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이우성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기상캐스터 이세라.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이 날씨에 저런 복장이 어울리나
태풍이 불고 있는데
시스루를 꼭 입어야 하나?” 요즘 세라의 관심사는 영화다. ‘날요’를 모셔놓고 영화 얘기를 하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서 너는 영화에 대해 칼럼을 쓰겠다는 거야?” “네!” 방송하던 애가 칼럼이라니. “생각을 해봤는데, 영화가 시대를 가장 잘 반영하는 매체 같아요. 영화에 대해 쓰면 나도 세상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 같아. 나는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기상캐스터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예요.” 나는 이렇게 말하는 세라의 언어, 그녀의 의지가 좋다. 세라는 남자친구가 없다. 이상형은 있다. 물론 나는 아니다. 등이 넓고, 뭐 딱히 나 정도의 미남은 아니더라도, 세라가 뭐라고 말하든 허허 웃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요즘 그런 남자가 있어?” 지금 네가 보고 있잖아, 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나는 바람둥이니까. 등도 좁고. “세라야, 그런데 기상캐스터들은 옷을 왜 다 그렇게 섹시하게 입어?” 부끄러워하면서 물었다. “오빠, 우리 회사는 안 그래요. 공영방송이잖아요. 야하게 입으면 경고 받아요. 그리고 의상은 다 협찬이에요. 우리 마음대로 입을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다시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쟤가 섹시 콘셉트로 떠보려고 하는구나, 생각이 드는 기상캐스터도 있지 않아?” “그런 것까지는 내가 말하기가 좀 그렇고, 이런 경우는 있지. 이 날씨에 저런 복장이 어울리나? 태풍이 불고 있는데 시스루를 꼭 입어야 하나?” 물론 나는 시스루는 어떤 경우라도 옳은 거라고 말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일수록 시스루한 의상으로 시청자들의 우울한 기분을 날려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세라는 웃었다. “기상캐스터의 복장이라는 게 날씨의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어요. 정보 전달력이 가장 중요한 직업이잖아. 우리가 라디오방송을 하는 건 아니니까 눈에 보이는 것에도 신경을 쓰긴 써야겠죠. 그리고 예쁜 옷을 입으면 누구나 기분 좋죠.” 세라는 평일엔 한국방송 4시 뉴스와 7시 뉴스에서 날씨를 알려주고, 주말엔 9시 뉴스에서 날씨를 알려준다. 9시 뉴스는 녹화고, 나머지는 생방송이다. 보통 두세 시간 전에 출근해서 메이크업을 하고, 의상을 입고, 중간중간 대본을 쓴다. 직접 쓴다. 누가 써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다.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사이트가 있어요. 아이디를 받은 사람들만 접속할 수 있어요. 그걸 보고 기사 방향을 정하고, 쓰는 거죠.” 시도 쓰고 소설도 썼던 세라니까, 날씨 기사도 당연히 잘 쓰겠지. “그런데 오빠, 쓸 수 있는 단어가 정해져 있어서 아쉬워요. 결국 날씨에 관한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비슷한 것도 조금이라도 다르게 적어보려고 해요. 어떻게 더 정확하고, 알기 쉽게,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예요.” 세라가 갔다. 갑자기 우아한 표정을 지으며 영 어울리지 않는 꼿꼿한 걸음으로 카페를 가로질러 나갔다. 나는 혼자 남아 이 인터뷰를 적는다. ‘날요’가 사라진 자리는 겨울의 빈자리 같았다. “오빠, 주말 날씨 장난 아니야. 나들이 가기에 딱!” 세라가 한 말이 계속 생각났다. 봄이 오는가. “하지만 한두 차례의 꽃샘추위가 아직 남아 있어요.” 스마트폰을 꺼냈다. 친한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고마워. 네 덕에 날요를 만났어’라고 적고 지웠다. 부끄러워서. 대신 여기 적는다. 이우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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