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성 전문가 이경선 두원공대 외래교수(왼쪽)의 도움을 받아 발성법의 기초를 배워봤다. 고개를 사용해 천천히 입을 열고 닫는 모습.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올바른 발성법 배우기
발성 전문가에게 배워보는 올바른 발성법과 이를 돕는 바른 호흡법
발성 전문가에게 배워보는 올바른 발성법과 이를 돕는 바른 호흡법
배우 출신의 이경선(43, 홍익대·두원공대 외래교수)씨는 15년 전부터 배우와 방송인들에게 발성을 가르쳐왔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 건너온 우리 연극 발성 기법의 한계를 절감하고 4년 전, 유학을 떠났다.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런던 ‘센트럴 스쿨 오브 스피치 앤 드라마’ 대학원에서 그들이 쌓아올린 정교한 화술과 발성학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 보듯 영국의 발성학은 오랜 역사가 있고, 배우뿐 아니라 일반인과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두루 활용된다”고 했다. ‘말’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영국 영어’에 대한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에 견주면 우리나라는 아직 걸음마 단계로 보인다. 그렇다면 학술적으로 체계 잡힌 발성법은 어떨까? 이경선씨에게 부탁해 신문사 스튜디오에서 기초를 한번 배워보기로 했다.
“방금, 입 벌리는 것을 무서워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사투리 때문에 어미도 지나치게 내려가고요.”
김춘수의 시 ‘꽃’을 읽던 중 잇단 지적이 나왔다. 기자가 입 열기를 두려워하다니! 학생 때는 ‘말하기 대회’ 수상도 여러번 했건만. 내심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고 보니 나이 들수록 말수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발언권’을 얻지 못하는 건 ‘성원권’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문화에서 성원권이 없으니, 말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을 수밖에. 발성은 심리와 깊게 연관돼 있다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질문. 자신의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남녀불문 후보들이 웅얼웅얼하는 발음이나 사투리, 적절하지 못한 표현으로 지적받지 않았던가?
그제야 남들도 다를 바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신체 훈련을 거듭 받았다. 발성이 좋지 않은 건 온몸이 긴장돼 있고 ‘기름칠’이 잘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리에 누워 복식호흡을 하고, 혀로 양 볼을 밀고, 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워 혀를 내밀어 양쪽을 밀어주고, 눈 마사지를 했다. “두상의 모든 구멍에서 소리가 나간다고 생각하라”는 말을 듣고 소리를 뱉으니 눈과 코가 공명되는 것 같기도 했다. 급기야는 동물처럼 엎드려 혀끝을 아래 치아에 괸 채 빼물고 애국가를 읊어보라고 했다. 혀를 깨물고 “등애무과 배뚜사니…” 하고 소리 지르고 있자니 고문이 따로 없었다. 기침이 나고, 입안엔 침이 잔뜩 고였다. 그런데 웬걸. 발음이 한결 수월해졌다.
호흡은 발성의 기본이다. 사람들은 보통 가슴으로 하는 ‘흉식호흡’을 많이 한다. 아기들은 저절로 배가 불룩불룩하는 복식호흡을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감정과 생각이 복잡해지면서 호흡이 위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호흡은 폐의 작용이지만, 폐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해 갈비뼈와 횡격막이 간여해야 한다. 인간의 갈비뼈는 12쌍으로, 모두 24개다. 흉식호흡은 보통 위로부터 4번째 쌍까지 팽창하는데 복식호흡으로 12쌍의 뼈를 다 팽창시킬 수 있고, 그러면 더 깊은 숨을 쉴 수 있다. 이씨의 지도를 받아 앞쪽 갈비뼈의 가장 아랫부분에 양손을 올리고 갈비뼈를 부풀리겠다는 생각으로 숨을 쉬니 깊은 숨이 저절로 찾아왔다. 손으로 양쪽 갈비뼈의 움직임도 느낄 수 있었다. 배에 힘을 줬다 빼는 단전호흡보다 한결 편안한 듯도 했다.
호흡은 심리와도 관련이 깊다. 강남세브란스 이비인후과 후두음성의학연구소 남도현 교수는 “우울감이 깊은 사람은 복식호흡을 하기 어렵고, 배로 깊이 숨쉬는 연습을 하면 우울감이 잡히면서 좋은 목소리까지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음성은 건강상태의 신호등 구실을 하는 셈이다.
척추와 자세도 목소리에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목은 공명을 만들어내는 기관으로서 중요하다. 남 교수는 “게임이나 오랜 컴퓨터 이용 때문에 거북목이 되면 목소리도 나빠지고 두통까지 올 수 있다. 귀의 위치가 어깨선과 일치하도록 자세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의 목소리는 숨을 천천히 내보낼 때 성대를 진동시키면서 공명을 통해 나가는 것인데, 이때 후두의 위치가 공명의 정도를 좌우한다. 남 교수는 “경추 7번에 있어야 하는 후두가 3~4번까지 올라가면 울림 없는 소리가 만들어지고, 후두가 내려오면 기도에서 긴 공명이 가능해 깊이있는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했다. 목에 핏발이 서도록 턱을 빼면서 목을 죄고 노래하는 사람의 후두는 자연스럽게 올라가는데, 성대를 다칠 확률도 함께 높아진다. 실용음악을 하는 학생들이 이처럼 목을 다쳐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의 지도에 따라 바른 호흡과 공명법을 배우면 회복은 물론, 실력을 증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모든 말을 복식호흡만으로 할 수는 없으니, 또렷한 발음만 챙겨도 좀더 바르게 말할 수 있다. 발음을 할 때는 자음보다 모음에 먼저 신경쓰도록 한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모음 사각도’를 보면서 모음들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ㅣ’는 입과 혀의 앞부분, ‘ㅡ’와 ‘ㅜ’는 입과 혀의 안쪽 부분에서 나는 소리들이다. 중요한 건 이중모음이다. 이를 게으르게 발음하면 아이같이 혀 짧은 발음이 된다. 한국방송 정용실 아나운서는 “모음 두개가 한 음절을 이루는 이중모음은 소리의 처음과 끝이 달라지는 모음이다. 이 발음을 빠르게,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어야 모음 발음이 완결된다”고 말했다. 그밖에도 인터넷으로 ‘표준발음 변환기’를 찾아 원고의 정확한 발음을 확인하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말하기’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듣기’다. 정 아나운서는 “외국어처럼 처음 들은 발음이 자신의 발음으로 굳어진다. 언어에도 높낮이와 리듬이라는 요소가 있어 이 두가지가 귀에 익어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방송 제1라디오 정오 종합뉴스와 7시 저녁 종합뉴스는 베테랑 아나운서를 주로 배치하기 때문에 좋은 음성과 발음의 모범이 된다. 매일 꾸준히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자신의 발음을 녹음해 서로 비교하는 것도 괜찮다. 정 아나운서는 “목소리도 얼굴처럼 남들과 다 다른 것이고, 억지로 만들 수는 없다. 자신의 것을 받아들이되, 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름다운 우리말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다. 또박또박 큰 소리로 매일 연습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눈 앞쪽과 눈두덩을 눌러가면서 지압하면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좋은 공명을 하면 정수리의 진동이 느껴진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가부좌로 앉아 상체를 약간 숙이고 혀를 길게 뺐다가 아랫니 밑에 혀를 끼우는 등 혀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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