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일하다 말고 어디 가니?” 선배가 물었다.
“달려야 될 거 같아요.” 내가 말했다.
그때가 아마 2010년인가? 2011년인가?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찾다가 그림을 보았다. 전율을 느꼈다고 적으면 진부한 거지? 슬펐다. 시를 쓸 때 종종, 아니 엄청 자주 벽을 느낀다. 쓰고 싶은 게 있는데, 그러니까 그건 형태만이 아니라, 내부의 움직임 같은 건데, 그걸 어떻게 쓸 수 있는지, 그게 어떤 모습인지 몰랐다. 그런데 그 그림을 보고 막연히 느낀 것이다. 내가 글로 그리고 싶었던 세계가 무엇이었는지.
그날, 일하다 말고 밖에 나가서 동부이촌동에서 한강까지 달렸다. 잡다한 생각들이 사라졌다. 며칠 뒤 안두진을 만나러 갔다. 그는 한남동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반지하였다. 양은그릇에 붉은 물감이 담겨 있었다. “그림도 최소 단위라는 게 있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는 말끝에 ‘죠’를 붙이고, ‘죠’를 올려 발음했다. “이런 거죠.” “아시겠죠?” “그러니까 그림이 최소 단위의 조합이라는 거죠?” 내가 흉내 내서 물었다. 그는 내 개그를 알아채지 못하고 설명만 계속했다. “이마쿼크(Imaquark)라는 단어를 만들었어요. 이미지와 쿼크의 합성어라고 보시면 돼요.” 쿼크(quark)는 물질의 최소 단위라는 뜻이다. “이마쿼크는 이미지의 최소 단위예요.” 나는 오만하게도, 직관적으로, 이것이 대단한 발견이라고 느꼈다. 회사로 돌아와서 스마트폰으로 녹음한 대화를 옮겨 적으면서 머리카락을 부여잡았다. 만화 <슬램덩크>를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서태웅이 하늘을 날아 덩크슛 하는 걸 보고 안 감독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한다. “재중 군, 보고 있나? 자네를 능가하는 천재가 여기 있네.” 나도 말하고 싶었다.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났다. 그런데 그날 그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렇게 물었어야 한다. “회화는 대상을 재현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작가님 그림은 뭘 재현하는 거예요?”
2년 정도 지나고 그의 개인전에 갔다. 알록달록한 색의 배열, 형광색들이 섞여 발하는 약간의 착시 현상, 너무 밝아서 오히려 어둡게 보이는 공간들, 그리고 그 공간들이 서로 충돌하며 만드는 모호한 서정에 대해 나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너는 그림이 늘지를 않니? 어머니가 언젠가 이러시더라고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나구나, 이렇게 그리는 게 나구나. 내 무의식 안에 그림을 저렇게 그리는 본성이 있구나.” 안두진은 말했다. 안두진의 그림은 낯설다. 나무, 하늘, 숲, 동굴, 빛과 같이 보편적이고 근원에 가까운 것들을 그리는데도 낯설다. 안두진의 본성이 익숙하게 그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그림이 늘지를 않니?
어머니가 언젠가 이러시더라고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나구나
이렇게 그리는 게 나구나”
만날 때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하고 이해한 것들을 강의하듯이 설명해준다. 나는 미술에 대한, 특히 난해한 미술에 대한 학습이 조금은 돼 있다. 그런데 어렵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과 미술관에 가면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너를 자극하는 감정이 있는지, 그게 뭔지 느껴봐.” 보이는 대로 보라는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 애인과 안두진의 개인전을 보러 갔을 때는 이마쿼크에 대해 굳이 설명해주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뭘 알고 보는 것은 아니었다.
4월2일부터 13일까지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안두진의 전시가 열려서 갔다 왔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사람을 똑똑해 보이게 만드는 안경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는 늘 그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렌즈 너머의 눈은 안 총명해 보인다. 그냥 졸린 사람 같다.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안두진은 1호짜리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 작은 선, 어쩌면 이마쿼크라고 부를 수 있는 최소 단위를 반복해서 칠한다. 그가 작업실 바닥에 앉아 커다란 캔버스를 가까스로 채워나가는 장면을 떠올리면 그림이야말로 노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은 모두 6개가 걸려 있었다. 캔버스 크기만 다르고, 그림은 같았다. 화려한데 어두운, 묘한 색들의 배열은 여전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각각 다른 그림이었다. 커다란 돌이 땅을 밀며 움직이고 있었다. 6개의 그림은 그러니까 사실은 하나의 과정이었던 셈이다. 그림들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런데 돌은 어디로 가는 거지? 돌이 왜 움직이지? 심지어 굴러가는 것도 아니고 땅을 밀면서 가는데.
“거대한 돌이 움직인다는 것, 그것을 통해 느껴지는 긴장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림 각각을 보면 정지된 풍경 같지만, 작은 캔버스부터 큰 캔버스까지 차례로 바라보면 바위는 길에 자국을 남기면서 움직이고 있다. 아, 조금 알 것 같다. 그러니까 저 돌이 뭐고, 저 돌이 어디로 가는지는 안 중요한 것이다. 안두진이 보여주고 싶은 건 움직임 그 자체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그가 말했다. “‘회화가 회화 그 자체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그림이라는 것은 ‘레프리젠테이션’이잖아요. 즉, 재현인 거죠. 무엇인가를 보고, 작가의 이야기나 감성에 담아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 그림은 레프리젠테이션이 아니죠?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 그 자체인 거죠.” “네, 그렇죠.” 그가 ‘죠’를 올려 발음하며 대답했다. 언젠가 내가 묻지 못한 것을 대답해주었다.
여러 시각예술 분야 중에서 회화는 가장 고루한 것으로 여겨진다. 어쩔 수 없다. 인류는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그림을 그렸다. 벽은 최초의 캔버스였다. 피카소와 앤디 워홀 그리고 잭슨 폴록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일종의 회의 같은 게 생길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지?’라는. 반면 기술의 발달은 미디어 아트라는 신문물을 예술의 범주 안에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회화는 거실에 걸어두는 장식물로 전락하는 걸까? 하지만 나는 그림이야말로 작가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매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수천년 전의 벽화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림은 일종의 원형, 즉 가장 본능적인 것이니까. “회화가 여러 비주얼 아트 중에서 가장 전통적인 매체로 여겨지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회화를 대상 그 자체로 여기는 데 생각이 이르렀을 때 회화가 최첨단의 매체, 진일보된 예술의 상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나는 그가 새로운 회화를 발명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림을 보았다.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보고 나면 지금까지 본 그림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듭, 그것은 대상을 옮겨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겨난 자연발생적인 대상이다. 회화 그 자체인 회화다. 인터넷에서 안두진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보면 6개의 ‘움직이는 돌’ 작품 중 하나 정도가 자료사진으로 올라와 있다. 하나로는 이 그림을 이해할 수 없다. 안두진은 이러한 제약을 일부러 끌어안는다. 모니터로는 온전히 볼 수 없다. 미술관에 가야 한다. 그의 그림을 직접 보면 규칙적인 선들이 만들어 내는 묘한 세계에 압도된다. 견고하게 쌓아올린 건축물 같기도 한데, 겨우 그 건축물 하나만으로도 너무 넓은 우주같이 느껴진다. 그러니 실재하는 우주는 얼마나 아득하고 거대한가. 그리지 않은 광활한 세계를 그저 상상조차 못하게 하는 힘, 그것이 안두진의 회화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나저나, 나는 시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 걸까? 안두진의 그림이 단서가 될 것 같은데, 그걸 모르겠다. 달리러 나가야겠다. 어떤 그림은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나 보다.
이우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