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 사진 스톰프 제공
[매거진 esc] 이우성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피아니스트 윤한…자신이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인지 잘 아는 이가 주는 매력
피아니스트 윤한…자신이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인지 잘 아는 이가 주는 매력
한국에 들어왔는데
아무도 관심을 안갖더라고요
2년간 재즈 피아노 콩쿠르에 나갔어요
단 한번도 입상을 못했죠 이런 이야기를 편하게 해도 되나? 음악을 정말 정말 사랑해요, 라고 말해도 그 뮤지션의 음악을 들어줄까 말까인데. 윤한과 윤한네 회사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가끔 할 소리 못할 소리 다 주고받긴 한다. 기사를 쓸 땐 적당히 거른다. 지가 말해놓고 그걸 왜 다 썼냐고 따지는 연예인들 많다. 그런데 윤한은 그런 말을 ‘못할 소리’로 한 건 아니었다. 뭐, 어디까지나 느낌이기 때문에, 나중에 이 글을 읽은 윤한 혹은 윤한네 회사 분들이 나에게 항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지우고 다시 쓸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거 너무 별일 아니잖아? 쟤가 못할 말 했어? 모든 사람이 어떤 일을 원해서 시작하는 건 아니다. 난 윤한, 잘 모른다. 무슨 재주로 버클리음대에 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거기에 갔고, 거기에서 재즈를 공부했으며, 재즈를 적당히 좋아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이런 걸 팩트라고 하지. “그런데 열심히 했어요. 학점을 잘 받고 싶었거든요. 제가 굉장히 편하게 음악 한 줄 아시는 분들도 많은데 아니에요. 저는 절대음감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좋은 음악을 많이 듣고 자란 사람도 아니잖아요. 음악에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버클리음대에는 음악적으로 천재거나, 어릴 때부터 악기를 연주했거나,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자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고요. 걔들하고 경쟁하는 게 쉬웠겠어요?” 부잣집 아들이고, 마냥 잘난 줄 알았는데. 막연했던 윤한이 구체적인 대상이 되었다. “2학년 때 전공을 바꿨어요. ‘영화음악작곡학’으로. 재즈가 아니라 영화음악 작곡, 편곡, 지휘를 배우기 시작한 거죠. 저는 그게 더 잘 맞았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졸업을 한 거죠. 그리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아무도 관심을 안 갖더라고요. 저는 한국에 오면 여기저기에서 데려갈 줄 알았어요. 하하, 그런데 다 착각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2년 동안 뭐 했는지 아세요?” 뭐 했을까? 곱게 자란 도련님,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갔을까? “재즈 피아노 콩쿠르에 나갔어요. 그런데 재밌는 건, 많은 대회에 나갔는데도, 입상을 못했다는 거예요.” 나는 웃었다. 그도 웃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을 보았다. 나는 미화하고 싶지는 않다.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애석해했다, 라고 적고 싶지도 않다. 언어는 사람을 자꾸 단정하려고 한다. 언어는 한계투성이인 물질이다. 그 표정에 대해 뭐라고 설명할 수 없다. 무심했다, 라고 적는 게 그나마 비슷할 거 같은데, 역시 온전치 않다. 윤한의 얼굴, 그러니까 앞모습은 마치 뒷모습 같았다. 어떤 회한의 감정이 그를 감싸고 있지만, 미약한 거부감이 그런 감정을 밀어내는 듯했다. 윤한은 가까스로 부들부들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적는다. 그의 정서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음악인으로서의 그는, 모르겠다. 두 장의 정규 앨범, 미니앨범, 드라마 삽입곡을 전부 들었다. 그는 대중적이다. 특히 2집부터 그랬다. 나는 음악에 있어서는 지극히 대중적이어서 그의 피아노 연주와 가사가 있는 몇 곡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그저 즐겨 들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 윤한에게는… 음, 나는 그를 존중하는 것 같다. 그렇게 된 것 같다. 윤한은, 사람들이 잘생겼다고 말하고, 감각적인 뮤지션이라고 말하고, 똑똑하기까지 하다고 말해도, 스스로 자신이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인지 잘 아는 것 같다. 담담히 자신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자신의 감정으로 산다. “지금의 회사를 만나서 앨범을 내게 됐어요. 뉴에이지곡으로 앨범을 내는 게 어떻겠냐고 회사에서 말했고, 저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어요.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니까, 1집에 ‘바보처럼’ ‘섬원’ ‘마치(March) 2006’같이 가사 있는 곡도 넣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싱어송라이터가 된 거죠.” 그는 어쩌다 보니 여기 와 있는 것처럼 말했다. 보통 이런 글에선 설명이 이어진다. 예를 들어 ‘그럼에도 윤한에게 음악에 대한 열의가 느껴졌다’는 식의 문장을 내가 써야 하는 것이다. 솔직히 지금은 그렇게 적어도 괜찮다. 윤한한테 정말 열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심하게 말했지만, 그는 좋아하는 일을 계속 선택했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며, 여기 와 있다. 팩트다. 하지만 그렇게 적는 게 나는 못내 싫다. 그게 사실이지만, 윤한을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윤한은 어쩌다 보니 여기 와 있다. 휩쓸려서 어딘가 또 갈 것 같다. 그게 왜, 나빠? 윤한은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뉴미디어음악학을 전공하고 있다. “키스 재럿을 통해 보는 현대음악의 위상에 대한 고찰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어요. 고찰, 논문, 이런 단어 말하니까, 나, 되게 재수없다. 하하하.” 그렇다, 윤한은 가요를 만들고 가요를 부르고, 동시에 키스 재럿 같은 전설적인 재즈 연주자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언급한다. 나는 그가 지닌 스펙트럼이 약간은 부럽다. “서울재즈페스티벌이 5월에 열리잖아요. 거기 밴드를 짜서 나가려고요. 여자 보컬이 두 명 있고, 드럼이랑 트럼펫도 들어가요. 피아노는 제가 치고요. 재즈 연주할 때는 보통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참여하는데 이번에 저는 일렉 베이스를 넣으려고요. 풍성한 리얼 밴드 사운드를 내고 싶거든요.” 나는 말했다. “키스 재럿 같은 위대한 연주자가 되고 싶진 않아요?” 그가 대답했다. “그건 할 수 없어요. 타고나는 거예요. 노력으로 어느 단계까지 올라갈 순 있어요.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돼요.” 윤한을 만나고 와서 생각을 많이 했다. 한 명의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특히 더 생각했다. 솔직히 적으면 신문을 비롯한 언론 매체에 실리는 글이 무의식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는 이 글을 왜 쓰고 있을까? 아니, 윤한에 대해 왜 적고 있을까? 윤한은 그저 산다, 는 식으로 말했지만, 그 삶은, 역설적으로, 온전히 선택한 그 자신의 삶처럼 느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적을 가지고 삶의 허들을 뛰어넘으며 산다. 그게 옳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윤한은 동의했나?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대단한 건 아니다. 나는 그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윤한이 지금처럼 살면 좋겠다고. 음악을 하게 되면 음악을 하고,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을 하고. “한번 곡 작업에 들어가면 마무리될 때까지 멈추지 않아요. 가사를 붙이고, 악기들의 조합까지 완성한 다음에 끝내죠. 그 후에도 수정은 거의 하지 않아요. 최초의 느낌이 소중하기 때문이에요.” 윤한이 말했다.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그냥 좋다. 이우성 시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