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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하나에 집착? 이것만으로도 요리할 게 너무 많죠”

등록 2014-02-05 20:25수정 2014-02-06 14:01

패션디자이너 임선옥. 트레이드마크인 선글라스를 쓴 채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 그는 인터뷰 내내 예술과 철학의 개념을 넘나들며 ‘까칠한 마력’을 선보였다.
패션디자이너 임선옥. 트레이드마크인 선글라스를 쓴 채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 그는 인터뷰 내내 예술과 철학의 개념을 넘나들며 ‘까칠한 마력’을 선보였다.
[매거진 esc] 스타일
소치올림픽 폐회식 문화행사 의상 맡은 디자이너 임선옥의 도전
지난달 말, 서울 종로구 부암동 ‘파츠파츠 임선옥’ 매장을 찾았다. 임선옥(52) 패션디자이너는 이번 러시아 소치겨울올림픽 폐회식에서 차기 대회 개최지 평창을 알리는 8분간의 문화행사 의상을 맡았다. 임 디자이너는 “준비기간이 짧아 어려웠지만 ‘엣지’ 있게 콘셉트를 구현하려고 애썼다”고 했다. 폐막식까지 행사 보안 때문에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지만, 우리나라 문화계 거장들이 두루 참여하는 이번 공연은 우아하고 고전적이면서도 미래 지향의 첨예한 문화 향연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96년 ‘이고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2003년 ‘임선옥’을 론칭한 그는 2010년 서울시 글로벌 패션브랜드 육성 프로젝트 ‘서울즈 10 소울’(SEOUL’s 10 SOUL)에 선발됐다. 2011년 ‘파츠파츠 임선옥’을 다시 설립하면서 몇년 동안 독창적인 디자인, 패턴, 생산방식의 삼박자를 갖춰나갔다. 끝단의 올이 풀리지 않는 신소재 ‘네오프렌’을 써서 정확한 재단으로 폐기물을 줄이는 ‘0% 웨이스트’를 지향하는 한편, 휘갑치기(오버로크) 대신 무봉제 접착 방식으로 ‘진보적 실용주의’라는 평가도 얻었다. 패션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구해온 그의 노력을 고려하면, 미래를 안내하는 이번 행사 의상 책임자로서 그가 선정된 건 무릎을 칠 만한 낙점이었던 셈이다.

소재의 낭비를 줄이려고
네오프렌 활용해
바느질 대신 붙이는 기법 활용
스마트 하우징처럼
스마트 의류도 고민할 시점


-원부자재 폐기물 0%를 지향하는데, 언제부터였나?

“2011년부터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의 개념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20년 넘게 디자이너로 살다 보니 매너리즘도 있었고, 패션이라는 업을 하면서 사회에 기여할 바는 없을까 고민했다. 기왕에 디자이너로서 작업을 한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재를 잘라내도 단면이 깨끗하고, 모든 부자재를 걷어내고 간결하고 심플하게 잘 재단해 놓으면 낭비도 없다.”

-옷이나 가방이 평면적이지만 세련돼 보인다.
파츠파츠의 네오프렌 소재 튜닉. 여백이 있고 편안하다. 앞판과 뒤판은 바느질 없이 붙였다.
파츠파츠의 네오프렌 소재 튜닉. 여백이 있고 편안하다. 앞판과 뒤판은 바느질 없이 붙였다.

“철저한 계산과 공식으로 디자인하는 것을 브랜드의 기본 철학으로 삼았다. 휘갑치기를 하지 않는 무봉제 접착 시스템은 우리나라 산업 인프라를 감안한 것이다. 봉제 인력은 노후화돼 있고, 대기업을 빼놓으면 그나마 노동력 확보도 대단히 어렵다. 디자인 경쟁력만으로는 혁신이 어려웠다. 재봉틀밖에 없는 봉재산업에 다른 활력을 주고 싶었다.”

-붙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냈나?

“과학자는 아니지만, 미싱이 다른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는데 왜 ‘한땀 한땀’ 박아야만 하나 생각했다. 입체모형을 찍어내는 스리디(3D) 산업이 얼마나 크게 발전했나. 패션에서도 고민해야 할 문제다. 바느질 대신 폴리에스터 93%, 우레탄 7% 소재를 써서 160도 이상 열을 가해 녹여 붙이는 것 자체가 특허다.”

-네오프렌 소재는 생각보다 고급스럽고 해외 반응도 좋았지만, 카피가 많았다.

“많은 이들이 갖다 썼다. 기존 잠수복 소재는 있었지만 네오프렌은 우리가 개척하고 개발한 것이다. 등산복 바지로 쓰이는 소재인데 고급화한 컬렉션 전체에서 이것을 쓰니 모두들 ‘이번에 실크 쓰셨네요’ 하더라. 싼 소재로 고급화도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외국 언론과 바이어들의 찬사를 받은 가방. 밀라노, 홍콩, 일본, 싱가포르 등 외국 16개 편집숍과 국내 유명 미술관 아트숍에서 판매되고 있다.
외국 언론과 바이어들의 찬사를 받은 가방. 밀라노, 홍콩, 일본, 싱가포르 등 외국 16개 편집숍과 국내 유명 미술관 아트숍에서 판매되고 있다.

-네오프렌 다음엔 어떤 소재를 쓸 건가?

“아직 ‘다음’은 없다. 외국 브랜드 ‘몽클레어’의 명성이 어제오늘 이뤄진 게 아니다. 수십년 동안 꾸준히 연구하며 경험을 쌓아올린 역사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옷이 나온 것 아니겠는가? 소재 하나에 집착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소재의 낭비를 줄이려고 단 하나의 소재만을 쓰고 있지만, 이것이 의외성이 있으면서 신비로움까지 자아내니 연구 가치가 충분하다. 신체의 핸디캡을 가려주기도 하고, 뜻밖의 우연성을 보여주는 대담한 면도 있다. 이것만으로도 요리할 게 너무나 많다. 많은 레시피로 별 볼일 없게 내놓는 것보다 하나의 소스로 패션의 여지없는 방향성을 만드는 게 목표다. 그때그때 유행(트렌드)이 아니라 긴 호흡, 더 강한 것을 가져가려는 것이다.”

-미래 패션에 대한 전망이 확고한 것 같다.

“패딩을 전국민이 다 입고 다닐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 모두가 입고 있지 않나? 앞으로 지속가능한 화두를 얘기하면서 유니폼처럼 기능을 강조하고 선이 단순화한 옷들이 나올 것이다. 앞으로는 옷에 반도체를 넣을 수도 있지 않겠나. 집에서 ‘스마트 하우징’이 적용되듯 ‘스마트 의류’ 연구가 계속되고 있고 옷 또한 패션성 때문에 더디더라도 그쪽으로 가지 않을까.”

-패션성과 경제적인 면을 겸비한 에스피에이(SPA) 브랜드는 어떻게 생각하나?

“매스컴에서는 옷을 사다가 몇번 입지 못하고 버리는 사회적 풍토를 만들어 다음 세대의 피폐함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충분히 못 입고 못 먹는 사람들이 풍족하지 않은 돈을 갖고 소비할 수 있는 즐거움을 에스피에이 산업이 담당했다. 그럼에도 나는 저렴한 옷 생산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인력을 동원하고 하청업체를 독촉하며 공급할 의지가 없고 그저 창의력을 가진 한 사람일 뿐이니까. 진화하는 소비자들도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목마름은 일단 해결했으니 불같은 유행을 끄고 난 ‘다음’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기업에 속해 있지 않은 개인 창작자로서 고민도 있겠다.

“한 사람의 크리에이터는 미래를 내다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미약한 존재다. 개인은 기업의 물량공세에 대항하거나 주류 또는 ‘절대 갑’과 견주기 어렵다. 강하게 미래를 준비하면서 10년 뒤 먹고살 ‘거리’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격이 계획적이고 정교한가?

“(웃음) 아니다. 충동성이 장점이다. 직관을 따르면서 작업하는 ‘한국 감성’은 세계 어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견줘도 부족함이 없다. 누군가 ‘이제 우리의 그런 점을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얘길 했는데, 큰 감동을 받았다. 직관을 갖고 작업하는 나를 돌이켜보며 평소엔 늘 나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거기서 위안받고 이를 장점으로 확신하려 한다.”

외국 언론과 바이어들의 찬사를 받은 가방. 밀라노, 홍콩, 일본, 싱가포르 등 외국 16개 편집숍과 국내 유명 미술관 아트숍에서 판매되고 있다.
외국 언론과 바이어들의 찬사를 받은 가방. 밀라노, 홍콩, 일본, 싱가포르 등 외국 16개 편집숍과 국내 유명 미술관 아트숍에서 판매되고 있다.

-좀 다른 얘길 해보자. 디자이너가 된 계기가 뭔가?

“1995년 가로수길 주차장에 숍을 내고, 노란 머리를 한 채 재봉틀을 돌리다가 선배 디자이너들에게 발탁됐다. 패션의 거리인 ‘강남 가로수길’ 원조인 셈이다.(웃음) 1998년 스파(SFAA) 신진디자이너 초청 서울컬렉션에서 데뷔했다. 디자이너 정구호가 데뷔 동기다. 절친한 안무가 안애순씨도 정구호씨가 소개해주었다.”

-영화 의상, 무용 의상 등 문화 예술 작업도 많이 했다.

“신진 때부터 ‘안티’ 성향이 있었고 ‘왜?’ 하는 물음도 항상 있었다. 젊기도 했으려니와, 짧은 패션 리듬도 그랬고, 그 반면 패션을 문화로 인정하지 않는 풍토 사이에서 환멸이 없지 않았다. 주류 언론이 디자이너를 마치 텍스트가 없는 인간처럼, ‘그가 무슨 쇼를 했다’로 일컫는 게 사실은 전부가 아니다. 인문학적 배경까진 아닐지라도 철학과 아티스트로서 걸어온 길을 조명할 수도 있지 않나. 무엇보다 패션이 사치와 소비의 일부분으로만 취급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고, 예술 장르를 개척하고 패션의 영역을 넓히는 데 한몫을 하려고 했다.”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남편 장석모씨(섬유산업신문 발행인)와 서로 존경하는 파트너십이 소문났다.

“이런 얘기 싫어할 텐데…(웃음). 그는 나에게 언제나 ‘장사’가 아닌 ‘예술’을 하라고 한다. 나의 철학에 열렬한 지지를 해주면서 남이 아닌 나의 길을 가라고 하면서 경외심을 표현해준다. 늘 미안하고 고맙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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