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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있게 신뢰감있게, 내 목소리 성형법

등록 2014-02-19 20:15수정 2014-02-20 14:32

윗줄 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연극인 박정자, 배우 한석규, 티베트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 가수 성시경, 배우 김미숙, 배우 이병헌, 아나운서 손석희. 발성이나 발음이 좋다고 소문난 이들은 공통적으로 약간 저음에 소리의 울림이 충분하다.<한겨레> 자료사진, 연합뉴스
윗줄 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연극인 박정자, 배우 한석규, 티베트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 가수 성시경, 배우 김미숙, 배우 이병헌, 아나운서 손석희. 발성이나 발음이 좋다고 소문난 이들은 공통적으로 약간 저음에 소리의 울림이 충분하다.<한겨레> 자료사진, 연합뉴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발성교실 찾는 사람들
노홍철의 혀 짧은 소리는 웃음을 주지만 호감을 주지는 않는다. 반면 이병헌의 광고 내레이션이나 손석희의 뉴스 진행은
말의 내용에 신뢰감을 더한다. 말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목소리는 경쟁력이다. 세련되고 깊이있는 목소리 내기를 배워봤다.
목소리는 얼굴의 관상, 손의 수상보다 더 자세히 그 사람을 드러낸다고 한다.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사자후는 고요하면서 엄격하고 부드럽다. 그의 설법을 들으러 온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낮고 멀리 울려 퍼지는 웅장한 목소리 자체만으로도 큰 감동을 느낀다. 사람의 목소리에는 표현하기 어려운 에너지와 파장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발성 전문가들은 배우 이병헌·수애·김미숙, 가수 성시경, 아나운서 손석희씨의 목소리를 좋은 발성으로 꼽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엔엔>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윈스턴 처칠 등 외국의 명연설가나 언론인도 ‘말하기의 모범’으로 손꼽히는 사람들이다. 남녀 모두 약간 저음인데다 울림이 충분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웅변의 시대가 가고, 발성의 시대가 왔다. ‘소통’이 업무능력 가운데 하나로 중요하게 거론되는 까닭에 ‘목소리도 경쟁력’이라며 화술을 넘어 발성에까지 신경을 쓰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난 것이다. 얼굴은 성형이나 화장을 해서 수정할 수 있다지만, 타고난 목소리도 과연 바꿀 수 있을까.

“누구나 목소리를 ‘성형’할 수 있다. 성소수자인 트랜스젠더들도 목소리를 바꾸려고 훈련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많다. 굵은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도 성대를 짧게 쓰는 훈련을 하면 좀더 높은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반대로 호흡을 쓰는 발성을 연습하면 타고난 것보다 더 낮은 목소리를 내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 깐딴떼 목소리학교’ 임준규 이사장의 말이다. 지난 14일 저녁 목소리를 바꾸려는 사람들의 훈련장인 서울 강남의 한 스피치 학원을 찾았다. 목소리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뜻밖에 10대부터 50대까지 폭넓었다. ‘더블유 스피치커뮤니케이션’ 고은하 교육실장은 “목소리가 이상하다며 놀림받는 초등학생, 변성기 청소년, 발표가 많은 대학생, 발표수업에 공포감을 느끼는 유학생들도 방학 때마다 귀국해서 음성 훈련과 발표 연습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커뮤니케이션 문제 때문에 승진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회사원, 말할 기회가 없어 우울함을 호소하는 주부들까지 여러 동기로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은 ‘말하기’를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클라이언트나 환자에게 신뢰감을 주려는 변호사나 의사, 양악 수술을 하거나 교정기를 착용한 사람들도 다수 학원을 찾는다고 한다.

강호동이나 스타강사 김미경처럼
크고 강한 목소리가
호평받던 시대는 가고
이제 부드럽고 신뢰감을 주는
세련된 목소리가 새 기준이 됐다


고 실장은 “카리스마가 있는 목소리를 선호하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섬세하면서 교양 있게 들리는 목소리를 좋아한다. 남성들도 너무 큰 목소리는 시끄럽다며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방송인 강호동씨나 스타강사 김미경씨처럼 남녀 모두 크고 강한 목소리가 호평받던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부드럽고도 신뢰감을 주는 세련된 목소리가 새로운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강의를 참관하기로 했다. 20~30대 여성 5명이 듣고 있는 ‘목소리 교실’이었다. 강의를 듣는 이수영(27·직장인)씨는 “전문 프레젠터로 입사한 뒤 회사의 지원을 받아 강의를 듣는다. 10분에 60장이나 되는 정보를 프레젠테이션해야 하는데 너무 빠르고 남자 같은 말투 때문에 고민했다. 경쟁사에 아나운서가 많아서 좀더 정확한 발음과 뚜렷한 소리로 전달력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나머지는 쇼호스트를 준비하는 20대, 대학생 등이었다.

수강생들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가다듬는 훈련에 들어갔다. 강사 김지희(아나운서 겸 보이스스피치 컨설턴트)씨는 “상체의 긴장이 풀려야 소리가 제대로 난다”며 교실 한쪽 벽에 붙은 거울을 보고 스트레칭을 안내했다. 목을 천천히 돌리고, 손바닥으로 턱 근육을 문지르는 등 목소리를 내는 조음기관의 긴장을 풀라고 했다.

“아침에 발성 연습을 하는 게 좋아요. 혀로 양쪽 볼을 밀고 혀끝으로 원을 그리면서 구석구석 근육을 풀어야 발음이 수월해요.”

혀를 푸는 것은 좋은 소리와 발음의 첫걸음이다. 이어 복식호흡을 시작했다. 단전에 손을 얹어 배를 볼록하게 만들고, 배가 등에 붙을 정도로 입으로 숨을 천천히 길게 내쉰 뒤 코로 공기를 훅 들이마셨다. 단전호흡과 거의 같은 이치다. 발성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뱃심을 이용해 단전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를 ‘좋은 목소리’로 일컫는데, 옛 선사나 기독교 교회의 목사들이 낮고 깊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까닭도 신체 전체를 이용해서 울림통을 크게 만든 뒤 깊은 소리를 내기 때문이리라 짐작된다.

“하품할 때처럼 열린 소리가 나야 합니다. 턱을 살짝 당겨주세요. 항상 소리로 무지개를 만드는 느낌으로 하세요. 폐에 들어간 공기가 성대를 울리는 것인 만큼 목이 많이 열려야 공기가 잘 나옵니다. 하아~!”

김 강사가 예를 보여주었다. 마른 체구를 가진 여성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리 가면서도 강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목소리 하나 내는 데도 보통 정성을 기울이는 게 아니라, 학생들은 “밥을 많이 먹었는데도 기운이 달린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 같은 목소리 때문에 고민이라는 한 학생은 “더 낮은 목소리를 내보라”는 지적을 거듭 받았다. 옆 교실에선 남자들이 모여 비슷한 진도의 호흡과 발성 훈련을 하고 있었다.

비음을 섞어 내는 앵앵거리는 ‘아기 목소리’와 발음은 20~30대 남녀 젊은이들의 새로운 고민거리다.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처럼 ‘안돼요’를 ‘앙대요’라고 하거나 ‘알았어’를 ‘알떠’로, ‘했어요’를 ‘해떠요’라고 하는 발음 문제도 많다. 실제 혀가 짧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이중모음을 단모음으로 발음하거나 자음을 뭉개버리고 혀 짧은 소리를 내는 것이 습관으로 굳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후두음성의학연구소 남도현 교수는 “원래 목소리는 성인 목소리지만 예쁘게 아기처럼 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을 ‘위장발화’라고 한다. 발성은 습관이 중요하기 때문에 호흡 훈련을 배우고 자세를 교정한 뒤 후두의 위치를 낮추도록 하면 단시간에 좋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책 <혼자 공부해서 아나운서 되기>(나무생각)를 펴낸 아나운서 정용실씨는 “방송인이 되려는 젊은이들 가운데 혀 짧은 소리나 높은 톤을 내는 사람이 많은데, 어른으로 완전히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말은 심리와 연결돼 있다. 특히 부모한테서 분리되지 못한 사람들이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를 많이 낸다. 엄마들도 심리적으로 대학만 가면, 졸업하면, 결혼하면 등으로 자녀의 독립을 미루고만 있으니 문제다. 단박에 깨닫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정용실)

셰익스피어 연극에서 출발한 발성학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이 분야를 공부하고 돌아온 발성 전문가 이경선(배우 겸 홍익대·두원공대 방송연예전공 외래교수)씨는 말하려는 내용에서 원인을 찾는다. “말은 결국 자기 생각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입을 여는 데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뜻밖에 많다. 바쁜 한국인들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별로 갖지 못한다. ‘말하기’는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꺼내는 것이다. 말을 못하는 건 자신감의 문제도 있지만 결국 말의 내용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주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줄 모르거나, 나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때도 말하기가 어렵다.”(이경선)

이씨는 “매일 혼자 자신의 이야기나 일정 주제에 대해 말하는 시간을 5~10분 정도 가져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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