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이우성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선 굵은 남성성과 반전의 웃음 지닌 톱모델, 김영의 속 깊은 이야기
선 굵은 남성성과 반전의 웃음 지닌 톱모델, 김영의 속 깊은 이야기
모델 김영은 참 잘 웃는다.
남들과 다르다는 점
그게 제 무기예요
저를 지켜낼 수 있게 해줘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기분 탓인가? 느닷없는 이상기온 때문에 거의 녹을 것 같았는데. “모든 일이 마찬가지잖아요. 공통분모가 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한 거예요. 지각하지 않고, 윗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아랫사람에게 권위적으로 굴지 않는 거.” 그랬네,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하네, 라고 남자가 남자에게 가로수길 카페에 단둘이 앉아서 할 얘기는 아니었다. 대신 영이처럼 웃으려고 흉내 내보았다. 얼굴 전체로 웃는 게 나는 잘 안됐다. “어렸을 때부터 잘 웃었어요. 그러다가 사춘기 접어들면서 웃음이 줄어들었고, 성인이 되면서 웃음이 없어졌어요. 어느 날 거울을 봤는데 음침하고 무서운 사람이 서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웃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이렇게 웃음이 헤픈 사람이 됐고요.” 웃음의 힘 때문일까? 영이의 말투에는 다정함이 묻어난다. 그와 나는 제주도에서 만난 이후 우연히 길에서 한 번 마주쳤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혀엉” 하고 부르면, 물론 걔가 나보다 더 형같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커피 값을 내가 내게 되더라는 말이다.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알았는데, 영이는 연기를 하려고 한다. 정점을 찍은 모델들은 하나같이 배우가 되려고 한다. 문제 될 건 없는데 진부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걸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게, 소위 그 ‘바닥’은 너무 빨리 바뀐다. 이런 말 조심스러운데, 어린 게 최고다. 영이는 서른두살이다. 모델로서는 너무 많은 나이다. “월수금 연기 수업을 받아요. 원래는 모델로서 표정과 포즈를 더 잘하기 위해서 시작한 거예요. 패션기자나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원하는 콘셉트를 표현 못할 때 정말 괴롭거든요. 그런데 연기라는 게요, 계속하다 보니까, 제가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설레니?” 내가 묻자 영이가 대답했다. “네.” 영이가 모델이 된 건 2006년이다. 누가 봐도 김영인지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크게 나온 사진이 단 한장이라도 패션잡지에 실리는 게 목표였다. 물론 목표를 이뤘다. 너무 당연해서 적는 게 멋쩍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패션모델이다. 그리고 4월 ‘케이 모델 어워즈’에서 올해의 패션모델상을 받았다. “이제야 비로소 ‘모델’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만한 자격증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형이 아까 아저씨 같다고 한 그 부분을 저는 계속 밀고 나갔어요. 제 노력이 인정받아서 기뻐요.” 영이의 삶에서 한 시대가 저물고 새 막이 열리는 것 같다. 잘할까? 영이가 배우를 잘해낼까?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영이보다 먼저 연기를 시작한 모델이 꽤 있다. 몇몇은 유명한 배우가 됐다. 하지만 누구도 김영 같진 않다. ‘아저씨’는 김영뿐이다. 아니다. 아저씨 아니다. 내가 너무 쉽게 말한 거다. 사람은 누구나 몸에 드러나는 삶의 흔적을 지우려고 한다. 김영은 주름을 사랑한다. 주름에 새겨진 시간의 역사를 존중한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수분크림을 엄청 많이 발랐고, 사실 비비크림도 발랐다. 나는 시간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어서 김영을 ‘아저씨’ 같다고 적는다. 영이와 헤어지고 나서 걸어서 신사역 8번 출구로 들어갔다. 겨우 몇분 사이에 나는 건조한 사람들 속에 섞였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영이는 지금도 어딘가로 걸어가면서 웃고 있을 텐데. 웃는 김영을 보면 누구라도 자신은 왜 웃지 않는지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웃는 표정을 지어볼 것이다. 지금 내가 이유 없이 기분 좋게 웃고 있는 것처럼. 이우성 시인, 사진 YG케이플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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