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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 하루키, 압구정…“그때 우린 모두 중2병이었잖아”

등록 2015-02-04 20:41수정 2015-02-09 22:58

홍대앞 클럽 ‘드럭’에서 만난 팝아티스트 강영민, 음악인 이아립, 영화감독 조원희(왼쪽부터).
홍대앞 클럽 ‘드럭’에서 만난 팝아티스트 강영민, 음악인 이아립, 영화감독 조원희(왼쪽부터).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90년대 문화코드
영화감독 조원희, 뮤지션 이아립, 팝아티스트 강영민과 함께 떠난 90년대 문화 성지 순례기
그땐 우리 중 누구도 티브이를 보지 않았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토토즐) 같은 프로그램은 특히나 더. 신촌에서, 홍대 앞에서, 압구정동에서 각자 자기만의 노래를 만들고 부르느라 바빴다. 90년대 문화의 인기가 노래로 번졌다. <무한도전> 특집방송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 덕에 90년대 댄스음악이 울려 퍼지는 거리에서 팝아티스트 강영민(43), 음악인 이아립(41), 영화감독 조원희(44) 등 ‘90년대 아이들’을 만났다. 진짜 90년대 음악을 만들어내고 간직하고 있는 음악 성지들을 찾아다니며 90년대 문화 풍경을 이야기하던 그날은 하필 토요일이었다.

하루키 소설 때문에
다들 버드와이저를 찾았지
기형도 시집 기본 장착에
<리뷰> <키노>도
신세대 소장 목록 1순위

취향의 공화국, 90년대 홍대 앞

90년대 음악 여행은 서울 신촌 향음악사에서 출발한다. 향음악사 주인은 “1995~96년엔 신촌에만 음반 매장이 7개가 있었고, 전국적으로 5000개의 음반점이 있었으며 모든 음악은 음반으로 유통될 때였다”고 회고한다. 음악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주인은 지금도 “매장을 찾는 대부분의 손님은 이전부터 음원이 아닌 음반에 익숙한 30·40대 이상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90년대 음반매장으론 향음악사와 홍대 앞 퍼플레코드 정도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수입 음반이나 90년대 후반 등장한 한국 인디 음악인들의 음반을 구할 수 있는 곳이다.

90년대 쏟아져 나온 문화비평지와 비평서들.(최철웅 제공)
90년대 쏟아져 나온 문화비평지와 비평서들.(최철웅 제공)
90년대 중반 홍대 앞 인디문화를 만들어낸 곳은 공연장이었다. 곰팡이, 상수도, 드럭, 언더그라운드 등은 인디밴드를 만들고 클럽 문화를 키운 발전소였다. 드럭 조성욱 대표는 드럭과 함께 지금도 남아 있는 90년대 음악공간으로는 홍대 앞 프리버드, 신촌 롤링스톤즈 정도를 꼽는다. 인디밴드들도 요즘 좀체 홍대 앞에서 보기 어렵다고 했다. 2월7일 드럭에서 다시 공연 ‘넛츠 리턴’을 열 예정인 크라잉넛만이 여전했다. “스무살, 처음 신분증이 생겼던 날 드럭에 갔다가 지갑과 함께 이걸 잃어버렸어요. 그때부터 이름표를 잃어버렸던 것 같아요.” 음악인 이아립이 ‘홍대 여신’으로 불리기도 전의 일이다. ‘90년대산’인 이들은 같은 공간에 대한 추억이 유독 많다. 강영민 작가가 클럽 스팽글에서 허클베리핀의 데뷔 공연을 보고 경악하던 때쯤 모던록 밴드 스웨터에서 활동하던 이아립씨와 카사블랑카라는 원맨 밴드를 만들었던 조원희 감독은 클럽 마스터플랜의 무대에서 마주친 일이 있었다.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서 방송한 터보의 무대.(문화방송 제공)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서 방송한 터보의 무대.(문화방송 제공)
“90년대 문화를 80년대에 대한 반문화라고 하잖아요. 80년대는 남성적인 메탈의 시대였으니까 90년대는 여성적인 모던록으로 출발했던 거죠.”(강영민) 그때 모던록 세대들은 피시통신으로 모였다. 이아립씨는 피시통신의 대표적인 동아리인 모소모(모던록 소모임)에서 활동했고, 모소모를 접한 조원희 감독은 헤비메탈이 지배하던 도시 부산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단다. “93년 서울엔 부산에 없는 맥주가 많았다. 홍대 앞 블루스하우스에선 밀러를 한병에 1900원에 팔았다. 당시 힙스터, 아니 날라리들은 밀러만 마셨다.”(조원희) “하루키 소설 때문에 다들 버드와이저와 피스타치오를 찾았지.”(강영민) “당시 집에 기형도 시집 <입속의 검은 잎> 한권 없는 사람 없었어. 그래도 남과 다르다는 생각으로 살았지, 남들 같다고 생각했으면 죽어버렸을 거야.”(이아립) “그땐 모두가 중2병이었어.”(강영민) “90년대 <오늘예감> <리뷰> <이프> 같은 문화잡지들이 쏟아져 나왔잖아. 그땐 거의 모든 글 쓰는 애들이 남과 다른 글쓰기를 위해 썼어. 그때 나도 <리뷰>로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기사체 단문으로부터 벗어나겠다고 무조건 길게 썼어. 영화잡지 <키노>를 라이벌로 느꼈지. 지금은 그렇게 쓰라고 해도 못 쓰지.”(조원희)

취향이 중요했던 세대들은 ‘90년대 문화의 조물주’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 브랜드 맥주를 마셨다. 또 어디에 앉아 있느냐가 중요했다. 90년대 초반엔 홍대 스테레오파일, 압구정 원스 인 어 블루문 등의 음악카페에서 재즈를, 중반엔 홍대 백스테이지 같은 곳에서 모던록 계열 뮤직비디오를 틀기 시작했다. 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 노이즈가든 등 인디밴드들이 홍대 깃발을 날렸던 시절, 90년대의 또다른 총아 ‘압구정 오렌지족’이 생겨났다.

압구정 올드타운으로 불리는 곳에 있는 술집 한잔의 추억.
압구정 올드타운으로 불리는 곳에 있는 술집 한잔의 추억.

오렌지족이 활보하던 압구정

90년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두번째 편은 압구정이다. 당시 홍대 앞이 라이브였다면 압구정은 기계화된 첨단 음악이 지배했다. 압구정 카페들은 일본 록그룹 엑스재팬의 공연 실황을 레이저 디스크로 틀거나 값비싼 오디오를 갖추고 서구 음악 수입상 노릇을 했다.

90년대 세련됨의 상징이던 강남구 신사동 골목에는 뜻밖에 90년대 술집들이 아직 그대로 줄지어 있었다. 토요일 밤 가로수길이 붐비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압구정 현대백화점 건너편 뒷길에는 ‘아라도’ ‘방추’ ‘길손’ 등 80년대 말 문을 연 일본식 술집과 ‘한잔의 추억’ 같은 값싼 맥줏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 90년대 소비문화를 싹틔웠지만 그 뒤 신사동 가로수길의 유행에 밀려 주로 옛 명성을 아는 40대들이 이 길을 찾는다.

“90년대를 생각하면 현실 같지가 않아. 전생이야, 전생.”(강영민) “우리는 유령들이지. 마흔이 될 거라는 생각을 누가 했겠어.”(이아립) 1993년 나온 현실문화연구의 책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는 “우리에게 18세에 계속 나이를 멈추게 할 수 있는 비결을 나누어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신세대가 아닌가?”라는 ‘중2병 돋는’ 말로 끝을 맺었다. 그때의 신세대들이 마흔이 넘어서 토토가를 본다.

“90년대를 경과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문화적 우월감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토토가를 보면서 우리는 80년대처럼 촌스럽지도 않았고 지금 세대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했다는 말을 트위터에서 마음껏 나누더라. 나조차도 토토가에 나온 노래를 단 한번도 좋아한 적이 없는데도 방송을 보면서 울먹울먹한 느낌이 있었어. 그렇게도 혐오하던 음악인데, 내가 이 음악이 나올 때 무얼 하고 있었는지 90년대의 내가 영화처럼 스쳐가더군. 90년대가 정말 재미없었고 그 시절이 지나가서 참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재미있는 이유는, 지금이 너무 재미가 없기 때문 아닐까?”(조원희) “그때가 내 인생의 최악인 줄 알았는데, 갈수록 더 최악이지. 우리가 미래에 대한 허황된 꿈 대신 과거에 대한 허황된 추억에 빠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 나는 원래 김현철, 유재하, 들국화 이런 사람들을 좋아했어. 그런데 토토가에서 이본 언니 보면서 조금 울었어. 내가 저 사람들을 그리워했었나? 옷장을 열었다가 옛날에 입었던 스노진 청바지 보는 그런 느낌?”(이아립) “나보고 토토가를 만들라면 90년대 주제가로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을 꼽겠어. 향기로운 칵테일, 한편의 시가 있는 전시회장,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노래 한편에 90년대의 취향이 다 들어 있잖아. 게다가 ‘이 세상은 나로 인해 아름다운데’ 그러잖아. 이건 완벽한 90년대 중2병 환자의 시야.”(강영민) “아니야, 90년대 주제가는 신해철의 ‘재즈카페’지. 위스키, 브랜디, 블루진, 하이힐, 콜라, 피자, 밸런타인데이…. 하지만 우리 노래는 누굴 위한 걸까?”(조원희)

1991년 서울 신촌에 문을 연 향음악사.
1991년 서울 신촌에 문을 연 향음악사.
“<건축학개론> <응답하라> 시리즈, <토토가>까지 왜 90년대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는가 궁금해. 마흔이 넘으면 어른이잖아. 엑스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서 더 이상 누구에게 묻어갈 수도 없고 사회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 주체적인 책임감 같은 걸 피하고 싶은 욕망 아닐까? 요즘 동료 작가들 이야기 들으면 어떻게 땅에 발 딛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대. 걸음걸이까지 휘청거리는 느낌, 다들 그런 느낌 가진 적 없어?”(강영민) “모든 매체에서 삶에 대한 열정 이런 걸 강요하는데 이건 20대의 슬로건이잖아. 30·40대는 슬로건도 없단 말이야. 20대처럼 살기 위해 성형하고 다이어트 하는 것밖엔 길이 없어. 그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필요하긴 하지.”(이아립) “90년대만 해도 허술함 자체가 매력이었잖아. 그게 간지였지. 언니네 이발관 1집 음악을 들어보면 유쾌하지만 뭔가 비어 있지. 그런데 완벽한 공산품 가수들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한치의 허술함을 관용하질 않아. 허술하면 열등한 거니까 살기 힘들지.”(조원희)

홍대 앞에서 인디밴드 공연이 드물어지고 복고풍 술집만 번성한 것처럼 압구정 옛날 로데오거리에는 음악이 아예 끊겨 있었다. 대신 몇 블록 떨어진 강남역 근처에 새로 생긴 클럽 ‘토토가요’에서는 엑스세대 노래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소문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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