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 김영진. 사진 김영진 제공
[매거진 esc] 이우성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스스로 작가라 생각 안 하는 미술가 김영진…“평생 아름다움 속에서 살고파”
스스로 작가라 생각 안 하는 미술가 김영진…“평생 아름다움 속에서 살고파”
지금 말고, 조금 더 천천히
그가 반려견 금자와 둘이 걷는 길을
그 운명을 좀더 지켜보고 싶어졌기에 지금 김영진은 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다. 내가 말했다. “첫 개인전이라고 봐도 될까?” 관훈갤러리 정도면 이력서를 쓸 때 한 줄 넣기에 훌륭하니까. “첫 개인전은 아니에요. 제 그림이 어디에 걸려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림은 전시장에만 걸리는 것이 아니잖아요. 갤러리에서의 첫 전시일 뿐이에요.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건 나다. 이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가슴속에 묻어둘 거다. 나라고 미술가들의 자유로운 의지를 지지 안 하고 싶겠어? 김영진과 함께 그림을 봤다. 분명히 김영진의 그림이다. 누구나 따라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조악한 선들이 그의 그림을 이루고 있다. 만화 같고 일러스트 같고, 또 어떤 건 망친 그림 여러 개를 커다란 볼에 넣고 마구 반죽을 낸 후 캔버스에 바른 것 같다. 김영진이 이 글을 보면 따지러 오려나? 그럴 이유가 없다. 나는 칭찬을 하고 있으니까. 뭐, 나한테 칭찬 들어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김영진은 ‘개념’이 멋지다. 저 그림이 어떻게 불쑥 캔버스 위로 튀어나왔는가, 그것이 개념이다. 나는 김영진이 자신도 모르게 어떤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본능적으로, 어떻게 회화가 탄생하는지 탐색한다. 예를 들어 선 하나를 그린다. 미술을 열심히 배운 사람들은 아마 그 선을 아무렇지 않게 그릴 것이다. 당연한 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영진에게는 그 선이 당연하지 않다. 그는 선 하나를 긋기 위해 선은 무엇이며, 지금 이곳에 선을 왜 그어야 하는지 생각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그는 그 선을 그리지 않을 것이다. 김영진이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드로잉을 전시했을 때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사람들이 그의 드로잉 작품을 보고, 그를 드로잉을 아주 잘하는 다른 누군가와 비슷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오만을 광고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운명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다. 김영진과 나는 갤러리 1층 카페로 내려와서 커피를 마셨다. 가을이었다. 볕이 정말 좋았다. “창작레지던시 같은 걸 신청하면 어때? 선정돼서 입주하면 큐레이터나 평론가들을 만날 일이 많아질 거야. 그럼 네 그림도 더 많이 알려질 거야.” 그는 별말을 안 했다.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남자 둘이 앉아 있는데 남자 한 명이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니까, 민망했다. 그는 나중에 메일을 보냈다. “저는 미술이라는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르고 있는 산의 맞은편 풍경이 궁금하다고 지금 오르고 있는 길의 풍경을 등지고 싶지는 않아요.” 바보같이 왜 눈을 마주 보고 말을 못 해! 이렇게 예쁜 말을 왜, 메일로 보내는 거야! 하지만 나는 말이 없는 그가 좋다. 물론 친구로. “이번 전시는 차별과 억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전시명 ‘어 초이스 오브 웨펀스’(A CHOICE OF WEAPONS)는 미국의 흑인 사진가 고든 파크스의 서적에서 차용한 거예요. 그는 흑인 인권 운동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어요.” 동시대성에 대해 묻고 싶긴 했다. 하지만 묻지 않고도, 김영진이 말하는 ‘차별과 억압’은 동시대에 벌어지는 여러 불평등을 함의하고 있을 거라고 적을 수는 있다. 하지만 무의미하다. 지금 김영진에게 중요한 건 그림의 의미가 아니라 그가 더듬거리며 회화라는 산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 그 행위 자체다. 회화를 탐구하는 자는 어떤 회화를 그리는가, 바로 이것이다.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은 다양하잖아요. 저는 계속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변하지 않는 건 제가 미술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저는 평생 아름다움 속에서 살고 싶어요.” 이 예쁜 말도 메일로 보냈다. 애초 계획된 전시 일정은 2주였다. 그런데 관훈갤러리에서 전시 중에 2주를 더 하자고 말했다. 그래서 갤러리에서의 첫 전시는 한 달로 늘었다(11월6일까지). 나는 누군가 김영진을 발견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 말고, 조금 더 천천히. 그가 금자와 둘이 걷는 길을, 그 운명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어졌기 때문에. 그의 드로잉과 회화 속에서는 종종 장미셸바스키아가 등장한다. “바스키아가 무덤에서 나와서 이 전시를 보러 왔으면 뭐라고 말했을까?” 그는 웃었다. “잘 보았습니다”라고 했겠죠. “뭐라도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그의 무덤까지 찾아갔던 날이 생각나네요.”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볕이 아주 예뻤다. 이우성 시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