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우 셰프.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매거진 esc] 이우성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마스터 셰프 코리아> <냉장고를 부탁해>로 유명인 된 박준우 셰프의 겉과 속
<마스터 셰프 코리아> <냉장고를 부탁해>로 유명인 된 박준우 셰프의 겉과 속
부자가 되려면 일을 많이 해야 해요
직원을 적게 뽑고 인건비를 줄이거나
저는 몸이 편해지는 걸 택했어요
저도 안 힘들고 직원도 안 힘들고” 제일 궁금했던 건 카페 수입이었다. 익히 알려져 있듯 박준우는 서촌에서 디저트카페를 운영해왔다. 사장님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 이후 장사가 더 잘됐을까? “음, 저도 방송 나간 이후로 사람들이 많이 올 줄 알았는데 별로 안 그렇던데요. 그런데…” 그가 눈가에 약간 치사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빵, 터졌죠.” 하지만 박준우는 아직 부자가 되지 않았다. “2년 반 동안 카페를 하면서 알았어요. 부자가 되려면 일을 많이 해야 해요. 대신 몸이 힘들죠. 직원을 적게 뽑고 인건비를 줄여도 부자가 될 수 있어요.” 그는 부자가 안 되고 싶은 걸까? “저는 몸이 편해지는 걸 택했어요. 직원도 많이 부리죠. 셰프를 포함해서 주방에 넷, 홀에 넷. 이렇게 여덟 명이 일했어요. 저도 안 힘들고 직원도 안 힘들고.” 개인적 사정으로 6월까지만 운영하는 그의 가게는 아홉 평이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인기 프로그램이니까, 관련해서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내가 그 프로그램을 서너 번밖에 안 보았기 때문에 물어볼 게 없었다. 게다가 거듭, 난 요리에 관심이 없으니까. 대신 이 얘기는 했다. “지적으로 보여요. 준우씨가 요리에 대해 말할 땐 식재료들도 차분하게 누워 있는 것 같아요.” 진심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티브이를 통해 볼 때도, 다시 만나서도 똑같이 느낀다. 그에겐 학자의 풍모가 있다. “그래 봤자 제 학력은 학사 제적이에요.” 박준우는 벨기에에서 11년을 살았다.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학교를 열심히 다니진 않았어요. 그냥 살았어요.” 그가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면 그는 그저 똑똑한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나는 그가 ‘그냥 산’ 시간을 존중한다. 브뤼셀의 한 노천카페에 앉아 헤르만 헤세의 시집 <낭만적인 노래>를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석양이 선연해지면, 책을 덮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저녁 식사 테이블에 올릴 음식을 떠올린다. 나는 그가 이렇게 지냈을 것 같다. 그도 나처럼 시를 썼으니까. 그가 나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벨기에에서도 그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시를 썼다는 걸 알고 있다. 그는 시인이 되고 싶어 했다. 지금은 쓰지 않는다. 하지만 쓰려는 사람은 그 마음을 쉽게 버릴 수 없다. “무인도에 간다면 뭘 갖고 가고 싶어요? 보통 세 개를 말하라고 하잖아요.” 뜬금없이 이게 왜 궁금했을까? 바보 같은 질문이네. 박준우가 대답했다. “안 갈 건데요.” 내가 대답했다. “한번 갑시다.” “음, 맥주, 라디오, 냉장고.” 대답은 재밌네. “라디오 들으면 외롭지 않고, 맥주를 마시면 기분이 좋잖아요. 냉장고는 맥주 넣어둬야 하니까.” 그런데 갑자기 고민하기 시작했다. “부족해, 한 가지가 더 있어야 돼요.” “뭐요?” “외장 하드.” “뭐 담아 가려고요?” “남자에겐 야동이 필요하죠. 흐흐흐.” 일부러 안 지적인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털털한 척, 예민하지 않은 척 보이려고. 나는 그 감정을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내가 그에 대해 적고 싶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그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지만, 그 자신이 존중받아야 할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늘 의구심을 갖는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의심할 바 없이 훌륭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계속 글을 쓰면 좋겠다. “요리에 대한 칼럼은 계속 쓰고 있어요. 한 달에 3~4개 정도 청탁이 들어와요. 마감을 만날 못 지켜요.” 박준우는, 감히 짐작하건대,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는 티브이에 나온 자신을 보는 것보다, 자신의 칼럼이 실린 지면을 보며 더 뿌듯해할 것이다. 글은 온전히 그의 것, 그의 내면의 것이니까. 그러므로 글은 그가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방식이 될 것이다. 그의 지적인 풍모는 이러한 의식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가 정말 무인도에 간다면 나는 가방 속에 몰래 종이와 연필을 넣어줄 것이다. 한참 혼자 생각하다가 물었다. “외장 하드에 주로 어떤 나라 야동을 담아 갈 거예요?” 그가 대답했다. “폴더를 나눌 거예요. 우울한 날 볼 야동, 설레는 날 볼 야동 이렇게 몇 개를 나누고, 아시아는 한국, 일본, 중국, 태국 야동을 다운받고. 서양은 아메리카 대륙, 유럽 대륙… 아, 전세계 야동을 다 가지고 가야겠네. 하긴 100년 볼 정도 양은 돼야 하니까.” 그러다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그가 말했다. “근데 질문이 왜 이래요?” 이우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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