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디자이너 김영나와 독립 기획자 구정연이 함께 기획한 전시회 ‘섀도 오브젝트’가 서울 청담동 ‘코스’ 매장에서 내년 1월까지 열린다. 구정연씨가 전시회장 작품 앞에 서 있다. 코스 제공
[매거진 esc] 이우성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섀도 오브젝트’ 전시회 공동 기획한 그래픽디자이너 김영나·독립기획자 구정연
‘섀도 오브젝트’ 전시회 공동 기획한 그래픽디자이너 김영나·독립기획자 구정연
그 책을 공간에 전시하는 구정연
둘은 결국 만나야 할 사람들
그들이 함께 만든 곳은 따뜻했다 이곳에 있는 책들은 대부분 개인이 만든 독립 출판물이다. 하지만 그런 책들만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구정연이 책을 고르는 기준은, 과연 이 책이 대형 서점에서 살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이다. 지금 서울엔 30개가 넘는 독립 서점들이 있다. 구정연이 이 공간을 만들 당시에는 ‘독립 서점’이라는 말조차 낯설었다. 지난 5년 사이 독립 출판물을 만드는 사람들도 늘었다. 나는 감히 이것이 민주주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는데, 더 북 소사이어티 같은 공간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대형 서점에선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지 않는다. 이유? 돈이 안 되니까. “원하는 일을 하려면 희생을 감수하긴 해야죠. 공간을 운영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전시 기획을 하고, 출판물 편집도 해요. 디자인 관련 서적을 모아서 보관하려는 분들이 계시면 책도 소개해드리고요.” 책이 전시물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이제 보편적이다. 미술관이 운영하는 카페, 기업의 휴식 공간 등에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책의 가치가 활자 언어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책의 확장이다. 나는 이 흐름을 구정연이 혼자 이끌어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구정연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아트북을 취급하는 해외의 문화 공간과 계속 교류를 해왔어요. 그러다가 2010년에 더 북 소사이어티를 열었어요.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생각을 조금은 해요.” 그러나 그의 고민은 깊다. “언제까지 운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10년은 하고 싶었는데, 과연 할 수 있을지. 최근에 프랑스 파리에 갔다가, 더 북 소사이어티와 비슷한 공간을 운영하는 분을 만났어요. 7년째 하고 계시대요. 그분도 고민하시더라고요. 계속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것이 단순히 돈에 대한 고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안 공간’이라는 게 있다. 2010년을 넘어서면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말 그대로 대안이 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대안 공간에선 상업 갤러리, 대형 미술관이 구현할 수 없는 전시가 열린다. 젊은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이 이제 꽤 많다. 여전히 이것을 대안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대안’의 새로운 방식을 고민할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더 북 소사이어티도 대안 공간이다. 대형 출판사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왔다. “책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책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니까. 그리고 함께 책을 만들면서 다양한 협업을 했어요. 책이 매개체가 된 거예요.” 무엇보다 이곳은 서점을 넘어선다. “책을 매개로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운영해왔어요. 전시도 하고, 세미나도 하고, 워크숍도 개최하고….” 그는 말끝을 흐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디어가 있으면 주세요.” 나는 정말 무슨 말이든 해주고 싶었다. 구정연과 김영나는 결국 만나야 할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김영나는 책 속에 공간을 생성한다. 그는 그것이 북 디자인이라고 믿는다. 구정연은 그 책을 다시 공간에 전시한다. 그는 그것이 사람과 관계 맺는 일이라고 믿는다. 구정연과 김영나가 기획한 전시 ‘섀도 오브젝트’는 사람과 사물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새삼 생각하게 한다. 자, 우리는 의자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탁자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책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두 명의 기획자, 그리고 참여하는 작가들은 새로운 사용법을 소개한다. 관객은 그 사용법을 읽거나 보고, 각자의 새로운 사용법을 상상해볼 수 있다. 사진과 글 그리고 사물이 조화를 이룬 전시다. 미술관 벽은 하얗고 창에서 빛이 들어온다. 오후에 한 권의 책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곳에 서 있으면 사물의 그림자와 내 그림자가 수시로 겹쳐진다. 그림자에 체온이 있었나. 따뜻하다. 어느날 지하철 6호선 상수역 부근을 걸어가다 한 공간에 들어갔다. 서점처럼 보였지만 서점 같지 않았다. 그곳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책들이 투박하게 진열돼 있었다. 정리 안 한 거실 책꽂이 같기도 했다. 따뜻했다. 결이 고운 옷을 입은 것처럼. 나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의 책들처럼. 계절이 몇 번 바뀐 후에 그곳이 더 북 소사이어티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더 북 소사이어티는 종로구 서촌에 있다. 이우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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