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화씨의 카페 ‘네프’. 카페 한켠이 작업실이다.
[매거진esc] 커버스토리
카페 창업자들이 부딪히는 현실의 벽…‘내가 하면 다를 거야’ 착각에서 벗어나길
카페 창업자들이 부딪히는 현실의 벽…‘내가 하면 다를 거야’ 착각에서 벗어나길
카페 주인을 꿈꾸는 이들은 생계형도 있지만 각박한 도시를 탈출하고 싶은 낭만파가 많다. 이들은 한잔의 커피와 달콤한 음악이 탈출을 돕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실은 차갑다.
조한웅(39)씨는 홍대 거리가 씁쓸하다. 2008년 초 카페 ‘리앤키키봉’을 홍대 거리에 열었다가 1년 반 뒤 닫았다. 잘나가는 프리랜서 카피라이터였던 조씨는 “글 쓰는 이들이 와서 눈치 안 보고 작업하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그 틈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음악 듣고”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출판사와 유동인구가 많은 홍대 거리로 가야 했다. 현실은 딴판이었다. 여유는 고사하고 신경의 끈을 잠시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여자친구와 오랜만에 춘천 여행을 갔을 때다. 무드가 한창 무르익는 저녁 8시께 아르바이트생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사장님 간판이 번개를 맞아 떨어졌어요.” 그는 먹던 밥을 내팽개치고 수습에 몰입했다. 지금 그는 여자친구가 없다.
부동산·인테리어 업자
덜컥 믿었다가
출발부터 삐걱 악연은 가게 터부터 시작됐다. 날 잡아 홍익대와 합정역 부근 부동산을 샅샅이 뒤졌지만 매물이 없었다. 해가 지고 배는 고팠다. 마지막 찾은 부동산중개업소에서 귀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신축건물이라서 권리금이 없어. 내일이면 없을 거야.” 딱 하루 조사하고 덜컥 계약했다. 보증금 5000만원, 월세 250만원. 골목 깊숙한 곳이라 다니는 이도 없어 비싼 편이었지만 홍대 거리라 이해했다. 인테리어 업자 선정도 신중하지 못했다. “업자는 인터넷에서 7만5000원에 이케아 의자를 구입해 제 견적서에 15만원이라고 적었어요. 그냥 제가 사면 되는데 몰랐어요.” 레코드가게에 달려가 무작정 점원에게 음반을 골라달라고 했다. 큰 비용을 들여 수입음반을 100장 넘게 샀다. “홍대 카페는 아무거나 틀면 안 될 거 같았어요.” 돈이 술술 샜다. “카페 주인은 목공, 전기시설, 커피, 와인, 음악을 다 알아야 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첫달부터 시작한 적자행진은 문 닫을 때까지 이어졌다. 첫달 800만원, 그 다음달 700만원, 300만원까지 적자행진을 하다가 폐업을 선언했다. 총 투자금은 1억원이 넘었다. 동업한 친구와 반씩 부담했지만 운영은 그의 몫이었다. 와인과 맥주 판매를 반전의 기회로 삼았다. “제가 더 마셨어요. 친구가 한 병 팔아주면 제가 한 병 샀죠. 한번은 술에 취해 가게 문 닫고 친구들에게 ‘마음껏 꺼내 먹어라’ 한 적도 있어요.” 다음날 아침 수북한 수입 맥주병 사이로 엄청난 마이너스 통장이 어른거렸다.
가볍게 생각했던
월세 15만원
차곡차곡 적자로 쌓여 흐린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쁜 카페로 소문나 주말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의 독자모임도 했다. 좌충우돌 카페 창업기를 책으로 묶어 냈다. 개정판에 폐업 사실을 추가했지만 그의 책 <낭만적 밥벌이>는 1만권 넘게 팔렸다. 결국 고장 난 수도꼭지를 고치는 등 자질구레한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문을 닫게 됐지만 실패의 경험은 소중했다. 요즘 그는 회사원과 글쟁이를 겸하고 있다. <독신남 이야기>, <깍두기 삼십대> 등을 출간했다. 더 늙으면 카페 창업에 다시 도전해볼 생각이란다. “그때 하면 잘할 것 같아요.” 영화스틸사진 전문가 허희재(34)씨도 낭만파다. 2010년 겨울을 잊을 수 없다. 영화 <오늘> 때문에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살다시피 했다. 촬영장 맞은편에는 10평도 안 되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그곳이 좋았다. 2011년 4월 그곳에서 한 장의 알림 글을 발견했다. ‘새 주인 구합니다.’ 권리금 300만원, 보증금 500만원, 월세 15만원. 테이블 3개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한번 술을 마셔도 15만원 넘게 돈을 쓰고, 스타벅스 커피를 매일 마셔도 15만원이 더 나온다”는 생각에 계약을 서둘렀다. “제 공간에서 아는 이와 커피 마시고, 편안하게 즐기는 게 소망이었죠.” ‘카페 적당’이 탄생했다. 그의 전략은 카페계의 ‘욕쟁이 할머니’였다. 손님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하는 주인이 콘셉트였다. 닫고 싶은 날 닫았다. 석 달 넘게 여행도 갔다. “오죽하면 문 사이로 ‘열어 달라’는 쪽지가 있었겠어요.” 월세 15만원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드라큘라처럼 어둑해지면 친구들이 몰려왔다. “내 집에 온 손님”에게 돈은 받지 않았다. ‘치맥’을 사다 바쳤다.
낮에는 멍하니 혼자였다. “화장실도 맘 편하게 갈 수 없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였다. 입금이 0원인 날이 쌓여갔다. 어쩌다 들어온 손님은 좁은 공간에서 개인 전화 받는 것조차 부담을 줬다. 훅 건드리면 쓰러질 정도였다. 우습게 생각했던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다. 허씨는 개업한 지 4개월 만에 처음 계산기를 두들겨 봤다. 500만원 적자였다. 오직 월세 15만원에 정신이 팔려 전기료, 수도료, 원두나 우유 등의 재료비, 고가 컵 구입비 등을 대차대조표에 넣지도 않았던 것이다. 본업인 사진을 찍어 충당하고 햄버거, 핫도그를 팔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혼자 하니깐 핫도그 만드는 사이에 커피 손님이 기다리다 가고, 점심시간 이후 손님이 몰리면 혼자 감당도 안 됐어요.” 팥빙수 해라, 메뉴 개발해라, 걱정하는 친구들의 조언도 스트레스였다. 올해 4월 지인에게 가게를 넘겼다. 그는 “어떤 일이든 쉽게 생각하고 막 덤벼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월세 15만원에 꽂혀 시작한 허씨의 카페 생활은 그에게 “확실한 경제관념”을 심어주었다.
카페 낭만파들이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건 아니다. 송명화(40)씨는 작년 7월에 서울 삼성동에 카페 ‘네프’를 열었다. 33㎡(10평) 크기의 작은 카페는 1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갔지만 지금까지도 적자다. 3개월마다 카페를 팔 생각이 없느냐는 컨설팅업자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유혹에 시달렸다. 그는 10여년간 광고홍보디자인회사를 운영했다. 카페, 독립출판, 문구브랜드 출시 등이 꿈이었다. 2010년 클라이언트들의 결제가 늦어지자 아예 회사를 정리하고 꿈을 실천했다. 네프는 그의 작업실과 1인출판사 사무실을 겸한다. 적자를 버텨내는 이유는 카페의 용도가 커피 판매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색이 카페 주인이었다. “처음엔 손님이 들어오는 게 무서웠어요. 커피에 대해 물어보면 뭐라고 설명해줘야 하나도 걱정이었죠.” 송씨는 커피, 베이킹 등을 공부했다. 바리스타 김진규씨에게 개인 교습도 받았다. 이제는 세세한 맛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그도 처음 카페를 문 열 때는 다른 이들처럼 “내가 하면 다를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는 걸 쓰디쓴 커피 맛처럼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초기에 고생하잖아요. 디자인회사도 그랬어요. 몇년은 더 버텨볼 생각입니다.” 최근 <김진규의 라떼아트>를 출판사 네프의 이름을 달고 출간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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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네프’의 실내.
월세 15만원
차곡차곡 적자로 쌓여 흐린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쁜 카페로 소문나 주말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의 독자모임도 했다. 좌충우돌 카페 창업기를 책으로 묶어 냈다. 개정판에 폐업 사실을 추가했지만 그의 책 <낭만적 밥벌이>는 1만권 넘게 팔렸다. 결국 고장 난 수도꼭지를 고치는 등 자질구레한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문을 닫게 됐지만 실패의 경험은 소중했다. 요즘 그는 회사원과 글쟁이를 겸하고 있다. <독신남 이야기>, <깍두기 삼십대> 등을 출간했다. 더 늙으면 카페 창업에 다시 도전해볼 생각이란다. “그때 하면 잘할 것 같아요.” 영화스틸사진 전문가 허희재(34)씨도 낭만파다. 2010년 겨울을 잊을 수 없다. 영화 <오늘> 때문에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살다시피 했다. 촬영장 맞은편에는 10평도 안 되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그곳이 좋았다. 2011년 4월 그곳에서 한 장의 알림 글을 발견했다. ‘새 주인 구합니다.’ 권리금 300만원, 보증금 500만원, 월세 15만원. 테이블 3개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한번 술을 마셔도 15만원 넘게 돈을 쓰고, 스타벅스 커피를 매일 마셔도 15만원이 더 나온다”는 생각에 계약을 서둘렀다. “제 공간에서 아는 이와 커피 마시고, 편안하게 즐기는 게 소망이었죠.” ‘카페 적당’이 탄생했다. 그의 전략은 카페계의 ‘욕쟁이 할머니’였다. 손님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하는 주인이 콘셉트였다. 닫고 싶은 날 닫았다. 석 달 넘게 여행도 갔다. “오죽하면 문 사이로 ‘열어 달라’는 쪽지가 있었겠어요.” 월세 15만원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드라큘라처럼 어둑해지면 친구들이 몰려왔다. “내 집에 온 손님”에게 돈은 받지 않았다. ‘치맥’을 사다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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