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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옷 입기, 용기가 필요 없을 때까지

등록 2013-11-20 21:03수정 2013-11-21 11:42

이상봉 디자이너와 최근 작품들. 전통 창살과 단청무늬에서 영감받은 것이다
이상봉 디자이너와 최근 작품들. 전통 창살과 단청무늬에서 영감받은 것이다
[매거진esc] 스타일
‘영원한 37살’ 디자이너 이상봉의 지치지 않는 열정
‘한글 패션’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이상봉씨의 진짜 나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이를 밝혀야 된다고 하면 인터뷰나 방송 출연을 고사하기도 한다. 나이를 물으면 “영원한 37살”이라고 답한다. 37살 때 스스로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변화’와 ‘비움’은 그의 영원한 화두다.

지난 14일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이씨를 만났다. 그는 트레이드마크인 수염을 기른 채 동그란 안경을 쓰고 검은색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매장에 들어섰다. 예정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인터뷰를 시작해서는 신들린 듯 거침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얼마 전에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를 다녀왔는데 그들에게 서울이 희망의 도시가 되고 있어요. 이제 우리 패션이 파리나 뉴욕을 쫓아갈 게 아니라 아시아의 힘과 에너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높아진 우리 위상에 맞게 목표가 재수정돼야 합니다.”

이씨는 지난해 초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연합회)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최근 몇년 동안 한류 바람을 타고 국내 패션디자이너들의 대외적인 인지도가 부쩍 올라갔지만 사실은 고가의 외국 글로벌 브랜드와 저가 에스피에이(SPA) 브랜드 틈바구니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던 게 현실이었다. “디자이너들과 단체들이 사분오열하고 각 조직은 배타적이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 올해 연합회와 서울시가 처음으로 공동주최한 서울패션위크는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틔운 희망의 물꼬로 인정받았다.

지난해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초대 회장 취임하며
사분오열 디자이너들 하나로 묶어내
앙드레김에 이어
문화전도사로 뛰고 싶다

“처음으로 긍정적인 기사들이 등장했어요. 50년 넘는 한국 패션디자인 역사상 디자이너들이 한목소리를 낸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디자이너들도 서로 잠시 경쟁을 내려놓고 후배는 선배들의 외로움을 인정하고 선배는 후배를 이해하면서 소통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솔직했다. 업계에 대한 쓴소리도 숨기지 않았다. 옳다고 생각하면 ‘사고’라도 치는 편이다. 1985년 서울 명동 제일백화점에 ‘이상봉 부티크’를 처음 열고 곧바로 프랑스행 비행기를 탔고, 이태 뒤인 1987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전시회에 첫 작품을 출품했다. “패션의 본고장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고 우리 문화를 그들에게 보여주려” 시작한 작업이 우리 문화를 접목하는 일이었다. 2003년 무속인 이해경씨를 무대에 올려 샤머니즘을 주제로 한 패션쇼를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열었다. 2005년 훈민정음 작업을 거쳐 2006년 프랑스 파리에서 한불수교 120주년 기념전에서 한글 패션을 처음 외국에 선보였다. 글씨 잘 쓰기로 이름 높은 소리꾼 장사익씨와 화가 임옥상씨가 보내준 자필 편지를 보면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2006년 파리 패션쇼에서 선보인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한글 티셔츠. 그때 패션쇼 사진을 다시 찍었다.
2006년 파리 패션쇼에서 선보인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한글 티셔츠. 그때 패션쇼 사진을 다시 찍었다.

“김소월, 윤동주, 김남주 시인 등의 아름다운 시를 붓글씨로 적어 원단을 만들었어요. 한글 때문에 제 인생이 크게 수정됐는데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죠. 촌스럽다, 욕먹는다, 한번 만들면 평생 발목 잡힌다고 안팎에서 반대해서 1년 넘게 갈등과 번민이 심했죠. 글씨를 무늬 삼아 조화롭게 배열해야 해 가히 뼈를 깎는 일입니다.”

한글 패션쇼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를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처음 공개했다. 2000년 초 파리에서 한글 패션을 본격적으로 선보일 즈음 한 국가정보원 직원이 연락을 해왔다는 것이다. 직원은 파리에 연수차 왔다가 쇼윈도에 걸린 한글 옷을 우연히 보고 도와주고 싶다며 만나길 청했다. 처음엔 “국가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가 진심에 감동받아 마음을 움직였다.

“정 그렇다면 파리에서 여는 한글 패션쇼에서 한글 티셔츠를 만들어 외국 기자들 자리에 놓아두자고 했죠. 한글로 된 아름다운 시를 새겨 티셔츠를 만든 뒤 기자석 의자 위에 두고 그 위에 ‘대한민국’이라고 한글로 써두었지요. 나라의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2006년 첫 한글 패션쇼를 연 뒤 파리 일간지 <르파리지앵>은 1면에 그의 옷을 소개했다. 그해 파리에서 연 ‘한글 패션 프로젝트’ 전시회에서는 유명 디자이너 45명의 한글 작품을 전시했다. 행남자기와 협업(컬래버레이션)해 윤동주 ‘서시’를 넣은 생활도자기는 영국 왕립박물관에 영구전시됐다. 김연아의 아이스쇼에서는 참가 선수 전원이 한글 티셔츠와 스카프를 걸쳤다. 그가 직접 붓으로 썼다는 최근작 ‘아리랑’ 멋글씨(캘리그래피)는 마치 물결이나 악보처럼 유려하고 리듬감 있다. 그는 “한과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아리랑 가락을 악보 삼아 붓으로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이패션’으로서 한글은 갈 길이 멀다”고 한다. 한글 티셔츠가 대중화된 반면, 근사하고 귀한 옷으로 한글 옷을 입는 것이 일반화되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아직 한글 옷을 입는다는 건 “용기내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해 이어 올해도 한글을 이용한 한글날 기념 패션쇼를 열었다. 고집도 보통 고집이 아니다. 유명 패션디자이너들이 기업에 들어가 자기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사례가 있고, 그 또한 아트디렉터로서 채용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외국에서 문화 전도사로서 구실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7년 파리 패션쇼에서 선보인 한글 붓글씨 의상.
2007년 파리 패션쇼에서 선보인 한글 붓글씨 의상.

“앙드레김 선생님에 이어 저 또한 문화 전파자로서 할 일이 있었어요. 지금까지 150번 넘게 외국에서 쇼를 했고 10년 이상 국가행사에 참여해왔어요. 예전에 외국인들은 한글이 한문인 줄 알고, 한국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지만 지금은 외국 언론들이 자발적으로 한류를 분석하려고 저를 인터뷰하러 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 해요.”

지금까지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물으니, 뜻밖에 “지금도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을 항상 가진다”고 했다. 20대 때, 연극학도였던 그는 첫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도망치듯 공연장을 나왔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그였기에 연극은 낭만이요 사치였던 셈이다. 그는 “늘 변화하고 도전해야 하는 것이 패션 일이기 때문에 ‘천직’이라 생각하지만, 어린 시절 연극 무대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한이 선명해 죽을 각오로 견뎌온 것도 있다”고 스스로 진단했다.

개인 작업과 함께 앞으로도 당분간은 디자이너연합회의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할 예정이다. 250여명의 회원을 올해 300명으로 만들고 내년 500명을 목표로 해 다수의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고, 유통과도 연결시킬 생각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단체들이 서로 편가르기 한다면 또 후퇴하고 정체할 수 있어요. 지금은 한국 패션계가 새 역사를 쓰고 있고, 비로소 시작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거예요. 오늘날 디자인 패션 산업은 자존심을 건 강국들의 싸움입니다. 어쩌면 우리 패션계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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