝고 진취적인 성격으로 바뀌고 있어 정말 기쁘다”며 “아이의 평생 운동으로 키워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활 쏘다 국궁 배우러 온 대학생 궁사
이웅희(20·사진3)씨 지난 14일 남산 석호정에서 만난 대학생 궁사 이웅희(일본 야마구치국립대 사회학과 2년 휴학)씨는 일본에서 먼저 활쏘기를 배운 뒤 국궁에 입문한 사례.
이씨는 국내 고교 졸업 뒤 일본에 건너가 유학생활을 하며 1년6개월간 일본 ‘궁도’를 배웠다. 초단 실력을 갖춘 유단자다. “활쏘기를 통해, 자취생활로 인해 흐트러지려는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고교 때부터 활을 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는 그는 “일본에 가보니 전국에 궁도장이 몇만개나 되는 걸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군 입대를 위해 휴학하고 한국에 돌아온 이씨가 ‘국궁’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당연해 보였다.
“우리 전통 국궁은 과연 어떤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씨는 입대일까지 한달 남짓 기간을 이용해 일주일에 두번 정도씩 석호정을 찾아 ‘궁도’와는 다른 ‘국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는 “일본 궁도가 활쏘기 자체보다는 정신수양과 형식을 강조하는 데 비해, 국궁은 정신적 요소와 레포츠적 요소를 함께 갖추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또 “형식 부분에서 아직 정돈되지 않아 자유롭고 다소 거칠어 보이는 국궁에 도전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직접 사대에서 145m 과녁을 향해 시위를 당겨본 이씨의 소감. “일본 과녁은 거리가 약 30m, 60m로 짧은 데 비해, 국궁은 활이 작으면서도 과녁은 멀어 맞히기가 어려웠어요. 국궁의 활은 일본 활에 비해 강하고 ‘살아있는 활’이란 느낌이 듭니다. 활 자체의 맛이 있다고나 할까요.”
오는 24일 논산훈련소로 입대한다는 이씨는 “전역 뒤 국궁에 좀더 깊이 들어가 보겠다”며 “활터 있는 부대가 두곳밖에 없다는데 군부대에도 활터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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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궁사 최춘자(73)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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