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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예술 전시야? 목욕 제품 판매야?

등록 2018-03-22 10:05수정 2018-03-23 13:58

‘스파 앤 뷰티’(SPA & BEAUTY) 전시회. 사진 이우성 제공
‘스파 앤 뷰티’(SPA & BEAUTY) 전시회. 사진 이우성 제공

많은 사람들이 문학도 미술도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나는 시를 쓰는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어차피 또 뭔 말인지 모른다고 할 텐데, 이걸 이렇게 써야 하나?’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안 쓰려고 노력한다. ‘이렇게’를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려운데, 아무튼 ‘이렇게’라는 방식 혹은 태도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작가 역시 시대의 일부다. 동시대는 복잡하고 애매하고 부도덕하다. 이러한 시대의 영향을 받아 ‘이렇게’라는 게 생긴다. 작가는 ‘이렇게’라는 방식을 탐구해야 하는 난제를 부여받은 셈이고, 그 자체가 표현 형식이 되어버린다.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정금형 작가의 개인전(5월26일까지)을 보고 왔다.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한겨레> ESC 편집자’에게 어떤 사진을 보내야 하지?’ 고민했다. 사진 한두 장으로만 이 전시를 보면, 이건 미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화 작품의 경우 사진 한두 장으로도 그 전시가 어떤지 느낌 정도는 전달할 수 있다. 정금형의 작품은 안 그렇다. 이 작가는 ‘이렇게’에 대해 관객을 고민하게 만든다. 설치된 작품 하나하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놓인 맥락이 중요하다.

전시 제목은 ‘스파 앤 뷰티 서울’(SPA & BEAUTY SEOU)다. 목욕 용품 브랜드의 행사 제목 같다. 정말로 목욕 용품이 진열돼 있다. ‘보디 브러시’가 인상적인데, 여러 제품의 세부를 비교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보디 브러시를 진열해두었다. 공장의 브러시 제작 영상도 상영한다. 수염 관리 용품도 진열돼 있다. 발모제, 파우더뿐 아니라 분장용 수염도 보인다. 수염 이식 전문 병원의 홍보 영상도 틀어 놓았다. 어쩌라는 것인가? 각각의 사물이 여기, 이렇게, 왜 놓여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이 전시를 보는 방법이다. 아마 누군가는 ‘이게 뭐야?’라고 말할 거고, 나는 그런 반응 역시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어리둥절한 마음을 이 전시를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삼으면 좋겠는데, 과연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정금형이 이 작업을 통해 보여주려고 한 것은 신체와 사물 간의 관계이고, 이 관계를 생각하며 관객들이 물건과 물건 혹은 몸 사이의 의미를 탐험하길 바랐을 것이다. 아, 설명이 더 어려운가? 보통 이런 글은,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보면 이해가 될 거야, 라는 식으로 끝난다. 하지만 가서 봐도 이해 못할 확률이 높다. 나는 이 불가능한 이해의 과정이 현대 미술의 또 다른 특징이며, 관객인 우리가 작품을 보는 새로운 방식 중 하나라고, 지금 막 여기 적었다. 헛소리다. 하지만 문학도 미술도 보는 이를 상상의 영역으로 이끄는 게 목표이고, 그 과정에서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의지를 담는 게 목적이라면 우리는 예술의 본질과 형태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 이 흥미로운 전시에 대해 고작 이런 얘기밖에 못하는 나도 참….

이우성(시인·미남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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