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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매력있게…여행 가서 한복 입고 놀아봤니?

등록 2015-07-22 19:29수정 2015-07-23 15:28

전주한옥마을 거리엔 평일·주말 구분 없이 한복나들이객 행렬이 이어진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전주한옥마을 거리엔 평일·주말 구분 없이 한복나들이객 행렬이 이어진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한복여행 확산
젊은층에 국내외 한복나들이·한복여행 확산…1년새 관광지 한복대여소, 해외 한복여행 동호회 부쩍
여행과 한복.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이다. 움직이기조차 불편한 옷, 빛깔도 모양도 너무 튀어서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이 옷을 입고 여행이라니? 한자리에 앉아 고즈넉한 풍경으로 스민다면 몰라도, 한복 입고 배낭 메고, 기차로 버스로 이동하며, 거리 거닐다 카페·식당 드나들면서 불편 없이 즐겁게 여행할 수 있을까.

“못할 것 없지요. 불편하면 긴 치마 잘라 입으면 되고, 형편에 따라 색깔도 튀지 않게 고르면 되고요. 덥다고요? 그럼 민소매나 투명저고리를 입어보세요.”(권미루씨·한복여행가) “우리 옷이잖아요. 외국 가서 다들 자기네 전통 옷 입고 활보하는 거 보고 늘 부러웠어요. 국내에서 한복은 오히려 외국인이 입고 돌아다녀야 더 자연스러울 정도였죠. 마치 남의 나라 옷인 것처럼.”(서민희씨·전북 완주시)

젊은층에 확산되는 한복나들이·한복여행

명절이나 결혼 등 예식 때 잠깐 입고 보관해 두던 박제화된 전통 옷, 한복이 장롱 문짝을 걷어차고 대로변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고리타분한 옛 의복을 걸친 이들은 사극배우도 아니고, 무용가도 아니요,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어르신도 아니다. 대대로 입어온 우리 옷을 우리 옷답게 입어보자는, 아주 지당하고 마땅한 생각을 갖고 거리로 나선 젊은이들이다.

일부 국내 여행지가 연일 한복 물결로 덮이는가 하면, 여행자들에게 한복을 저렴하게 빌려주는 한복대여소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문 열고, 한복 입고 해외 배낭여행·신혼여행을 떠나거나, 해외연수 때 한복을 챙겨 가 강의실에도 가고 거리를 활보한다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온오프라인의 한복여행 동호회가 수십개나 생겼고, 한복여행가, 한복여행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들이 여러명 나타나 활동중이다. 한복여행 경험담을 나누는 모임도 이어지고, 한복여행 때 찍은 사진들을 모아 선보이는 사진전시회도 진행중이다.

모두 최근 1~2년 사이, 특히 지난해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다. 개량한복 등을 일상복으로 입자는 운동은 꾸준히 있어 왔으나,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복 입고 나들이하거나, 해외여행 때 일상복으로 한복을 선택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한복진흥센터도 설립됐다.

전주한옥마을 최근 1년 새 ‘한복나들이 성지’로

지난 15일 전주한옥마을. 섭씨 30도를 웃도는 더위도 아랑곳없이, 색색의 한복 물결이 넘쳐흘렀다. 경기전 안팎을 비롯해, 한옥골목·먹자골목·향교골목 할 것 없이, 화려한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 남녀의 행렬이 이어진다. 사극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다. “(한복 차림 젊은이들이) 작년 봄부터 많이 보이더니 올해 들어선 엄청 늘었어요. 한복대여소도 늘었고.”(한옥마을 관광안내소 직원)

전주한옥마을은 젊은이들 사이에 ‘한복 입고 멋내기의 성지’로 불린다. ‘한복 대여 대중화’ 바람의 진원지다. 어느 골목에서든 한복 차림에 뒷머리를 길게 땋은 처녀들, 신혼부부처럼 곱게 차려입은 쌍쌍의 남녀 무리를 만날 수 있다. 이 무리의 주축은 전국 각지에서, 한복 입고 사진 찍으며 놀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10~20대 젊은이들이다. 자주 눈에 띄고 돋보이던, 한복 입은 외국인들은 ‘원주민 학생들’의 한복 물결에 묻혀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한복은 중고생들에게도 인기다. 전주한옥마을에서 만난 여고생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한복은 중고생들에게도 인기다. 전주한옥마을에서 만난 여고생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경기전 앞에서 만난, 기생복(전모까지 갖춘 이른바 황진이복) 차림의 현은영(21·대전 둔산동·취업준비생)씨가 선비복 차림의 남자친구와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제가 워낙 튀는 걸 좋아하거든요. 이걸 입으려고 벼르고 별러서 일부러 왔어요. 정말 날개옷 입은 거 같아요.” 서울 신도림동에서 온 고교 동창 이현경·한지연(이상 21·대학 4년)씨는 “요즘 친구들 사이에 한복 입고 예쁘게 사진 찍어 에스엔에스에 올리는 게 유행”이라며 셀카봉을 내밀기 바빴다.

어림잡아 한옥마을을 메운 청춘들의 30% 정도가 한복 차림이다. 하지만 나머지 젊은이들도 “이미 빌려 입고 반납”했다거나, “곧 빌려 입을 생각”이라는 이들이 많은 걸로 보아, 최소한 한옥마을을 찾은 젊은층의 절반 이상이 한복을 빌려 입는 게 분명해 보였다.

전주한옥마을 ‘한복 멋내기 성지’로
10~20대가 80% 골목마다 한복 물결
서울 북촌·경복궁에도 대여소 인기
“매력있고 자랑스런 나들이옷”
한복 체험한 남녀 한목소리

밀집모자까지 갖춰 쓴 한쌍. 전주향교.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밀집모자까지 갖춰 쓴 한쌍. 전주향교.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전주향교 앞에서 “한복 만세”를 외치는 대학생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전주향교 앞에서 “한복 만세”를 외치는 대학생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한복대여소 20곳 북적…매달 한복데이 행사도

전주한옥마을의 한복대여소는 지난해 봄 전주향교의 한복대여소가 20벌을 준비해 처음 문을 연 이래, 현재는 수백벌씩의 한복을 보유한 대여업소가 20곳을 헤아린다. 특히 올 들어서 대여업소 수가 급격히 늘었고, 규모도 대형화됐다. 한복대여소가 생기기 전까지는 ‘한복데이’ 등 특별한 행사 때나 야외 대여를 해줬을 뿐, 관광안내소·게스트하우스 등의 실내 촬영용 대여가 고작이었다.

“요즘 평일 하루에 100여벌, 주말엔 300~400벌이 나가요. 80%가 대학생 등 20대들이죠. 주말엔 중·고등학생들도 많고요.” 경기전 앞 골목의 한복대여소 직원은 “메르스 때문에 한동안 대여가 주춤했지만, 다시 평소 수준을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대여한복 나들이 바람은, 튀고 싶은 젊은층의 욕구와 저렴한 대여료가 맞아떨어진 게 결정적이다. 한복대여료는 업소마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대개 일반한복(화학섬유) 기준 1시간~1시간30분에 5000원부터 시작된다. 3~4시간은 1만~1만5000원, 종일은 1만5000~2만원 선이다. 선비복·기생복·곤룡포 등 테마한복은 여기에 5000~1만원가량이 덧붙여지고, 고급 전통한복은 더 비싸진다. 꽃신·댕기·손가방·아얌(여성 모자)·갓·노리개 등도 별도 요금(1000~2000원)을 받고 빌려준다.

전주한옥마을과 문화기획사 ‘불가능공장’은 지난해 가을 부산·대구·광주·대전·전주시에서 동시에 한복데이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올해부턴 가을행사 외에도 매달 마지막 토요일을 ‘한복데이’로 정해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 대여료 할인, 한복길 걷기, 계층별로 한복 갈아입기 체험 행사에다 저녁엔 한복 입고 모여 춤추는 클럽파티도 벌인다.

전주한옥마을 경기전 앞에서 만난 한쌍. 대여소에서 다양한 한복을 골라 입을 수 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전주한옥마을 경기전 앞에서 만난 한쌍. 대여소에서 다양한 한복을 골라 입을 수 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서울 북촌·인사동에도 한복대여소 확산

지난 18일 둘러본 서울의 한옥마을 ‘북촌’과 경복궁 주변에서도 한복 차림의 젊은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모두 대여소에서 한복을 시간 단위로 빌려 입은 이들로, 전국 각지에서 온 대학생·고교생들이 많았다.

한 한복대여소 직원은 “올 2월 경복궁점을 처음 열었는데, 이용객이 늘어 지난 5월엔 북촌점도 개장했다”고 했다. 친구끼리 고궁에서 추억을 남기기 위해 한복을 빌려 입었다는 구미여고 동창 5명은 “어릴 때 이후 한복을 처음 입어본다”며 “한복이 정말 세계에 자랑해도 좋을 매력적인 옷이란 걸 체험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한복 홍보 알바생 같다’는 말도 들었지만, 만나는 외국인들마다 멋지다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해 흐뭇했어요.”(백지혜씨·24·서울 당산동) “한복 입고 경복궁 거니는 게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이제 이뤄서 정말 기쁩니다.”(조윤경씨·24·경북 구미시 원호리)

북촌과 경복궁 주변엔 한복대여소 4~5곳이 성업중이다. 인사동 입구(종로3가 쪽)에도 생겼다. 대여료는 대개 하루에 3만원부터. 직원이 취향에 맞는 옷을 골라 입는 걸 도와주고 원하면 머리도 땋아준다.

서울 경복궁과 북촌 사이 골목길을 한복 입고 활보하는 20대 여성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서울 경복궁과 북촌 사이 골목길을 한복 입고 활보하는 20대 여성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명절복 벗어나 개성적인 여행옷 정착 가능성

이렇듯 젊은층 사이에 불고 있는, 여행지에서의 ‘한복 재발견’ 바람은 한복이 ‘장롱 속 예복’ ‘명절 옷’의 지위를 털어버리고, 나라를 상징하는 나들이옷·여행옷으로 정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복진흥센터 박선영 연구원은 “최근의 한복나들이, 한복여행에 대한 관심은 젊은층이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한복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진흥센터에서도 한복을 좀더 편하고 개성있게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색상을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여한복의 위생상태가 궁금했다. 매일 세탁한다는 곳이 많았지만, 고를 땐 오염상태나 냄새 등을 꼼꼼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전주한옥마을 한 대여업소 직원은 “그날그날 오염상태를 확인해 세탁한 뒤 다림질해 다시 전시한다”고 말했다.

전주·북촌/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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